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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굴렁쇠/허금주 시(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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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3,443회 작성일 13-01-09 18:17

본문

굴렁쇠

 

 

이제 너 가는가

하늘과 등을 맞댄 그 언덕길로

동그랗게 비어서 달려가는 굴렁쇠

꿈도 지나고

하늘도 지나고

애잔한 기억의 눈꺼풀을 덮어 버리고

굴러서 굴러서 잘도 간다

멈추어 차마 돌아보기 두려운

마흔 해의 눈물꽃

먼 나라, 굴러서 가도 닿지 않는 나라로

따라오는 바람조차 다 흘려보내고

빈 몸에 훨훨 불사르며

이제 너 가는가

 

-허금주 시집 ‘옥돔구이’에서

 

 

허금주

부산 출생. 1993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책으로 태어나는 여자’, ‘오늘만 아름다워라’ 외. 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감상

1988년 9월 17일 서울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 한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등장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소년에게로 집중되었으며, 후에 이 퍼포먼스는 대단히 감동적이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미래의 희망인 어린 소년을 동력으로 하여 인류가 굴렁쇠처럼 영원히 평형을 잃지 않고 건강하게 굴러가기를 소망하는 염원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굴렁쇠는 둥글다. 그러나 둥근 데에 그치지 않고 굴러가야만 굴렁쇠이다. 지금이야 어떤 동네의 어떤 아이들도 흘러간 시대의 골동품인 굴렁쇠를 굴리지 않는다. 하지만 둥글둥글 굴렁쇠야, 굴러굴러 어디 가니 노래를 부르며 굴렁쇠를 몰고 가는 어린 시절의 아이들을 상상해보자.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들에게는 앞길만 보인다. 왼쪽도 오른쪽도 보이지 않고 지나온 뒤쪽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무조건 앞길만 바라보며 내달린다. 가능하다면 널따란 길, 가능하다면 평평하고 고른 길을 골라간다. 그것이 굴렁쇠가 굴러가야하는 길이고 안전하게 굴러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달리다보면 가속도가 붙기도 한다. 제 몸이 가열되어 뜨거워지기도 한다. 방향을 바꿀 때마다 묘한 스릴과 속도감을 느끼게 된다. 굴렁쇠는 절대로 뒤돌아가지 못한다. 멈춰서야만 비로소 뒤돌아볼 수 있다. 멈추는 순간 굴렁쇠는 이미 본성에서 벗어난 상태가 되고 만다. 굴렁쇠의 운명은 앞으로만 내달리는 데 있는 것이다. 이미 한 번 구르기를 시작한 굴렁쇠, 다시는 멈출 수 없는 굴렁쇠, 지나온 골목과 지나온 시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굴렁쇠, 멈출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계속 굴러가야만 하는 굴렁쇠, 건강하게 굴러가야만 굴렁쇠로서의 본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굴렁쇠, 우리네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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