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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산비알/정진규 시(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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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4,572회 작성일 12-01-2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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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
1939년 안성 출생.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 공기는 내 사랑 외 다수. 현대시학 주간.


산비알



빛바랜 사랑이여 나이 든 여자가 들꽃을 꺾고 있다 혼자서 산비알에 엎드려 노오란 들국을 꺾고 있는 나이 든 여자의 굽은 허리여, 슬픈 맨살이 햇살에 드러나 보였다 히야! 오랜만에 눈물겨웠다 중얼거렸다 나이 든 여자의 슬프게 아름다운 신비알이여
-정진규 시집 사물들의 큰언니에서



감상/일출은 강렬하다. 떠오르는 태양은 그대로 새로운 생명 에너지를 무한으로 발산한다. 일몰은 아름답다. 저무는 태양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남은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만물을 낳아 키우고 다시 낳아 키우게 만드는 거대한 영혼의 마지막은 그래서 슬프도록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빛바랜 사랑이 슬프도록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활짝 핀 꽃이기를 원한다. 절대로 지지 않는 영원한 꽃이기를 바란다. 만개한 꽃이 되어 바람을 부르고, 벌나비를 부르고자 한다. 본능적인 생명성은 활짝 피어있어야 가장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봄은 왔다가 가기 마련이고, 청춘도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며, 꽃의 그 진한 향기와 색깔도 소멸되며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다시 봄은 올 것이고, 다시 청춘은 생겨나고, 다시 꽃은 활짝 필 것이지만, 그 봄과 청춘과 만개는 이미 세대가 바뀌어 있게 된다. 내 것이 아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지만 겨울을 기다리는 가을은 아름답다.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던 청춘이 있었기에 노년은 여유롭고 평화롭다. 산비알에 엎드려 들꽃을 꺾고 있는 굽은 허리의 나이 든 여자, 햇살에 드러난 그녀의 맨살에는 다 지지 않은 꽃잎이 아직도 달랑거리고 있다. 다 바래지 않은 꽃빛이 묻어있다. 빛바랜 꽃의 마지막 남은 생명 에너지를 읽어내는 노 시인의 가슴에도 아직은 꺼지지 않는 청춘의 생명 에너지가 활활 타고 있다. 여름이 와도 봄은 가지 않고, 가을이 와도 봄은 살아있다. 그것이 시의 힘이고, 시인의 위대한 에너지이다. 다시, 일출은 강렬하고 일몰은 아름답다. 나이 든 여자의 몸에 아직도 살아있는 청춘의 슬프도록 빛나는 꽃이여, 여인이여./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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