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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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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라 굳게 맹세했던 첫마음 첫키스의 달콤한 추억만 안고 (우리 가는 길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의 길이라 하자) 그 첫마음이 하나였다가 둘이었다가 갈래갈래 찢어져 오래전에 흔적조차 흐릿해졌어도 (우리 온 길도 한 치 뒤가 보이지 않는 굽이굽이 꺾여진 안개의 길이었다 하자) 볼 수만 있다면 긴 밤의 차운 별빛 달빛 온 몸에 다 안고 저 안개의 뜰에 둥둥 떠오르다가 (우리 온 길 뒤가 가늠되지 않으니 안 보인다 하자) 안개 드디어 걷혀 햇살 아래 다 벗은 몸뚱아리 부끄럼없이 드러내며 초롱초롱 빛나는 (볼 필요도 없다고 하자 뒷걸음질은 절대 칠 수 없다고 하자) 가리라 우리 지금도 가리라 우리의 만남이 한때라도 저 물방울처럼 아름다웠으면 (투사의 시대 다 지나간 길에 국익을 등에 업고 오시는 당신을 새로운 투사라 하자) 지금도 여전 빛나지 않으랴 마음 갈라져도 몸만은 아직 함께 있으니 (애국주의자에 민족주의자인 당신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한 밀레니엄 선지자라 하자) 그래도 혹여 우리 가는 안개길의 끝이 낭떠러지이고 햇살 점점 따사로와지면 가뭇없이 사라지는 (당신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조금 일그러졌더라도 국익 앞에서라면 그저 스치는 바람 맞듯 하자) 사라져 마침내 다시 땅 속 깊이 숨 죽이고 엎드려야 한대도 (당신이 기회주의든 사대주의든 보수든 진보든 누구와 몸 섞더라도 국익 앞에서라면 그저 흐르는 물보듯 하자) 어떠랴 오래도록 우리 허허로왔으니 우리의 꿈 우리의 사랑 우리의 그리움 몸짓 웃음짓을 위하여 (세세만년 만방에 당신의 이름 크게 떨치리니 잠시만 못된 시에미 앞에 선 며느리처럼 귀 막혔다 눈 감겼다 입 잠겼다 하자) 가리라 볼 수만 있다면 이 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의 길이라도 가리라 (그리고 다시 이대로 두면 영원히 우리 가는 길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그저 안개의 길이라 하자)
<사람의 문학> 2006.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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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지독한 사랑'이라는 시제가 내포하고 있는 사랑의 수사가 너무 강렬하여 전률을 느낌니다<br />
그런데 긴 산문시에서 가끔 경험하는 일인데, 문장부호를 생략하는 것도 시인이 시적효과를 계산한 시작일테지만, 독자는 지루하거나 혼란스러울 때가 있지요. 처음엔 그냥 보았고, 두 번째는 괄호 묶음 속을 빼고 보았습니다. 시인이 의도하는,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를 (...)장치로서 놓은 시적 구성이 효과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한편 난시적 혼란을 느끼게도 하는데(저의 고착된 시보기이겠지만) 어떤 특정한 사회적 이슈를 이렇게 시로 담아내신 남시인님의 저력에 감탄합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댓글을 올립니다. 오늘은 풍향계가 남풍입니다. 설 잘 쇠시고 건필을 빕니다. <br />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허시인님 감기는 끝내셨는지요? <br />
허시인님도 설 잘 쇠시고 건필하시기 바랍니다.<br />
말은 하고 싶은데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하기 싫고<br />
직접 발언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말이 될 것 같지도 않고 해서<br />
이번에는 좀 억지를 부렸습니다.<br />
해서 몇 년 전 무주 적성산에 올랐다가 메모했던 <br />
이쁜 풍경 메모를 이렇게 억지상황으로 바꾸어서 연결했습니다.<br />
언젠가는 이쁘게 상황 설정해서 마무리 해야지 하고 <br />
미완성으로 두었던 시작 메모를 엉뚱한 곳에 갖다 붙여놓고서<br />
조금 섭섭하기도 했지만 어쩌겠습까, 못된 시인 되어버린 걸<br />
문장부호 문제는 지금부터라도 고민해야 할 부분인 듯 싶습니다.<br />
다른 분에게서도 문장부호 관련 조언을 들었거던요.<br />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