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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다를 보다(편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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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태식
댓글 0건 조회 1,417회 작성일 05-05-1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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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다를 보다
- 김인자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2

  무심하게 지나쳤던 풍경이었습니다.
  이름을 불러준 순간부터 내게로 와서 의미가 되었던 많은 그대들처럼 김시인님이 그리움으로 바다를 불러주던 그날부터 이것은 의미있는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퇴근길에 버스정류장에서 바다를 봅니다. 버스정류장은 제가 근무하는 우체국 바로 옆에 있습니다. 동네로 들어서는 세 갈래 길 중에 가장 좁으나, 가장 가운데에 있는 이 길가에는 파출소와 보건소가 초입에 있고 그 옆에 정류소가 있습니다. 도로를 내려서면 바로 우체국입니다.

  퇴근길에 이 버스정류장에서 바다를 봅니다. 김시인님이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우체국이라는 의미를 제게 주기 전에 저는 버스정류소에서 이 바다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보긴 보았겠지요. 그냥 보이는 풍경을 보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의미없이 눈동자 풀린 눈으로 본 풍경을 보았다고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니 보았으나 보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정류소 맞은 편에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넓은 들 가운데로 경운기가 한 대쯤 지나갈 수 있는 길이 가로질러 있습니다. 아직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아서인지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그 길을 가로질러 오른쪽 산에서 내려온 줄에 줄줄이 엮인 전봇대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길을 걸어 왼쪽 마을로 들어섭니다. 하루는 그 전봇대를 세어보았더니 14갠가 그랬었는데 다음에 세어보니 15개가 되었다가 16개가 되었다가 자꾸 바뀌더군요. 사실 그전까지 들판 끝에 바다가 있다는 생각만 했었지, 들판을 가로질러 길이 있다는 사실과 그 길을 가로질러 전봇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지요.

  그 들판 끝나는 자리 오른쪽에는 나즈막한 산이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싸고 있고요, 왼쪽에는 중학교가 있는 마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다는 수채화처럼 잔잔합니다. 파도가 있으나 없으나 늘 수채홥니다. 멀리 보이기 때문이지요. 아득하기 때문이지요. 시간이 지나면 고통도 쓰라림도 다 사라지고 그저 아름다움만 남아있는 슬픔과 그리움처럼요.
  김시인님이 바다가 보이는 우체국을 불러주었을 때부터 우체국에서 보이는 바다는 나에게로 와서 의미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다뿐만 아니라 바다가 보이는 그 주변 풍경들 모두가 나에게 와서 꽃같은 생각을 품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 주변의 잡다한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은 산 아래로 가서 신록을 보았습니다. 신록의 어여쁨에 취해서 4월에 산 아래로 가게 된 것도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등산을 좋아해서 산을 자주 찾는 편이긴 해도 늘 꽃에만 마음을 주었지 푸른 잎에는 마음을 주지 않았었는데 몇 년 전엔가 울진문학 여회원 한 분이 신록의 아름다운 느낌을 이야기하면서 산 아래로 가보자 해서 간 뒤로 저도 완전히 신록 예찬자가 되었습니다. 관심을 갖고 다시 본 신록의 가슴 떨리는 벅찬 춤이라니. 바람을 얼싸안고 하늘을 나르는 춤이라니.

  관계맺음은 아름다움입니다. 살면서 많은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세상의 온갖 것들과 아름다운 의미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많은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집착이 아닌 관계, 그저 바라만 보아도 즐거운 그런, 집착이 아닌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2002. 4

울진에서 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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