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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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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으로 오세요
안개의 섬으로 오세요 산 첩첩 골 첩첩 구름의 섬으로 오세요 곧으면 곧은대로 굽으면 굽은대로 길 타고 오세요 낯선 바람 나와라 나와라 부르며 오세요 낯선 눈비 쏟아라 쏟아라 외치며 오세요 안개의 문 활짝 열고 오세요 구름의 벽 쾅쾅 두드리며 오세요 음흉한 눈빛들이 어느 날 허겁지겁 만들어 이 지구에 떨어뜨린 낯선 별의 탯줄을 이제 그만 끊으러 오세요 죄에 죄가 더해져 한껏 무거워진 바람과 눈비들이 오늘도 저 하늘바다 향해 몇 번이나 오르다가 풀석 주저앉네요 가라눕네요 산을 넘지 못하는 낯선 많은 바람들이 갇힌 안개의 섬으로 오세요 길을 타지 못하는 낯선 많은 눈비들이 쌓인 구름의 섬으로 오세요 그대 오셔서 이제서야 낯선 별에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탯줄 다시 세워지는 기둥 다시 지어지는 안개와 구름의 새 이름의 지상낙원 곧으면 곧은대로 굽으면 굽은대로 오르락내리락 이리저리 흔들리면 흔들리는대로 길 타고 오세요 마침내는 그 길 다 버리고 오세요
#2
打令調 5
김춘수
쓸개 빠진 녀석의 쓸개 빠진 사랑을 보았나,
녀석도 참
나중에는 제 불알을 따서
새끼들을 먹였지,
애비의 불알 먹는 새끼들을 보았나,
그래서 녀석의 새끼들은
간이 곪았지,
불알 먹었다. 불알 먹었다.
불쌍한 울아부지 불알 먹었다.
그래서 녀석의 새끼들은
뿔이 돋쳤지,
눈두덩에 뿔이 돋친 귀신이 됐지,
쓸개 빠진 녀석의 쓸개 빠진 사랑을 보았나,
녀석도 참
나중에는 오뉴월 구름으로 흐르다가
입춘 가까운 눈발로도 쓸리다가
히히 히히 히
쓸개 빠진 녀석은 쓸개 빠진 웃음을
웃을 뿐이지.
#3
보았나
열리지 않는
문을 보았나
무너지지 않는
벽을 보았나
산을 넘지 못하는 낯선
많은 바람들이 산 첩첩 갇혀 있는 구름의
섬을 보았나
길을 타지 못하는 낯선
많은 눈비들이 골 첩첩 쌓여 있는 안개의
성을 보았나
음흉한 눈빛들이
허겁지겁 만들어 오래 전에 떨어뜨린 탯줄없는
별을 보았나
그 별의 굳건한
문을 보았나
벽을 보았나
두드려라 둥둥둥 오늘도 버릇처럼 두드리는
소리를 보았나
마침내 그 별에도 이어지는 어머니의
탯줄을 보았나
(이번에 리토피아에 발표된 시'보았나'의 원 시'청송으로 오세요'와 리듬을 차용한 김춘수님의 시 '打令調 5'를 함께 올립니다. 이야기거리가 될 것 같아서 올리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댓글목록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
나에게 남 시인의 시는 김 춘수님의 시만큼 먼 나라에 있는 것 같다. 아주 먼 나라 얘기를 <br />
감정 빼고 읽는 건조한 느낌이다. 나는 이 때문에 번번이 토 달기를 포기해 왔다. <br />
일 전에 酒席에서 한 남 시인의 말을 떠 올려 본다. 나의 느낌은 이 때문이 아닐까? <br />
‘나를 너무 안 나타냈다. 올해는 확 나타내는 시를 써 보겠다.’ <br />
자신을 지나치게 안 나타내는 것은 차가운 껍질 같은 일종의 방어기제다.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어떤 시상이 떠오르면 최대한 많은 시적 상상들을 최초의 시상에 얹습니다. 그리고 그 시적 상상들을 어떤 의미로 연결하는 이야기 만들기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들어진 이야기에서 밖으로 드러난 의미를 지우는 작업을 합니다. 그 각각의 작업 중에 시어에 리듬을 태우는 작업도 같이 합니다. 시어에 리듬을 태우는 작업이 제대로 되는 경우 오르가즘에 오르는 흥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이런 절정의 순간을 거의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시에 너무 댓글이 안 올라와서 제가 댓글을 달아봤습니다. 이야기거리가 될 것 같아서 올렸는데 되려 더 이야기거리가 안되는 것 같네요.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처음 쓴 시 '청송으로 오세요'는 김인자 시인의 '청송으로 보내는 편지'에 답한 시입니다. 김인자 시인의 시에 청송감호소에 갇혀 있는 죄에 죄가 더해진 바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바람들을 중심으로 김인자 시인의 시에 2003년 5월에 답시로 썼던 시를 올 1월에 다시 고쳤습니다. 새로운 시로 다시 쓰는 과정이 어떤 뚜렷한 형식을 찾지 못하여 지지부진하던 차에 느닷없이 김춘수 시인님의 시 타령조가 생각이 나서 타령조 형식으로 바로 썼습니다. 애초에 의도한 것은 이중처벌, 보호감호에 대한 부당성이었는데 이걸 시적상상력으로 버무리면서 1차 의미를 퇴색시켰고, 이번에 새로 쓰면서 의미는 다 버리고, 시적 상상력만 남겼습니다. 시적 상상력만으로도 시가 재미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마도 이런 연유로 제가 최근에 오규원, 이승훈 시인을 좋아하는 시인의 자리에 올리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말에 대한 강박관념이 좀 심한 편인데 '말이 씨 된다'라는 말로 주위 사람들을 많이 불편하게 합니다. 편하게 다가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니까요. 이런 말에 대한 강박관념이 은연중 시 작업에도 나타나 자꾸만 의미를 감추고, 숨기고, 심지어는 버리게까지하지 싶습니다. 그러나 제 시의 기본 소재와 주제는 여전 정치성과 사회성입니다. 정치성과 사회성에서 출발하되 정치성과 사회성을 끝내는 숨기고, 감추고, 지우다 보니까 읽기가 어려워지지 않았나 생각은 하는데, 어려워져도 할 수 없다 현재는 어쩔 수 없다, 라는 생각으로 요즘은 계속 시작업을 하고 있습니다.<br />
김승기시인의 댓글에 이제서야 변명 하나 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