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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離所-6/백인덕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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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오래된 藥'을 읽고 그 중 좋게 느껴진 시를 하나 매달아, 시집 발간을 축하하고, 또 함께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소離所-6
-아침에
오래 기억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다.
언제나 안개 가득한 아침이 두려웠고,
반쯤만 기운 어깨가 아팠고,
기운 어깨를 흔들며 걸어가야 할
안개 아침의 하얀 길들이 무서웠다.
도무지 잃어버린 길 가운데서
두려웠다. 아무도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내 황량한 시간들, 시간의 억센 갈기들,
쇠사슬 채찍이 두려웠고,
맞고 맞아도 멍만 드는, 멍들어
죽지도 않는 시퍼런 욕망들이 무거웠다.
그것뿐이었다. 딱 그것이었다.
오래 기억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아직도 안개는 아침마다 자욱하고
조금 더 기운 어깨 흔들며 또 그 속을
가야 하지만,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침묵으로 멈춘 자리에
이제 막 빨갛게 눈시울이 익는다.
이소離所-6
-아침에
오래 기억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다.
언제나 안개 가득한 아침이 두려웠고,
반쯤만 기운 어깨가 아팠고,
기운 어깨를 흔들며 걸어가야 할
안개 아침의 하얀 길들이 무서웠다.
도무지 잃어버린 길 가운데서
두려웠다. 아무도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내 황량한 시간들, 시간의 억센 갈기들,
쇠사슬 채찍이 두려웠고,
맞고 맞아도 멍만 드는, 멍들어
죽지도 않는 시퍼런 욕망들이 무거웠다.
그것뿐이었다. 딱 그것이었다.
오래 기억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아직도 안개는 아침마다 자욱하고
조금 더 기운 어깨 흔들며 또 그 속을
가야 하지만,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침묵으로 멈춘 자리에
이제 막 빨갛게 눈시울이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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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기운 어깨'라는 말은 아리다. <br />
나는 한 여인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br />
다리를 절어 돌아설 때마다 한 쪽 어깨가 푹 꺼지던 사람<br />
그 기운 어깨에 지어졌을 삶의 무게를 떠올리며 <br />
내 젊은 날은 오래 가슴 저미어 있었다. 시는 이렇게<br />
다 치루어낸 아픔을, 다시 현재형으로 끌어 내는군.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
백 시인님의 쓸쓸한 뒷 모습을 보는 것 같지요?<br />
엄경희 평론가님에 작품 해설도 대단하더군요. 촌철살인 같은 문장, 단숨에 읽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