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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감상>시인의 몸을 벗어나는 말들의 풍경...... 장성혜의 알레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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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그 자리에
한 여자가 서 있네
햇살이 메마른 가지를 긁으니
벌겋게 보고싶다는 말이 흩어지네
바람이 수없이 회초리 되어 지나 간
그늘이 부풀어오르네
꽃이 된 자리마다 병이 도져
봄이 오면 여기 저기
미치도록 가렵다는 전화가 오네
불꽃같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싶었던 곳이
여기다 여기다 하면서
가시를 품은 향기가
눈물처럼 쏟아지는 골목
이제는 지나갔겠지 눈을 뜨면
징그러운 그리움 아직도 밟고 섰네
달려왔다 지워지는 물결이 보이네
몇 번을 더 앓아야 하는 지
왜 이렇게 가려운지
허망함만 배가 불러
바다로 뛰어들 뿐
푸른 살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네
<2002. 리토피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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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무일 것이어서 제가 서 있는 곳으로
바람이 불어오거나 불어가거나 계절이 오거나 지나감을
묵묵히 수동태로 바라보는 여인의 몸으로 느끼자면
모든 그리움이며 바램, 아픔은 저렇게 위태로운 모양이겠습니다.
부드러운 햇살의 닿음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게조차
짓무른 살처럼 무너져 내릴 듯 푸석 스러질 듯 서 있는 나무에
버짐처럼 번지는 가려움이라니...
가볍게 생각자면 곳곳마다 부풀어오르는 저 붉은 반점은
나와 세상 사이의 간극 또는 나의 욕망과 금지된 욕망 사이
독처럼 맺혀있을 그리움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살갗 안쪽, 저 깊은 곳에 맺혀있을 그리움이 가려움의 원인이라면
채워질 수 없었던 바램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참 난감한 일이겠습니다.
몸의 부분을 잃은 사람은 한 동안 잃은 부분에서 전달되어오는 통증이나
가려움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하지요. 시인의 가려움도 그런 것일까요.
그렇게 손이 닿지 않는 아니 닿을 수 없는,
없는 몸의 부분으로 느껴오는 가슴저림 같은 것일까요.
하지만 나는 저 가려움을 시쓰기의 아림으로 읽고 싶습니다.
가슴속 뜨거운 불을 가지고 있어 시인으로 천형지어진 자의
토해내지 못한, 담석처럼 맺혀있을 생각들...
불꽃같은 사랑과 회임에 대한 바램이 시인의 가슴속에서 오래 떠돌며
깨진 유리조각처럼 내벽을 긁어오던 말들이 아니겠냐는,
채 시가 되지 못한 시어들에 대한 가슴앓이일 것이라는.
이러한 생각은 가볍고 좀 작위적일까요.
그렇긴 해도 나는 자꾸 시인의 가려움증에서
너무 오래 가슴속에 가두어 둔 말들이 피부를 비집고 밀려나오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보세요,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들의 풍경...
저 말들이 번져 스스로 한 모양을 이루고, 드디어 말씀이 되어 가는 모습을.
그렇게 진저리치며 시를 토해낸 시인의 가슴은 비고,
비어져 공동처럼 헛배 부르면, 정말 시인의 가슴에는,
'푸른 살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게 될까요......
시인의 속가슴을 엿보려 들자니 참 아립니다.
추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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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김 시인, 분석이 참 재미있군여. 어찌 휴가는 잘 마치셨는지여. 토요일에는 일찍 가서 좀 아쉬웠습니다. <br />
-저는 장 시인의 이 시를 보니, 참 슬프고 쓸쓸하군여. 그리고 아파여~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시작이 좋아서인지, 뒷날도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br />
아이들이 계곡의 물놀이가 제일 좋았다는군요. 형(?)이랑 너무 재미있게 놀았다구...<br />
토요일, 인사 제대로 못드리고 와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