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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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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민박이 오늘 내 거처다
한밤중 목이 말라 계단을 내려오는데
어둠 속 수족관 유리벽이 견고하다
바다 쪽을 향한 머리들, 곰곰이 뭘 궁리할까
광어 도다리 우럭 대게
탈옥을 꿈꾸는가, 잠도 안 잔다
지금 이 목마름은
엊저녁에 내가 소주와 상추로 보쌈 했던
저 물고기들의 타는 목일 게다
내 안에 갇힌 囚人들아, 너, 너, 또 너를 호명한다
나가라, 철썩이는 구룡포 앞바다가 자유다
유리벽에 어른거리는
플라스틱 도마 위 시퍼런 칼의 그림자
저 음모의 혀가 기침하기 전에
어서 뛰어들어
밤새 방파제를 두드리는 바다의 타전
비밀의 문자를 풀어봐
해삼 멍게 도다리 우럭이
명치끝을 치고 솟구친다
내 안에 수족관 수문이 터졌다, 속이 후련하다
어둠이 거친 새벽 모래밭에
젖은 미역 잎들 엉켜있다
누가 벗어던진 囚衣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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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구토를 이렇게 풀어 내시다니, 참 좋습니다.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br />
보이지 않는, 그러나 나를 제한하는 유리벽에 막혀 <br />
보이는 곳 저 켠의 세계를 바라보는 입장으로 말하자면 <br />
나 또한 물고기와 그리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br />
끊임없이 유리벽에 머릴 부딪치는 우럭이나 돔, <br />
옆 놈을 밟고 긴 다리로 발버둥치며 유리벽을 넘으려는 대게<br />
그러거나 말거나 바닥에 널브러져 <br />
맘 편하게 코를 벌름거리는 도다리 광어 <br />
그렇게 제 각각인 놈들의 짓거리를 보면 수족관이란 곳이 <br />
하긴 인간의 여러 모습을 모아놓은 듯도 하네요. 어쨌거나<br />
죽음이 내 몸속의 뼈를 해방시켜 푸른 인광을 들어내기 전까지<br />
나도 저 수족관의 삶을 견뎌야 할텐데, 참 가당찮은 일입니다. <br />
도다리처럼 까짓거 그래라... 고상하게 책이나 읽다 가야할지<br />
대게처럼 나를 제한하는 껍질을 깨기 위해 <br />
폼 나게 발버둥쳐야할 지, 아니면 <br />
보이는 곳 저 켠에서 들려오는 모로스 부호를 해석하기 위해 <br />
순례의 고를 견뎌내야할지... 하지만, 어떻게 하더라도 <br />
내 삶을 가두는 저 수족관의 유리창이 깨어지는 듯한 후련함은 <br />
끝내 다가오지 않을 듯 합니다. 어두운 밤<br />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선생님의 시 <br />
뼈 속의 뼈를 바라보듯 읽습니다. <br />
<br />

심인숙님의 댓글
심인숙 작성일
구토라는 제목으로 퇴고를 하셨군요. <br />
차암 좋습니다.<br />
깔끔하고 거침없는 문장으로 제대로 다듬으셨습니다 <br />
그들의 탈옥을 이렇듯 멋지게 그려내시다니...<br />
펄떡이던 제 속도 후련해집니다.<br />

유정임님의 댓글
유정임 작성일
어제밤엔 그 서늘함이 가을인듯 했습니다.오늘 허시인님의 시도 더위를 싹 벗어 팽개쳤네요.<br />
그래서인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침묵하고 계신 긴날동안 혼자서 시만 곱씹고 곱씹으셨군요.<br />
구토라는 제목이 이야기를 모두 살게 하는것 같습니다. 단하나 <곰곰이 뭘 궁리할까> 이부분은 빼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다음< 탈옥릉 꿈꾸는가>와 겹친 이미진데, 시작에 많은 변화가 있으신듯 합니다. 건필을!

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전 요즘 수족관속에 내가 갇혀 있는것 같아요<br />
<br />
요즘은 언어와 문자가 없는 가장 자연에 가까운곳으로 가는 꿈도 꾸고요<br />
<br />
몽골이나 남태평양쯤......<br />
<br />
내안의 수족관과 비밀의 문자라는 부분이 마음에 와서 닿습니다<b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