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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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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닿은 햇빛이 안으로 스며듭니다.
빛은 나무의 자양분이 되어
줄기와 이파리를 살찌게 합니다.
시간이 흘러 나무가 죽고 땅이 뒤바뀌면
빛도 함께 땅속 깊은 곳에 갇힙니다.
그 위로 뜨거운 열과 큰 힘이 가해집니다.
나무는 점점 물컹해지며 저의 모습을 잃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나무는 기름이 됩니다.
등잔에 불을 붙이자
기름 속에 갇혀있던 빛이 환하게 쏟아져 나옵니다.
빛은 세상의 것들을 스치며 눈부시게 드러나게 하고
더러는 다시 우주 속으로 날아갑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나의 글이 궂이 시라는 형식 속에 갇혀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의 글은 시일 수도 있고 수필이거나 픽션일 수 있으며
그저 ‘글’이라고 해도 그리 나쁠 것은 없는 것이다.
나는 단지 이승의 한 때 내가 세상을 바라보았고 느꼈으며, 그로 인해
내 의식의 안쪽으로 스며들어와 안개처럼 번져 나갔던 생각들이
모호하나마 이렇게 맺혀있다는 것으로 너무 족하다. 이러한 생각이
혹여 누구에게 읽혀 그의 생각에 스며들거나, 때로
누군가의 영혼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호킹은 우주 존재에 대하여 인류발생원리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쓴다.
우주는 그것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자가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시 또한 하나의 우주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보자면, 우주와 인간의 관계는
시를 쓰는 자와 읽는 자의 관계로 바꾸어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즉, 우주가 그것을 바라보는 자에 의해 존재할 수 있듯이
시 또한 그것을 읽고 느끼는 자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내 말이 소통되어질 것을 믿는다.
비록 지금 내 생각은 닫혀 있으나 시간 또한 오래 지속될 것이므로
나는 소통의 가능성은 의심하지 않는다. 1300년 뒤
한 어부의 그물로 끌어 올려질 바다 깊은 곳의 호리병처럼
무엇이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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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생성, 소멸, 생성, 소멸....<br />
환으로 돌고 도는 우주 속에 찰라적으로 生하다가(존재라고 하는) 소멸할 '나'<br />
알 수 없는 어떤 원소로 산화, 환원할 '나'<br />
同時空間대를 존재하는 동안의 관계지어지는 '나' '너' '그것' 사이의 현상들을 <빛의 순환>에서<br />
'나무'라는 대상물 장치해서 묘사했군요. 잘 읽힘니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서 저의 의견을 감히 낸다면 '빛'과 '나무'와의 관계에서 어떤 구체적인 상황 설정을 해서 관계 유기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 시적 맛을 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br />
<br />
김재성님의 '왜 나는 쓰는가'을 읽고-<br />
어찌 생각해보면, 글이 형식 장르에 갇혀 자유로울 수 없기도 하지요.사물에 대한, 대상에 대한 인식이나 느낌을 문자라는 매체를 빌려 표출하는데 형식적 구별을 두는 것은 나와 타자 사이에 소통의 맛 전달이 다르기 때문이라 봅니다. 소설, 수필, 시 각각의 형식이 갖는 특성이 있어서 내게 맞는, 내가 할 수 있는 형식을 빌려 표출하고 소통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다보면 각 형식에서 요구되는 기준이 있어서 때로는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김재성님 말처럼 '시의 존재'에 대해서 공감합니다. 내가 쓴 시에 공감해주는 독자가 있어서 나와 독자와 소통되었다면 그 이상 바랄 것 없겠죠<br />
그렇지도 못하면서 저 역시 매번 '시'라는 형식을 빌려 슬픈 글쓰기에 빠지고 있습니다.<br />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1300년 후 내가 산화, 환원된 원소의 기호는...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예, 고맙습니다. 허선생님. <br />
늘 꼼꼼하게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느끼고<br />
고개를 끄덕거려주시는 모습이 참 따듯해 보입니다. <br />
순환의 과정에서 태를 수없이 바꾸나 <br />
근원적인 원소로 보자면 소멸과 생성의 과정에는 <br />
그리 깊어있을 필요가 없겠지요. 연연할 이유 또한.

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시라는 형식속으로 갇혀 있기를 원하는 않는다. <br />
그 열린 생각에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