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어떤 생/이상옥 시(독서신문)
페이지 정보

본문
이상옥
1957년 경남 고성 출생. 1989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하얀 감꽃이 피던 날, 유리그릇 외 다수.
어떤 생
오지항아리에 작은 물고기 대여섯 마리
사오 리터 정도 되는 물 속에서 물칸나와
작은 고동 몇 마리와 어울려 살아간다
간혹 과자 부스러기라도 몇 낱 흩어주면
제법 물살을 일으키며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며칠치 식수에 불과한 물을 우주로 삼고
불평 없이 목숨을 이어가는 손톱만 한 생
문득문득 눈부시다
-이상옥 시집 그리운 외뿔에서
감상/인간이 가장 궁금해 하면서 영원한 숙제로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있다면 아마도 그 중 하나는 인간이 우주 안에서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생명체이냐일 것이다. 고등존재인가, 아니면 하등존재인가. 그러나 대개는 인간을 하등적인 수준의 존재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신비스러운 우주는 도무지 그 정체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더욱이 그 크기라는 것 자체가 오리무중이다. 인간의 시야 안에 잡혀 있는 지구나 태양계도 거대한 존재인데 그것들조차 우주 안에서는 먼지만도 못한 존재일 가능성이 짙은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존재란 존재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하찮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 생활로 돌아오면 인간은 대단한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엄청난 과학문명의 발전을 일군 유일무이한 생명체로 그지없이 당당하다. 언젠가는 우주의 신비조차 해결할 것처럼 오만하기도 하고, 마치 신이라도 될 것만 같은 환상 속에서 부유한다. 어쩌런 말이냐,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 할지라도 생명이 주어졌다면 사는 동안만은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지구가 오지항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오 리터 정도에 지나지 않는 물속이라 하더라도, 오지항아리를 우주로, 사오 리터의 물을 우리의 축복 받은 환경으로 알고 살면 그만 아닌가. 사실은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사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라도 인간은 살지 않으면 안된다. 어항 속의 금붕어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금붕어에게 어항을 마련해 준 것은 인간이다. 그들은 그 안에서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인간은 그들을 보살피며 여유를 즐긴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유롭게 유영하는 금붕어들의 생명의지가 반짝인다. 다시 뒤집으면 인간은 금붕어에 지나지 않는다.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베풀어준 어항 속에서 며칠치 식수에 불과한 환경을 그나마 축복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쓴 시인은 신앙인이다. 신앙인으로서 신에 대한 경배심이 묻어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이 시를 읽다보면 평소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자괴감이 풍자적으로 숨어있다고 주장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장종권
추천0
- 이전글자화상2/백인덕 시(독서신문) 12.01.26
- 다음글개구리가 가갸거겨/박선우 시(독서신문) 12.01.2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