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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대한 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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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유기적 특성을 무기적으로 변화시킨다.
먹기 좋게 썰어진 한 점의 살을 익히면
약 12억 개의 세포가 소멸된다.
12억 개의 미토콘드리아와 DNA군, 소포체와 미세소군
12억 개의 생명, 12억 개의 소우주가 소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불을
생성이라고 믿는다.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듯
집안의 구심점에 놓여진 화덕과, 그 속의 불은
남근적 생성원인으로 숭배되었다.
배화 역시 불이 생성이라는 믿음에 근거하는데
인간의 종교가 소멸의 근원인 불을 생산의 원인자로
도치시키고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다.
불이 다른 것의 소멸로부터 생성된다는 것을
나는 눈이 시리게 바라본다. 종교가 왜 그렇게 폭력에 의존하는지.
두려움은 왜 신앙이 되는지. 인간에게 이로운 것들은
왜 그렇게 소멸에 다가서는지.
한 때 나도 불 한 덩이를 가지고 있었다.
내 가슴에 담긴 불은 늘 곁에 있던 이에게 상처를 입혔다.
많은 이가 떠났고 그 일로 내 가슴은 오래 시렸다.
아직 나는 가슴의 불을 잘 다루지 못하지만
만나는 이마다 불 한 조각씩을 떼어 건넨다.
불은 소멸로 생성되지만, 나뉨은
불을 소멸시키지 않는다.
두 마리의 물고기와 다섯 개의 떡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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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유정임님의 댓글
유정임 작성일재성씨 글을 볼때마다 참 많은것들을 (과학적인 지식)알고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지식을 시에 접목 시키기 보다는 수필쪽에 접목시키면 보고 읽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어필 할 수 있지않을까 가끔 혼자 그런 생각해 봅니다.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어떤 fact, 지식이 시화하는 데는 일단 시의 형상화라는 틀 때문에 자유롭지 않은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난 시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저에게 부러움을 나타내곤 합니다. 많은 환자들로부터 시에 소재를 얻을 수 있지 않겠냐고 합니다. 그 때마다 저는 열등과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 것을 내 것으로 소화해 형상화 하는 과정을 번번이 수행 못하니..... 그러나 유 시인님에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는 않습니다. 가끔 하나의 사건으로 머물던 fact가 일상에서 언뜻 소화되어, 어느새 내 목소리가 되어, 시로 가다오는 기쁨도 만나니 말입니다. 문제는 지식이 얼마나 내 안에서 접목되고 육화되어 나의 피와 살이 되느냐에 있다 생각합니다. 저는 요새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차피 우리가 의식하는 관념은 언어란 비유에 집합이고, 그 낱낱의 비유인 언어는 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결국 추상적인 관념인 명(법)을 구체적 색 원소로 해체시키는 환원의 과정이 시일 거라고....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유시인님과 김회장님의 말씀 잘 세겨 읽었습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시와 수필 또는 감상문이든 딱히 어떤 구분을 하지 않고 쓰다보니 갑자기 시형식을 갖추어 쓰는 일이 아주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제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적을 날도 그리 많지 않다보니 형식에 맞게 시를 쓰는 일도 좀 부담스럽긴 하구요.... 늘 고맙습니다. 읽어 주시고, 좋은 의견을 달아 주셔서...

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불을 프랑시스 퐁쥬식으로 아니 가스통 바슐라르식으로 보신건가요<br />
......<br />
유리가 액체라는말이 생각이 나네요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모든 물질은 온도에 따라 상태가 변하고 이를 상전이라고 해요. <br />
예를 들어 물은 낮은 온도에서는 고체(얼음)이었다가, <br />
온도가 올라가며 액체, 기체(수증기)로 변하며, 더 높은 온도에선 아원자체(플라즈마)로 되지요. <br />
불은 그러한 물질의 상전이를 일으키는 온도의 원인이며 <br />
우주를 순환시키는 도구로서, 많은 사람들이 불을 생산과 결부시키곤 하지요.<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