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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정재학 시 '녹'/경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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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945회 작성일 17-01-13 16:04

본문

녹(綠)

 

 

이십년 넘은 아파트에서 녹물이 나온다. 녹물로 밥을 지어먹고 녹차를 끓여먹고 양치를 했다. 녹물을 많이 마시면 우울해진다. 종일 무기력하고 졸음이 쏟아진다. 눈물에서 쇳가루가 검출되었다. 머리가 녹슬고 가슴이 녹슬고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도 녹슬었다. 노란색을 보면 우울해진다. 노란 나비가 나에게 침을 뱉는다. 노란 꽃도 싫어지고 은행나무 잎도 싫어졌지만 난 노란 살덩이가 되어 누런 오줌을 싸고 있었다.

-정재학 시집 <모음들이 쏟아진다>에서

 

 

정재학

서울 출생. 1966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광대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 박인환문학상 수상.

 

 

감상

오래된 아파트 수도꼭지에서 녹물이 쏟아진다. 녹물이 눈에 보일 때까지는 그 동안 서서히 마신 녹물이야 오죽하랴. 녹은 산화작용으로 인해 쇠붙이 표면에 생기는 물질이다. 대부분 붉거나 검거나 푸르지만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발견하는 녹물은 누렇다. 누런 녹물을 마시다보니 노란 것들에게까지 거리낌이 생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의 몸조차 이미 누렇게 녹물이 들었으니 이미 늦은 것일 수도 있겠다. 녹슨 수돗물은 타성에 젖었던 지난 시간으로까지 확대 해석이 가능할 것도 같다. 늘 갈고 닦고 갈아야만 제 빛을 낼 수 있는 것인데, 게으름 탓일까. 제 빛을 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자조적인 심정도 엿보인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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