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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대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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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북쪽 뜰에 대추나무 한 그루 있었다
어떤 협박에도 꿈쩍 않는
기둥서방 아파트, 그 곁에서 살고 있었다
햇살이 주는 따뜻한 밥은 기둥서방 저 혼자 다 먹고
다 저녁때 식은밥 찔끔 주는
그것 받아먹고 살고 있었다
그래도 가는 세월에
잎 피고 꽃피고 무지랭이 자식 서넛 매달며
십 년 세월 잘 버틴다 싶었다
그가
지난여름 *도깨비집엘 다녀와서 변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생머리를 빠글빠글 파마를 했다
어찌 보면 온 몸에 열꽃이 핀 듯도 했고
또 어찌 보면 대폿집 작부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의 반란이 시작된 듯 했는데
그렇게 여름을 나더니 그가 죽었다
온 몸이 새까맣다
기둥서방
끄떡도 않고 서있다
*도깨비집병 : 작은 가지나 잎이 비정상적으로 밀생하는 식물의 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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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많이 슬프네요<br />
인정머리 눈꼽만치도 없는 기둥서방 앞에 배곯아 허기져 몹쓸 병 얻어 죽은<br />
대추나무 명복을 빌어 봅니다<br />
인간의 이기의 산물인 아파트를 의인화 해서 거대한 무생명이 작은 생명을 소멸시키는 과정을 <br />
무리 없이 시화시킨 시인의 사유와 이식이 빛납니다<br />
의인화된 감각적인 전개가 시적 흥미와 재미를 상승시켜 돋보입니다<br />
좋은 작품 잘 감상했습니다. 건필하세요.<br />
<br />
<br />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
아파트를 기둥서방으로 묘사하고, 도깨비 집엘 다녀와서 나무의 변신! 슬며시 웃음이 나오고 재미있네요.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대추나무에 주시고 계신 그 눈길 따듯하게 느껴집니다. 조용히 웃으시는 유 시인님 얼굴이 떠오릅니다. <br />

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시가 재미있고 너무 좋습니다. 슬프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네요. 바람난 대추나무.<br />
무덤덤하게 살던 어떤 시골 여자가 늦게 도깨비 같은 사랑의 열병에 빠져서 죽음까지 가는데...<br />
그 옆에서 죽던지 말던지 끄떡도 않는 서방.<br />
서늘합니다.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아파트단지 뜰에 대추나무가 서 있다. <br />
아파트는 저 혼자만 햇빛을 받아먹는 기둥서방이고 <br />
해질 무렵에만 햇빛을 조금 받을 뿐인데 10년 동안 안 죽었다.<br />
여름에 나무는 병에 걸려 이파리가 꼬불꼬불 말라들어갔다.<br />
그게 대폿집 작부 같다. 파마를 한 거 같다. <br />
반란이 시작된 듯 했다. 나무가 죽었다. 새카맣게 됐다.<br />
아파트는 안 무너지고 서 있다........ 그런 이야기인가요 ? <br />
<br />
모두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며 슬프고, 돋보이고, 서늘하다는데 <br />
제 유치한 상상력으로는 그 이상의 어떤 느낌을 얻을 수 없군요.<br />
아직 이해가 짧아서 그러니 시인께서 도움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br />

유정임님의 댓글
유정임 작성일
제가 이작품란에 작품을 올릴때는 모두들 잠시 쉬어가시라는 의미가 더 크답니다. <br />
제시는 늘 머리를 깊게 쓸일도 어렵게 생각할것도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성의껏 한 말씀씩 해주시는거 그저 고마울 뿐이죠.<br />
재성씨, 미안합니다 아무 도움도 드릴수가 없어서요. 그냥 느끼신대로 받아드리시면 됩니다.<br />
가장 솔직한 느낌이실수도 있으니까요.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예, 고맙습니다...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2월에 올리셨던 시 '망각'과 선명하게 대조가 됩니다. 이 역시 우화의 세계라 할 수 있는데, '망각'은 잘 알려진 이야기를 그대로 서술하면서 애써 의미를 줄려고 하여 감동이 반감되었는데, 이번에 올린 '죽은 대추나무'는 의도를 일부러 숨긴 듯 해서 되려 더 감동적으로 읽힙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효선님의 댓글
김효선 작성일잘 읽었습니다...어떤 말이라도 하면 그 느낌이 달아나버릴까 봐...가슴에만 그 느낌 품고 갑니다...리토피아 식구들께는 늘 미안하고 고맙고...멀리 있지만 그래서 더 간절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꽃샘추위가 시작되었나 봅니다...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