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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물살이 감긴다
압축된 바다가
멸치 뱃속에 꽉 찼다
쓰고 짜고 비릿하다
배알을 뽑히는 멸치의 자존심이
이빨을 허옇게 드러내고
가시 끝마다 서린 독을 뿜어
손가락 지문을 물고 늘어진다
파도를 가르던 철심 같은 등뼈와
암초를 비껴가던 메꽃씨만한 눈의 시력은
높은 촉수의 랜턴처럼 환했으리라
한 끼 찬거리를 위해
작디작은 물고기 뱃속의 아득한 바다를 뒤적거리는
하얀 손톱이 멸치 아가미에 자꾸만 걸린다
뭍에서도 어두운 길눈이
바다를 쥔 멸치의 흑집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풍랑과 맞서
수만 갈래 물길을 냈을
멸치의 묘수
입신에 든 몸을 받쳐 들고 슬며시 계면쩍어지는 뭍살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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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언젠가 먼저 읽었던 시인 것 같아서 앞뒤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먼저 읽었던 시가 보이지 않네요. 아마 그 전에 올렸던 시를 고쳐서 다시 올린 것 같은데 먼저 올렸던 시는 어디에 갔나요? 역사는 푸르른데 기록은 없네요. 후후<br />
술을 한 잔 먹어서인지 생각이 굉장히 공격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연속으로 올린 시 댓글을 읽고 서글퍼질지도 모르지만 서글퍼질 때는 지더라도 지금은 발정난 수캐마냥 공격적으로 헐떡거리고 싶습니다.<br />
제 기억을 더듬건대 지난 번 올린 시에는 시적 상상력으로 들어가기 전 시적 상상력의 배경이 된 현실이 존재했던 듯 싶은데 이번에 올린 시에는 처음부터 시적 상상력을 발동시킨 현실은 뒷간으로 밀어내고 바로 시적 상상력으로 들어가셨군요. 모호함과 애매함과 의미의 심층으로 바로, 즉각.<br />
<br />
"이제는 바다를 그저 보기만 합니다. 1년 내내 바다에 발도 담그지 않고 지내는 해도 있습니다. 참 자주 바다를 가면서도 그렇습니다. 그냥 봅니다. 가만히 앉아서 그냥 가만히 봅니다. 그저 좋을 뿐입니다. 그냥 그렇게 바닷가에 앉아있으면 이유도 뭐도 없이 그냥 좋습니다. 파도가 치면 치는대로 고요하면 고요한대로 그냥 그렇게 좋습니다.<br />
아침에 차를 타면 저는 습관처럼 왼쪽 창가에 앉고 저녁에 차를 타면 습관처럼 또 오른쪽 창가에 앉습니다. 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출근을 하고요, 남쪽에서 북쪽으로 퇴근을 합니다. 바다는 항상 동쪽에 있습니다. 바다는 항상 제가 앉아가는 창가에 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한 모습으로, 날이면 날마다 변화하는 얼굴로 그렇게 있습니다. 바다를 따라 퇴근하는 기분이 어떠냐고요, 그건 무심입니다."<br />
<br />
뭘 열심히 얘기하고자 시작했는데 술 탓인지 갑자기 할 얘기를 잊어버렸습니다. 허청미 시인님, 죄송합니다. 해서 밑도 끝도 없이 김인자 시인에게 보낸 편지글 한 부분을 복사해서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만 끝. 오늘은 잘랍니다. 너무 덥습니다.<br />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저는 멸치를 안까봐서 모르는데 그 작은 것에 대한 인간의 행위가 많은 생각을 몰고오는 것 같습니다. 침습해 오는 이 연상들은 멸치에 대한 죄책감에 발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너무 정신분석적일까요? 김기택의 <멸치>라는 시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