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우리들의 봄날/김행숙 시(독서신문)
페이지 정보

본문
우리들의 봄날
때죽나무 꽃그늘 아래
어렸을 적 동무들과 쑥을 캔다
산속에선 비둘기, 딱따구리 소리
까르르르 터져나오는 팝콘 같은 웃음소리
여기서 그만 멈추고 싶은
우리들의 봄날
용케 왔구나
꿈결처럼 지나온 세상
진흙탕 쑥굴헝에 발이 빠져서
우레와 같이
파도와 같이
그 세월 어떻게 흘러흘러 왔던가
때죽나무 바람이 불자
하얗게 쏟아지는
눈물 어린 종소리
또 종소리……
-김행숙 시집 '여기는 타관'에서
김행숙
파주 출생.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유리창나비', '여기는 타관' 외. 기독교문학상 수상.
감상
人生無常이란 인생은 덧없다는 말이다. 국어사전적 의미로는 시간이 매우 빠르다거나 쓸모가 없어 헛되고 허전하다 정도의 뜻이다. 그러나 한자적 의미로 풀면 좀 달라진다. 常은 변함이 없이 일정하다는 뜻이고, 變의 반대 글자이다. 그러니까 無常은 바로 變의 의미가 된다. 불교적 의미로는 常住하는 것이 없다는 의미이겠다. 인생이란 한 자리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므로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닐까. 나이가 들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마치 한 순간의 꿈같을 것이다. 세월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으며 이제는 꿀래야 꿀 꿈조차 남아있지가 않다. 어렸을 때에는 미래가 아름다운 꿈이었다. 앞으로 살아갈 다양하고 대단한 내일이 버티고 있어서 먹지 않아도 행복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꿈이 사라지면 거꾸로 지나온 세월이 아름답게 보일 법도 하다. 자신에게 없는 미래란 비극적인 것이고, 죽는 날까지 그래도 살아있으려면 지나온 과거의 흔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사람이지 않을까. 어린 날의 추억이란 아무리 부끄러운 기억이어도, 아무리 아픈 기억이어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부끄러워서, 마음이 아파서, 더 아름답다. 때죽나무 아래에서 쑥을 캐던 동무들, 그 때 들려오던 새소리, 바람소리는 이제 그 자리에 다시 서서 들어도 돌아오지 않고 들려오지도 않는다. 동무들은 모두 어딘가로 떠났다. 새들도 모두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때의 때죽나무와 그때의 새들이 아니다. 그런데 무심코 바람 한 줄기 불면서 눈물어린 하얀 종소리 들려온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어린 날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종소리, 세월의 굴헝을 헤치고 나온 건강한 삶의 축복이다./장종권(시인)
- 이전글굴렁쇠/허금주 시(독서신문) 13.01.09
- 다음글다만, 내게 있어서/한영옥 시(독서신문) 12.01.2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