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노을/강인섭 시(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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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노을이 탄다
왼산에 불 붙은 듯
활활 타오르고 있다
다람쥐, 꽃배암도 굴러 떨어지는
낭떠러지 벼랑 끝에
철 지난 단풍잎 매달려
불타고 있다
온갖 고산식물과 약초들이
이슬 먹고 자라는 산골짜구니
그 깊은 앙가슴 속에
저녁 노을이 물들어
금강산 상팔담에서 만난
선녀와 나무꾼처럼
단풍나무와 노을처녀도
함께 어울려 불타고 있다
-시집 ‘시간 속으로’ 중에서
강인섭
1936년 고창 출생.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녹슨 경의선’, ‘녹슨 경의선과 그 이후’, ‘파리, 그 다락방 시절’, ‘강인섭 통일시집’, ‘시간 속으로’ 외 다수.
감상
노을은 아름답다.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태양이 하루종일 빛났기 때문이다. 태양이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 노을이 아름다울 이유는 없는 것이다. 세상의 만물들이 태양으로 인해 생명을 이었다. 살고 죽으며 나름대로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가꿀 수 있었다. 다람쥐, 꽃배암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단풍도 곱게 물들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선녀와 나무꾼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제 할 일을 다한 노을은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최선을 다해 온전히 불태우며 소멸한다. 우리는 일출을 보기 위해 신년벽두부터 강원도 바닷가로 향한다. 일출은 새로운 생명 에너지의 상징이며 희망이며 꿈이기 때문이다. 서산으로 지는 일몰은 찾는 이가 많지 않다. 생명이 다해 사라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체는 어떤 존재든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라지는 존재의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는, 모든 할 일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그 일몰의 장엄한 최후 역시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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