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맹견/김중일 시(독서신문)
페이지 정보

본문
맹견
자정에 찾아오는 주름투성이 맹견 한 마리
땅에 떨어진 흙투성이 아이스크림을 핥아올리듯
자정에 찾아오는 상처투성이 맹견 한 마리
매일 밤 조금씩 주름져 흘러내리는 내 얼굴을 핥는다
혀처럼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 잽싸게 긴 바람을 핥듯
-시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에서
김중일
1977년 서울 생.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불편’ 동인.
감상
‘사람이 사람의 탈을 쓰고’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다운 짓을 해야 한다는 의미 같기도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무리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짐승의 모습이 들어있기 마련이라는 의미가 있는 듯도 하다. 본능대로 산다면야 짐승스러운 기질이 한껏 펼쳐지련만, 이성이라는 것이 항상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답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도 짐승스러운 본능을 어찌할 수는 없으니 어쩌랴. 그 자연스러운 본능의 발현 속에서 무한한 에너지가 창출될 수도 있으니 참으로 사람은 딱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짐승스러웠을지도 모르는 원시를 추억하는지도 모른다. 짐승스러운 본능을 꿈처럼 간직하고 언젠가는 자유스럽게 발현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는지도 모른다. 정오와 자정의 차이, 낮과 밤의 차이는 이성과 본능의 차이 같기도 하다. 자정 녘 젊은 맹견을 끌어들여 이성과 본능의 경계를 넘나드는 치열한 시의 세계가 보이는 듯도 하다./장종권(시인)
추천0
- 이전글이어주는 섬/배진성 시(독서신문) 13.01.09
- 다음글박태기꽃/장정자 시(독서신문) 13.01.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