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작품
잃어버린 안부
페이지 정보

본문
잃어버린 안부
너에게 편지를 쓴다.
도둑 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에서 별빛을 삼키는지
종이엔 어둠만 잔뜩 묻는다.
쓰다만 편지가 찢겨진 벽보처럼 울고 있다.
너는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기억조차 삼켜버리는데,
오늘 밤 가로등은 형편없이 우울하다. 그래서,
어둠 속에 빈집 같은 너에게
흔들리는 전구 한 알 달아놓아야겠다고
가끔은 이렇게 빈 이마를 쓸어보는데,
살아있음이 거미줄쳐진 빈 방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선뜻 문을 열지 못한다.
댓글목록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북서풍에 밀려 제주에 갔었지. 방풍림 하나 없더라. <br />
바위들 모두 꺽여 평평한 들판으로 <br />
큰 파도 휘닥착 휘닥착 밀려가더라. 저 제주를 몸으로 버텨내자면<br />
멈춰 서서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자면, 그럴 것, 여인네는 <br />
시인을 벗어나지 못하여 속수무책으로 무위를 버텨야겠지.<br />
슬픈 묵시처럼 안부를 날려야겠지<br />
저의 전언이 찢겨진 벽보처럼 흩날려도, 가슴 헐거워 <br />
말 한마디 온전히 담아둘 수 없으니 편지를 써야겠지<br />
저 또한 어둠 속 빈집 같은 이들에게.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그러면, 그렇게 전구 하나 공중에 매달리면 <br />
빈집속의 어둠 조금씩 물러나고, 어둠의 것들 <br />
조금씩 저를 드러내고, 오래 멈추어 있던 아픔이며<br />
겨울의 것들 온전히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br />
딴에는 한 도류도 거기 멈추어 있을 것, 멈추어 서서 <br />
부우부우 울어대는 전신주, 몰려오고 몰려가는 바람소리<br />
듣고 있었을 것, 누군가 문을 열어주기를......<br />
아 도류 또한 그렇게 오래 빈 곳을 채우는 어둠이었던 것<br />
여인내여 이내 불을 켜시라. 거기 어디에도 도류의 흔적 없고<br />
거미줄에 얽혔던 상념마저 형을 잃고 흩어지겠지만<br />
이내 문을 여시라 빈 방으로 드시라 어쨌건 살아야 하고<br />
살자니 게서 쩝쩝거릴 거라도 찾아 자양을 취하시라.<br />
그 곳에 여느 흔적 없고, 사라질 것 사라졌고, <br />
사라진 증거 또한 털끝 남아있지 않겠지만 <br />
증거의 부재가 부재를 증거하는 건 아니니......<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