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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지하통로에서 사십대 남자가
가부좌상으로 벽면을 향해 앉아 있다
굳게 다물고 있는 입 언저리에서
부도 난 화두話頭들이 폐기되고 있다
깔고 있는 일간지 경제면에는
통제 선을 이탈한 화살들이
일제히 날아가고 있다
운수대통 돗자리 점집을 지나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행운의 복권집마저 빗나가 버렸다
목표물은 보이질 않고
그가 즐겨 다녔던 9번 출구*에서
벽을 뚫지 못한 화살들이 꺾여 있었지만
원인을 알고 싶지는 않았다
가끔씩 동전의 낙하 음이
귓불을 잡아 다니고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자국 소리가
죽비소리처럼 따갑다
반쯤 감았던 눈이 또렷해 진다
갈라진 벽 틈으로
푸른 이끼들이 피어나고 있다
지하도안은 잠시 정전 중이다.
*9번 출구: 대우빌딩쪽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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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정겸 시인의 시를 읽고 있는데 장성혜 시인이 먼저 올린 '옥상 위의 개'가 왜 떠오르는지요.<br />
어쩌다 한 번 마주칠 풍경이어야 할 것들이 일상의 풍경이 된지가 오래서인가,<br />
눈길 한 번 안주고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 틈에 섞여 나 역시 무심히 지나치는데,<br />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는 눈길이 있어 슬픈(?) 시를 만드시나요.<br />
일상의 풍경을 잡아 그 풍경을 다만 묘사한 시가 <br />
아픈 현실을 끝내는 무심하게 지나치지 못하게 하겠군요.<br />
'지하도 안은 잠시 정전 중' 잠시만, 그래요, 아주 잠시만, 정전이었으면 참 좋겠네요.<br />

정 겸님의 댓글
정 겸 작성일
남 시인 오래간만 입니다. 건강 하시죠.<br />
남 시인과는 이곳이 유일한 소통의 통로인것 같습니다.<br />
요즘 정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br />
바쁘다는 핑계, 또 하나의 핑계를 낳고 있는것 같습니다. <br />
언제 서울 올라 오시면 어렵지만 짬을 내어 수원 좀 들렀다 가셨으면 합니다.<br />
한 여름 건강 잘 보살피소서.

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헹님아는 여름 잘 전디고 지신 거져? 오랜만이네여! 반가워여.<br />
-시가 일취월장, 볼 때마다 좋아지니, 제 일처럼 좋군요. 일말의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일단 그 정황을 틀어쥐어 정황이 발언하게 하는 것은 참 좋아보입니다. '부도난 화두', 일간지 경제면의 '화살', '점집, 복권집', '동정의 낙하음' 등이 그렇네여. 스스로 발언하게 한다는 면에서 그 울림이 큽니다. 아쉬움은 지켜보는 나와 면벽하는 사십대 남자, 즉 화자가 통일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일테면 '죽비소리처럼 따갑다'는 지켜보는 나의 느낌이 아니기 쉽기에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이 시의 미덕이 손상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동상이 본 쪼깐한 아쉬움이기에 적어 봅니다. (넘 아는 척했나?) 줄입니다. 가뇽

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정시인님 안녕하세요?<br />
언젠가 지나쳤던 서울역 앞 길고 지저분한 지하도가 생각나네요.<br />
세상 어두운 구석 한 군데를 잘 조명 하셨어요.<br />
외면하고 싶은 노숙자를 참선 중으로 바라보니까<br />
갑자기 신선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br />
세상에 실패하고 큰 깨달음을 얻는 중인지도 모르죠.<br />
아마 다시 그곳을 지난다면 그렇게 서둘러 지나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br />
시 너무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유정임님의 댓글
유정임 작성일
정시인님, 뵌지 참 오래된것 같네요.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br />
시는 일상에서 끄집어 내야 한다는데, 그런 점에서 성공이신것 같습니다. 무심히 지나치고 마는 상황속에서 스스로의 마음에 참선을 다지는 시인님의 여유가 부럽군요.<br />
시가 정말 날로 좋아지시네요. 무더운 여름 좋은 시로 이겨내시길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지상의 한 켠과 다른 한 켠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기능하던 지하도가 <br />
시 속에서는 지상의 삶에서 소외된 이들의 공간이 되고 있다는 것, <br />
그런 의미에서 남태식 시인이 왜 장성혜 시인의 '옥상위의 개'와 관계지어 읽으려 하는지 <br />
이해 됩니다. 지상으로부터 유리된 옥상위의 삶이나 지하도의 삶 모두 <br />
기계문명의 소용돌이 틈에서 거세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겠지요.<br />
그러나 부러진 화살과 낙첨된 복권, 돗자리 점쟁이의 우울한 예언에도 불구하고 <br />
나는 어둠(정전) 속에서 새 바램을 찾으려는 시인의 바쁜 더듬이를 느끼는 것입니다. <br />
지하도에서의 가부좌와 면벽이 이루는 꿈이 끝내 미완일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br />
시인의 의식이 일깨우는 저 푸른 이끼와 죽비소리 카랑카랑 울릴 때 <br />
벽을 관통하고 도솔의 하늘 눈부시게 가르는 화살 하나 보여오겠지요.

정 겸님의 댓글
정 겸 작성일
가뇽 아우님, 장성혜님, 유정임님, 김재성님 안녕하신지요?<br />
요즘 날씨가 너무 덥습니다.<br />
아울러 제 졸시에 대한 평 너무 고맙습니다<br />
특히, 김재성님은 아직 뵌 기억은 없지만 이렇게 세심한 평으로 댓글을 달아 주시니<br />
감사한 마음입니다. 모두 즐거운 주말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