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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할머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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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할매는 몇 십 년째, 아침에 첫 버스로
죽변서 영주까지 태백산을 넘어와
자칭 품질 제일의 싱싱한 죽변고기를 파는 할매다.
오징어, 문어, 영덕게, 가자미.....
그런데, 그 할매는 둑이 없다.
고이면 고이는 대로 사람들에게 달려가 철석 거린다.
지나다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은
덮어 쓴 육등 분자를 몸에서 떼어내다가
제멋대로 철썩이는 그 녀를 보고 그만 웃고 만다.
자신의 가슴속 철썩이지 못한 것 까지 보태서
같이 철썩거린다.
어느새 자신의 둑도 덩달아 낮아져서.
어제는 바쁜지 인사를 해도 아는 체도 안하더니
오늘은 자기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오늘 날굳이 안해!
파리채로 파리를 쫒으며 어김 없이 달려온
그 녀의 투명한 내장이 나를 덮친다.
죽변 짠내가 찝찔하다.
< 무적(霧笛) >
어차피 이승은 무지개를 타고 건널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새는 통 그 무지개가 뜨지를 않는다. 아니 어쩌다 서녘에 무지개 하나 보이면, 이상한 나라 사람들이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흐리고 희미해져 꼬불거리는 사람들. 제풀에 무거워져 창 밖엔 비만 내리고, 혼자서 메아리 없이 마냥 젖다가 한바탕 광란의 굿판에 끼어든다. 얼뜨기 무녀들의 날카로운 칼끝에 취해간다.
온통 헐벗고 초점없는 시야! 자신의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만 들으며 터덜터덜 돌아와 바보상자 앞에서 희죽 대다가, 기어이 한 줌 어둠이 되어 악몽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오늘은 긴 대기의 시간!
자꾸만 가늘어진다. 아니 이미 세상에 모든 길은 사라졌다는 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윤곽마저 잃어버릴 것 같아, 아주 필사적으로, 표류하는 자신에게 끝없이 무적을 울린다. 황폐한 기억 속에 남루한 길들을 겨우 겨우 꺼내어, 자신의 지친 발 앞에 어렵게 놓는다.
아! 귀가 아프다. 저 무적(霧笛)소리!, 종내 자신들의 고막을 찢고 말, 저 무적 소리. 나는 나에게 뿌-, 너는 너에게 뿌- 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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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폭염 속에 앉아 무적을 읽습니다<br />
누군가 인생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이라 했던가요<br />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무적소리도 내지 않고 걸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br />
내가 나에게 부는 안개주의보<br />
흙냄새 나는 소나기처럼 후련하고 좋습니다

정 겸님의 댓글
정 겸 작성일
霧笛<br />
첫 느낌이 참 좋아요<br />
"어차피 이승은 무지개를 타고 건널 수밖에 없다."<br />
참 신선한 느낌도 들고요<br />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길을<br />
잘 보이는 길로 만들기위해<br />
이렇게 땀을 흘리고 있는것은 아닌지요<br />
......<br />
<br />
욕쟁이 할매<br />
우리 회사 근처에<br />
과거 소골집이라는 욕쟁이 할매가 있었는데<br />
그 집 음식은 욕을 먹어 가면서도<br />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유를 모르갰어요<br />
욕을 밥먹듯이 해도 정겨운 사람들.....<br />
<br />
김승기 시인 잘 있는거죠 ^^<br />
<br />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
장성혜, 정겸 시인님 더위에 무고 하시죠? 정겸 시인님은 참으로 오랜만이신 것 같습니다. <br />
제 홈페이지에 있는 근작 졸시 2편을 옮겨보았습니다. 혼자 글을 써 가며 메아리가 그리웠는데, 두 분 글을 읽으며 제 발자욱 소리를 가늠해 봅니다. 모쪼록 건강들하세요.

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김 시인, 잘 지내져? 서울로 공부하러 댕기는 건 어찌 됐는지? 덥겠다 싶기도 하구---<br />
-제겐 죽변의 욕쟁이할매가 김 시인에게 좀 맞지 않나 싶습니다. 무적은 김 시인이 고민 많이 했다고 느껴지긴 해도 제겐 죽변할매가 끌립니다. 철학적인(?) 고민이 시가 되는데는 약간의 어려움이 따르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해가고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시가 깊어져서 무게가 느껴져서 좋습니다. <br />
-번개가 예고한다고 해서 치는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만 번개 날린다면 달려가겠습니다. 그 땐, 주방에 얘기도 좀 잘 해놓아야지 싶구여~ 가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