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정신을 갉아먹는 시에 푹 빠진 김다솜 시인/인천뉴스
페이지 정보

본문
정신을 갉아먹는 시에 푹 빠진 김다솜 시인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두蠹
비타민, 미네랄을 갉아먹기 좋아하는 그는 우엉, 연근, 당근, 피트, 색색의 뿌리를 먹는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꽃, 풀, 잎사귀와 바람을 조각조각 갉아 먹고, 햇살도 몰래 갉아 먹는다. 과자와 불량식품이 목구멍을 갉아 먹게 하는 그는 피부를 위해 태반도 먹고, 녹용도 먹는다. 한약, 양약, 건강식품도 갉아 먹는 그는, 손톱, 발톱도 맛있게 갉아 먹는 그는, 내가 잘 먹는 소꼬리와 닭발, 족발도 뜯어 먹지 않는다. 때론 호로몬이여, 보톡스여, 사랑이여, 노래하면서 갉아 먹는 취미를 가진 나는 눈과 귀, 입을 위해 TV를 먹고, 인터넷을 먹고, 손전화를 먹고, 전자파를 갉아 먹고, 언제 내가 너를 먹었나 모른 척한다. 생명의 구원자처럼 나타난 비아그라가 사타구니를 갉아 먹는다. 온갖 냄새와 향기를 갉아 먹는 그는, 시를 쓰는 나를 갉아 먹고, 생각마저 갉아 먹는다. 나를 갉아 먹는 그림, 노래, 춤, 나를 갉아 먹는 머리칼, 나를 갉아 먹는 말, 말, 말.
-계간 리토피아 여름호에서
김다솜
상주 출생. 2015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먹는다는 것은 결국 소모시키는 일이다.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무엇이든 먹어야 하지만, 먹는 만큼 육체는 그 수명을 줄여가게 된다. 우리를 하루라도 더 살게 할 수 있는 먹거리라면 무엇이 있을까. 만약 있다고 하면 그것을 찾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 건강하기 위해, 더 오래 살기 위해, 더 좋은 것들을 열심히 찾아 먹는 것은 생명체의 본능에 해당한다. 그러나 장담할 수는 없다. 그것들이 육체를 더 소모시키는 일 외에 원하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는.
정신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수명은 줄어들까. 늘어날까. 반대로 무엇이든 붙들고 늘어지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면, 우리의 수명은 줄어들까. 늘어날까. 사람답게 사는 일과 그저 오래 사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철학하는 이성과 사유하는 가슴으로 우리는 무엇을 더 의미 있게 만들고 가치 있게 만들고 어디까지 추구할 수 있을까.
시인은 먹는 일과 시를 쓰는 일, 다시 말해 생각하는 일 모두가 자신을 갉아먹는다고 말하고 있다. 정신을 빛나게 닦는 사람들은 먹거리로서 육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 대해 등한시하며 혹자는 혐오감마저 가질 수 있다. 육체를 끌고 가는 것이 정신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몸이 망가지면 정신도 소용이 없다. 몸이 병든 이후에는 시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내기가 어려워진다.
시를 포함하여 본능적인 섭취가 마치 동물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물론 있다. 때로는 불필요하게 몸과 정신을 피로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시인은 후자이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시를 쓸 수밖에 없으니 아이러니다./장종권(시인, 문화예술소통연구소 대표)
- 이전글벼랑 끝에 심은 꽃에 분노하는 남태식 시인/인천뉴스 17.01.06
- 다음글땅과의 대화에 몰입하는 최정 시인/인천뉴스 17.01.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