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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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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에서 자취를 하면서 재수를 하던 청년이 10일 전 갑자기 행방불명 되었다. 가족들이 갈 만한 곳은 백방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다니고 있던 학원을 찾아가 행적을 물으니 친하게 지내던 한 여 학생이 있다고 했다. 청년의 어머니는 그 여학생을 만났고, 그녀로부터 그가 가출하던 전 날에 있었던 일 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여학생은 울진 죽변이 집으로 그곳에서 좀 떨어진 울진읍이 집인 청년과는 같은 고향이었다. 객지에서 만 난 고향 사람이기도 해 두 사람은 항상 같이 다닐 정도로 아주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주말이나 방학 때 고향에 왔을 때는 여자의 집이 있는 죽변 바닷가에서 만나곤 했다. 그녀는 청년을 친구로만 생각했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았고 이성의 여자로서 다가가고 싶어했다. 여학생은 그런 그가 점점 부담스러워졌고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후에 둘이 자주 가는 호프집에서 만나 그를 남자로 생각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것 같으니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했다. 그날 청년은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고, 그 다음 날부터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청년은 10일째 되는 날 저녁쯤에야 초췌하고 지친 모습으로 울진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1.
몇시인지? 낮선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눈이 부시다. 속이 메스껍고 쓰리다. 술을 마신 것 같은데, 누구와? 어데서? 몸을 일으켜 물을 찾다 쓰러지듯 눕는다. 그런데, 여기는 어딘가? 나는 누군가?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내 이름은? 나의 집은? 부모는, 친구는...?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물음표만 쏟아진다. 나와 연결되었던 모든 것은 끊어지고, 언듯 떠오르는 것은 등대와 그 뒤에 크로즈업 된 여자의 얼굴!
2.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잡히는 수첩 하나. 방언 같은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이 들은 누군가? 나와 어떤 관계인가? 여기는 수첩 속의 순천, 나는 이곳을 모른다.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oo이라 부르는데, 노태우는 알아도 나는 그들은 모른다. 한글 만든 사람은 세종대왕인 줄 알아도 난 도대체 그들을 모른다. 부산.....서울.....모른다, 모른다, 계속 모른다.
3.
그런데 나는 바다처럼 조용하다. 여전히,계속, 편안하다. 이 편안함의 정체는? 조용함의 정체는? 어디를 가도 등대와 여자는 계속 따라온다. 아니 이제 나는 등대와 여자를 따라간다.
3.
울진이라는 곳, 낮선 대문 열고 들어서는데 웬 여자가 뛰어나온다. 내가 아들이라 하는데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 여기가 내 집이라 하는데 나는 여기를 모른다. 안방 벽 외항선원 복장의 남자 사진, 내 아버지라 하는데 나는 그를 처음 본다. 오로지 떠오르는 것은 등대와 여자! 오늘도 나는 최면처럼 조용하다, 편안하다.
4.
바다가 보이는 병동 쇠창살에 걸려있는 연 하나! 그래, 사람도 팽팽하면 끊어지는구나!
댓글목록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팽팽하면 끊어지는 연줄처럼, 사람도 팽팽하면 끊어진다?<br />
내 고향 울진과 연관된 에피소드를 기록한 산문도 참 감동적으로 읽었었는데<br />
드디어 그 기억을 시로 이렇게 형상화 하셨네요.<br />
미리 알고 있는 이야기여서인지 이미지가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릅니다.<br />
2년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몇 일 전에 머리 깎고 산에 들어와 있다고<br />
연락을 해왔던 후배가 문득 생각납니다.<br />
정신을 놓아버린 도피와 세상을 떠난 도피, 또는 회피.<br />
회피하고픈 기억들도 많고 도피하고픈 순간들도 많았지만<br />
그래도 어찌어찌 이렇게도 살아지는 이것이 삶이겠지요. <br />
비록 꿋꿋이는 아닐지라도..<br />
좋은 시 잘 감상했습니다. 건필을.

유정임님의 댓글
유정임 작성일
김시인님, 안녕하세요, 그쪽에도 봄이 무르익어 모란꽃 봉오리 어느새 불거지진 않았는지요.<br />
이이야기는 지난번 산문에서 본 이야기였는데 시로 만드셨군요. 시로 만드니 훨씬 이미지가 선명해진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더 좋게 읽혔습니다. 그런데 첫연 상황 설명이 없는게 훨씬 긴장감있고 생각할 여백이 많아 좋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미 알고 있는 얘기라서 위에 상황을 빼고 읽어도 아래 1 2 3 4 가 이해가 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 몇번 빼고 읽어 보았는데 좀 설명이 덜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게 훨씬 재미있게 감명깊에 읽혔습니다. 건강하세요.

김영식님의 댓글
김영식 작성일
절절한 느낌의 이야기 기억이 나는군요.<br />
<br />
4. 의 화자가 '나'라면 팽팽하였는지도 느슨하였는지도 모를 터. <br />
문득 쳐다본 저 하늘, 줄이 끊어진 연이 날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 정도로 표현되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