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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풍경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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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벽시계의 주문을 깜박하는 뻐꾸기
나무등걸에 기대어,
오늘은 제대로 날아다녀야지
깃을 한번 털어보곤
햇볕 둥실한 거실을 내려다본다
카세트의 노래가 저 혼자 돌며, 보인다
십년 넘어 핥던 밥그릇을 톡 톡
건드리고 있는 개와
홈쇼핑 전단지를 보고 있는 그녀
가끔, 어슬렁 걸어나와
쩝쩝 물을 먹는 개와 냉장고를 여닫는 그녀
그들은 부딪치지 않는다
마치 눈에 익은 것들은 몸이 자유라는 듯
그림자로만 다닌다 소리는 놔두고
제각각
유령의 둥근 뒷꿈치처럼 미끄러져 다닌다
또닥또닥……
테이프가 질펀하게 늘어지고
납작 앉아 개껌을 물고 있는 그녀와
뒤치락거리며 페이지를 넘기던 개는,
코를 박고 웅크린 노래와
슬금슬금 기어와 엎드린 햇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자욱하다, 만져지지 않는다
시침과 분침이 엉겨들며
어머나,
물빛에 부리를 첨벙 빠트리고 만다
액자처럼 내걸린 호수 풍경이라니
******************************
조심스럽지만
의무를 또한 다하기 위해 과감히 졸작을 선보입니다.
리토피아에 천천히 스며들겠습니다 가랑비처럼,
댓글목록

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참 오랬동안 '낡은 풍경에 갇혔다'가 살며시 창문을 열었군요. 기다렸습니다. 엄청 반가워요.<br />
<br />
꼭 울어야할 때 가끔 울지 않는다는 뻐꾸기의 반란! 1연 도입이 상상의 맥을 건드립니다. 시제 '낡은 풍경에 갇히다'의 이미지를 반전시킬 것 같은 예감, 그러나 이미 낡음에서, 타성에서 벗어나고 있는 뻐꾹시계는 그 개체로서는 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도 시중 화자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중 하나일 뿐, 2연, 3연, 4연까지 서술된 지리한 일상은 그대로 '낡은' 풍경으로 잘 읽힘니다. 5연에서 일탈의 기미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황 서술이 이 작품의 詩題 이미지를 견고하게 했으며 6연 마지막 결구가 환몽으로 끌고간, 시인의 시적 구성의 탁월함을 봅니다. 부럽군요. 특히 3연의 시적 표현 빛납니다. 타성에 젖어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나의 일상을 반추해 봅니다. 좋은 작품 잘 감상했습니다.<br />
<br />
심시인님, 문학기행 함께 하지 못해 섭섭합니다<br />
좋은 작품 열심히 오려주세요. 가랑비가 아닌, 장대비 쏟아질 것 같은 예감이 ^^.<br />

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반갑습니다.<br />
익숙한 풍경입니다. 한가한 일상 속에 숨겨진 틈을 들여다보는 <br />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집니다.<br />
갇혀 낡고 부서지면서 사는 날들. <br />
허망함의 틀에 끼인 잔잔한 풍경 속으로 첨벙 빠지게 하네요. <br />
그 밑바닥에 얽혀 만져지지않는 것들..<br />
마지막 연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br />
좋은 작품 감춰놓지 마시고 자주 올려주셔서 감상의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br />
시 읽기가 수준급인 허시인님이 잘 안내해 주셔서 더욱 좋습니다.<br />
문학기행 함께하지 못해 아쉽네요. 기회는 또 오겠지요.

손한옥님의 댓글
손한옥 작성일
드디어 출현하셨습니다?!<br />
특유의 반짝임에 박수 보냅니다 <br />
사실적인 그대로의 날이미지가 잘 살고 있군요<br />
주변 사물들이 혼자 있지않고 질서를 잘 만들고 있는데<br />
아쉬움이 있다면 <br />
끌고 당김의 질서가 좀 더 팽팽했으면 좋겠습니다<br />
<br />
이를테면,<br />
4연을 지적해봅니다 <br />
1행뿐인 4연의 의성어가 생뚱맞습니다 <br />
3연과의 유기적관계를 고민해보시는게 어떨지요<br />
완전히 진화되었던 불이 다시 타는것 같습니다<br />
차라리 4,5연없이 6연으로 마무리하면 어떨지 제 소견입니다<br />
6연의 <어머나>의 놀라움이 앞 뒤가 도치된 자리에 테크니컬하게 삽입되어 그 놀라움의 역할을 함께하고 있군요<br />
잘 감상했습니다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
어제 포항에 오셨으면 그 일상에 갇히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일상이 그리워 지셨을 것 같은데요..... 저는 지겹던 일상에서 탈출, 이틀 동안 바다와 산만 보고 달리다 보니 그 것도 지쳐 일상이 그리워 지더 군요. 조금 새로와진 일상 속에서 이글을 올립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이 세상 제일 좋은 날은 그날이 그날이라고.....<br />
시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br />
이 자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 자주 뵈었으면 좋겠네요.<br />
이 공간이 어려워지는 것은 어쩌면은 여기 시각이 다양성과 포용력이 적어서 은연중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닐까, 이 것은 우리 모두가 노력해 만들어 갈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