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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내몽고여행 초원의 몽고아가씨/징기스칸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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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6,720회 작성일 10-09-0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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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초원속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낙타를 끌고 이동했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멈추어 섰다. 낙타는 수풀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이윽고 한 지점에 이르자 하늘을 향해 슬프게 울부짖었다. 사람들은 그곳이 1년 전에 자신들이 만든 묘임을 알아냈다.
꼭 1년전, 그곳 지하 깊숙히 시신을 묻어 두었던 것이다. 매장이 끝난 다음 흙을 덮고, 그 위를 수백 마리의 말이 달리게 하여 단단히 다졌다. 잠시 뒤 사람들은 어미낙타와 새끼낙타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시신을 묻은 바로 그 위에서 새끼 낙타의 목을 쳤다. 어미낙타는 새끼낙타의 냄새를 맡으며 슬프게도 울부짖었다.
1년이 지났다. 묘 부근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돋아 있다.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묘인지 사람의 눈으로는 분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작년의 그 어미낙타를 데리고 온 것이다. 낙타는 새끼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의 매장풍습에 관해서는 이와 같이 적혀 있다. 몽골인을 비롯해 북아시아 주민들은 시신을 매장하고 표시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설사 왕의 묘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곧 그 소재를 잊어 버리게 된다. 몽골제국 황제들의 묘를 지금 하나도 알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징기스칸의 묘도 어디에 있는지 알수 없는 것이다.
1227년 여름, 징기스칸은 서하(西夏)를 공격하기 위해 중국의 서부 깊숙이 원정을 했는데, 그 곳에서 병을 얻어 쓰러졌다. 죽은 것은 8월 18일 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엄중히 비밀에 부쳐졌다. 징기스칸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유해는 몽골의 힘센 장사들에 의해 비밀리에 초원길을 걸어 북으로 북으로 운반되었다. 도중에서 행렬을 본 사람들은 가차없이 살해했다. 이렇게 해서 케르렌강 상류의 본영에 달했을 때 비로소 죽음을 발표했다. 원정을 나간 왕자나 장군들에게도 파발을 띄었다. 가장 멀리 갔던 사람은 3개월 뒤에야 도착했다.
장례가 끝난뒤 유해는 성스런 부루칸산 깊숙이 매장됐다. 그곳은 오논.케루렌.토라 세
강의 발원지였다. 일찍이 징기스칸은 이 땅에서 사냥을 했을때 큰 나무 아래에서 쉰 적이 있다. 그때 부하들에게 죽으면 이 곳에 묻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징기스칸이 이
부루칸산 속에 묻힌 것은 확실한 듯하다.
그러나 산 속의 어디쯤인지는 알 수가 없다. 묘소에는 수목이 무성하게 자라 밀림으로
변했고, 어느 나무 아래에 잠들어 있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근년에 이르러 몽골인민공화국에서는 민족의 영웅 징기스칸의 묘를 찾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과학기구를 활용해서 관이 있는 곳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설사 왕의 것으로 생각되는 관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로 징기스칸의 것인지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징기스칸은 몇 살에 죽었을까. 이것도 또한 몇 가지 주장이 있어 확실하지 않다. 어느 책에는 72세라고 기록되어 있고, 어떤 책에는 68세라고 적혀 있다. 60세 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은 태어난 해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1162년에 태어났다는설, 1167년에 태어났다는 설 등 출생에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그러나 12세기 중반 무렵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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