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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웅이 엄마를 웅이라고 부른다. 웅이는 진이 엄마인 나를 진이라고 부른다. 같은 해에 아이를 낳고 같은 층에 마주보고 살았다. 업고 다니던 아이를 같은 유치원에 보내고 슈퍼도 같이 가고 목욕탕도 같이 가고 눈만 뜨면 붙어있었다. 얼굴만 봐도 서로 가려운 곳 척척 알아서 긁어줄 때쯤 웅이가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싸우고 등 돌려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부르르 달려오던 웅이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잊을 만하면 전화해서 새끼 때문에 속이 썩는다며 등만 내민다. 나도 가끔 전화만 한다. 속이 터져 등 내밀면 시원하게 밀어준다. 몇 시간씩 전화통에 붙어 눈물 찔끔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웅이는 서울와도 나를 만나지 않고 내려간다. 나도 그렇게 한번 내려오라는 부산에 간 적이 없다. 전화번호가 바뀌면 잊지 않고 알려준다. 바뀐 전화번호 옆에 웅이라고 적는다. 웅이도 내가 불러주는 전화번호 옆에 진이라고 적었을 것이다. 띠가 같고 고향이 어디쯤인지 짐작은 하지만 나는 아직 웅이 엄마 이름을 모른다. 웅이 엄마도 내 이름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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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여자는 '엄마'가 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지운다 자식의 이름을 엄마라는 명사 앞에 우주만한 수식으로 刻을 하고 그저 엄마로 존재하는 것에 토를 달지 않는 卑屬으로 머무는 것을 자초하는 이 시대의 의식구조를 시인은 경험을 통하여 잔잔히 서술하지만 그저변에서부터 솟구치는 자아의식이 자조처럼 출렁거리는 결을 본다 그래서 아마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일 게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니까(진이 엄마에서 장성혜시인으로).<br />
타인과 관계지어지고 소통하고 그 연속이 우리의 보편적인 삶의 내용(그것이 보이지 않는 '등'까지 긁어줄 수 있는 관계라 하더라도) 그 이상은 아니기 때문에 時空을 넘을 수 없는 단편에 머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단편 단편이 이어지는 조각보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br />
이 시 한 편에서 쓸쓸한 한기마저 느낀다. 창 너머 노란 은행 잎 하나 빗금으로 지고...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시선이 일상에 주어지며 장시인님, 시상이 마구 떠오르시는 것 같네요. 도시인에, 여성들에 인간관계의 단면인 것 같은데 참 감칠맛이 있습니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시는 읽을 때가 아니라 읽고나서 혼란스러워야 한다고.... 술술 읽고 팅하게 흔들립니다.

김효선님의 댓글
김효선 작성일등..........은 참 많은 일? 을 하나봅니다. 생각해보면 따뜻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가진 곳이지요.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 사람, 등을 살포시 안아주는 사람,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사람, 등에 얼굴을 기댄 사람............등 돌려 자는 사람들, 등을 보이며 가버린 연인, 등짝을 후려치는 사람, 등 돌리고 가버린 사람,...............등 등?...............의미의 내포가 참 많은 언어를 시 속에 온전히 가져다 놓기가 쉽지 않은데........갑자기 등이 가려워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