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나는 당신에게 너무 오래 찔렸다/강영란 시(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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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 너무 오래 찔렸다
감은
왜
꽃은
왜
꽃에서 시작해서
열매일 때까지
달과 별의 운행이
차고 기울 때까지
나는
왜
당신에게 매달려 있습니까?
-강영란 시집 ‘소가 혀로 풀을 감아올릴 때’에서
강영란
1998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0년 <열린시학> 신인상 당선.
감상
생명은 어떤 존재이든 그 존재의 시작과 끝을 관통한다. 그 존재가 이 땅에서 사라질 때까지 생명활동은 지속되는 것이고, 그 존재는 살아남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방식을 통해 지순한 생명활동을 계속한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인류의 종족 보존을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한다. 더 나은 인류를 위해 강력하고 아름다운 진화를 꿈꾼다. 우리는 그 과정 중의 한 송이 꽃일 뿐이다. 한 개의 열매일 뿐이다. 꽃이 시든다고 서럽지 않은 것은 아닐 게다. 꽃도 시들 때가 되면 못견디게 서러울 게다. 그러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은 더 나은 후손을 위한 거룩한 희생이다. 보다 건강한 열매가 되어 보다 진화된 씨앗을 남기는 것이 숙명적인 과제이며 자신의 버릴 수 없는 역할이다. 우리는 이것을 간절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겨울로 다가가는 감나무에 외롭게 매달려 있는 감 하나가 더 오래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아니다. 탐스러울 것도 없는 고독한 모습이지만 생명의 본질을 드러내주어 끝없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 나는 당신에게 소중한 열매이다. 이미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으며 바로 당신 자신이기도 한 것이며, 바로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겨울이라는 험준한 산맥을 지나 우리는 더 아름다운 진화의 꿈이 펼쳐지는 봄으로 향한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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