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이어주는 섬/배진성 시(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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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주는 섬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있다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섬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나를 밟고 지나간다
내 안에 섬들의 발이 있다
내 가슴 속에 섬들의 발자국이 있다
내 가슴 속에 이어도가 있다
내 가슴 속에 이어주는 섬이 있다
나는 징검다리 같은 이어도가 된다
-계간 ≪리토피아≫ 여름호 에서
배진성
1966년 출생. 1988년 ≪문학사상≫ 신인발굴 당선.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지상에서’, ‘길 끝에 서 있는 길’.
감상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간다.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주변의 누구도 내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다.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안고 가야할 중요한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제각기 섬이고, 그 섬들이 서로 딛고 건너야 하는 중요한 징검다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없으면 다음 발을 더 내디딜 수가 없게 된다. 거센 물살이 흐르는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더 이상의 징검다리가 없어 물살에 휩쓸려야 하는 상황이 된다며, 그렇다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데 다음 징검다리가 없어 절망하고 있을 때에, 그 급류 속에서 간간히 얼굴을 드러내는 징검다리를 발견한다면 그의 기쁨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시인은 스스로 이 숨어있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어 한다. 모습을 드러내고 말라있는 징검다리가 아니다. 숨어서 늘상 젖어있는, 숨어있다가 발견되어 그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세상의 징검다리가 되고 싶은 것이다. 이어도는 섬이다. 이어도는 풍랑이 높게 일어야만 보이는 섬이다. 파도가 잔잔하면 볼 수 없는 상상 속의 섬이다. 풍랑이 일면 얼굴을 드러내고 섬들을 이어주는 섬이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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