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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떠남을 위한 시 몇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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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성
댓글 8건 조회 2,357회 작성일 04-09-30 09:08

본문

...................................................................... 나는 닭을 죽였다.


나는 닭을 죽였다.
날개를 가지고도 날지 않다니
새가 한뼘의 땅만 쳐다보고
땅거지처럼 돌아다니다니
나는 몹시 화가 나서
날선 칼로 닭의 목을 내리쳤다.
닭은 날개를 파닥이다가
붉은 것을 왁왁 쏟아내며
바닥에 거꾸러졌다.

닭은 죽고,
이제 나는 닭을 죽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닥에는
흰 날개를 가진 새 한 마리
파르르 떨며 누워 있고, 죽은 닭은
죽은 몸을 투욱투욱 털며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 몸에 대한 한 생각


뻣뻣하던 몸
흐물흐물해지다가
갤(gel)처럼 되었다가
액체가 되었다가
걸죽한 것 다 두고 빠져나가
한 방울의 물로 맺히면
다시 이승의 처마 밑
떨어지며
툭,
떨어지는 소리를
낼 수 있을까.




.......................................................................... 사막

    
    비어 있다는 말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다.
    아무것도 없다. 없는 곳이 있다니.
    나는 늘 없다는 것이 궁금했다.
    나무가 없다. 바람이 없다. 사람이 없다.
    소리가 없다. 내가 없다. 없어서
    푸석푸석 발이 빠져드는 허구렁
    
    비어져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하는 몸으로    
    이승을 건넌다. 물주머니 하나
    달랑 등어리에 지고  
    사각 사각 사각
    모래를 밟는 낙타처럼.
    
    푸석, 등뒤로 모래언덕  
    스러지는 소리 들린다.




.......................................................................... 이제 눈이 밝다


거울 앞에 서서
음흉하게 웃고 있는 사내를 봅니다.
음흉한 웃음을 웃게 하는
생각들을 봅니다.
내 눈이 거울은막을 지나
저 사내의 거죽을 지나, 회백질부를 지나
툴툴 말린 연두부 안쪽에 닿습니다.
그리고 아메바처럼 꿈틀거리며
살갗으로 음흉한 웃음을 짓게 하는
생각을 보는 것입니다.
아 저건 누구인가요, 아침마다
저 음흉함 스킨 로션으로 척척 지우고
짐짓 아무렇지 않게 문을 나서는
저 자는.




추천13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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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4편의 시를 읽는데 갑작스레 '새벽종이 울렸네' 하는 새마을노래와 '학교종이 땡땡땡'하는 동요가 떠오르다니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요?<br />
재성씨, 추석은 즐겁게 보냈나요? <br />
떠남 앞으로 뻗은 새길이 첫길처럼 보이는 시,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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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김재성시인님의 4편의 작품을 읽고 댓글을 달고 싶어 커서를 쭈-욱 내리니 부지런하신 남시인님이<br />
벌써 글을 남기셨군요. '떠남 앞으로 뻗은 새길이 첫길처럼 보인다'는 것에 동감을 합니다.<br />
<br />
'내 안'에 자리하는 몇 개의 '自我' 중 '닭' 같은 자아도 존재하겠지요. 단호하게 잘라낼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내 안의 자아 겠지요. 몸의 마지막 흔적 한 방울 물이 '이승'에서 툭 소리로 존재하기를,<br />
또 모두 비워내, 없음에서 가벼움으로 발자국 하나 새겨지지 않는 사막에서 뒤 모래언덕 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곳은 아집 너머의 이승 정토일까요? 시인의 눈은 또 거울 이면까지 투시하여 깊숙히 묻힌 자아까지 끄집어 내고 있습니다.실험실에서 메스 하나 들고 냉철하게 해부를 하는 의학도처럼.<br />
<br />
가을은 '떠남'을 준비하는 시점이지요. <br />
잘라낼 수 있는 단호함과, 비워낼 수 있는 무욕과, 나를 끌고 왔던 자아의 잔상들을 반추하며<br />
걸러내는 이 계절에 시인의 진솔하고 냉정한 '자기 돌아봄' 숙연합니다.<br />
떠남 앞으로 뻗은 새길이 보입니다.<br />
<br />
양해를 구하며 김재성님의 서재에서 만난 시 한 편 오릴께요.<br />
<br />
        내 삶의 한 때        - 김 재 성 -<br />
<br />
    나는 한 때 나무였고<br />
    구름이였고 물고기였다<br />
    들짐승이었거나<br />
    아무것도 아니었다<br />
    운이 좋다면 나는 다시 나무가 되거나<br />
    구름이나 물고기나 들짐승이 될 것이다.<br />
    그리고 한 때, 아무것도 아닌 시간 위에<br />
    놓여져 있을 것이다. 내 곁으로<br />
    스쳐가는 바람이나 시간이<br />
    어떻게 나를 변형시키는지 찬찬히 지켜보며<br />
    내 삶의 한 순간, 이렇게 지워진 모습을<br />
    경외스럽게 바라볼것이다.<br />
    두려워라, 내가 방관한<br />
    삶의 순간들이여.<br />
<br />
<br />
<br />
<br />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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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임님의 댓글

유정임 작성일

  김재성님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만남이 길지않아 잘 모르겠지만 떠올리면 늘 자유를 느낌니다. 글에서나 모습에서나, 자유란 늘 자신의 확고한 생각이 있어야만 누릴수 있는것 아닌가요.<br />
이가을엔 또 얼마나 치열한 몸짓으로 글을 써 내실지 기대되는군요. 건필하세요.<br />
남시인님, 입벌리고 크게 웃으시던 모습 떠오르른군요. 잘 계시죠?<br />
허시인님, 리플 다시는 모습 상상하면서 내면에 무슨 생각 가지고 늘 임하시는지 알것 같습니다.<br />
건강하시고 좋은시로 꽉찬 가을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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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시인님, 유시인님, 남시인님... 치기어린 생각을 그렇게 살펴 주시다니요. 이제 가을이군요. 산붉어 가슴 미어터질 계절... 몸서리치며 살아내자니 제법 시인 흉내를 내는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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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저희 단양 집에서는 이제 닭을 키우지 않습니다. 대개 봄에 사두고 여름에 좀 잡고 가을에 잡아 먹어 한 해를 넘기지 않는데, 한 20여마리 사면 누가 잡아 먹으라고 해도 잡아먹지도 않고 잡지도 않습니다. 꼭 해를 넘겨 늙은 닭을 만들었습니다. 사료만 먹는. 그래서 잡는 몫이 저의 몫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날개를 밟고 목을 반은 썰어서 눈밭에 던지곤 했습니다. 피가 빠져야 된다고 하기도 해서, 어쨌거나 잡는 일도 그렇고 이게 알 빼먹는 거보다 사료값이 더 들어가고 또 집을 비우기도 어려운 식구가 돼나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한 번은 닭을 맡기고 가신(이박삼일) 어머님이 모이는 주고 물을 안 준 저를 보시고 질겁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br />
-재성 씨의 시를 보니 그 생각이 너무 강렬해서 다른 생각은 크게 안나는군여. 다만 '나는 닭을 죽였다'가 좀 변별되고 다른 시들은 강렬하게 뇌리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두고는 싶습니다. 건필을 빌면 어줍잖은 아는척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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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시는 출구가 없이 설계된 미궁과 같은 것이어서<br />
그것을 알려고 하는 행위는 무위에 그칠 수밖에 없다.<br />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br />
그 미로의 도정에서 만나는 무수한 부분들에 기대어 <br />
길의 끝없음으로 인한 순례의 덧없음과 <br />
닫힘의 안락함을 느끼는 일이다.<br />
그 도정의 한 켠, 길을 통하여 아직 이르지 못한 다른 길을 상상하고<br />
벽을 통하여 아직 보지 못한 다른 벽을 상상하는 즐거움<br />
시를 읽는 즐거움은 그렇게 작고 비밀스럽다.<br />
그러나 우리가 시의 어떤 모습을 보든<br />
그 부분은 홀로그램 필름처럼 전체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br />
비록 넘치지 않으나 모자름 또한 없으며<br />
성적 유희와 같은 쾌락을 주지 않으나  <br />
내 부분이 어린 짐승의 살결에 닿는 듯한 기쁨을 준다.<br />
시읽기의 즐거움은 그렇게 열려 내 날들을 채운다.<br />
시는 그 중심은 어디에도 있고<br />
경계는 어디에도 없는 <br />
신의 영역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br />
(...... 윤시인님, 고맙습니다. 늘 제 어릿짓에 힘을 주시는군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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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다시 감상평 올립니다.<br />
시는 출구가 없이 설계된 미궁과 같은 것이어서 <br />
그것을 알려고 하는 행위는 무위에 그칠 수밖에 업다는 <br />
재성씨의 논리에 공감합니다.<br />
김춘수 시인께서 병석에 혼수상태로 누우시기 전에 요즘 시는 재미가 없다 <br />
한 번 읽으면 다 알게 된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는데<br />
저는 이 말씀을 시에 깊이가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br />
액면 그대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너무 밖으로 드러나서<br />
곱씹어 읽는재미가 없다는,<br />
곱씹어 읽을 마음이 일지 않는다는<br />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br />
다행스럽게도 재성씨의 시는 곱씹어 읽을 거리는 되는데<br />
아쉬운 것은 4편의 시 모두 관념이 너무 앞선다는 느낌 때문에<br />
곱씹어 읽어도 큰 재미는 느끼지 못했습니다.<br />
독자 감상평이나 댓글에서 보여지는 논리는 너무 좋은데<br />
되려 이 논리의 과잉이 관념의 과잉으로 <br />
시에 그대로 연결된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br />
4편의 시 중에 마지막 시 '이제 눈이 밝다'가<br />
시의 완성도로서는 제일 떨어지는 것으로 제게는 읽혔는데,<br />
그런데 삶의 모습이 가장 잘 투영된 것으로 보여져 <br />
되려 공감도는 컸습니다.<br />
관념의 과잉을 절제하고<br />
너무 쉽게 노출이 드러나보이는 관념을 숨기는 방법을<br />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br />
다만 이건 이번 시 4편에 한정된 감상평일 뿐<br />
먼저 발표한 다른 시에 그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br />
먼저 발표한 시에서 방법을 다시 찾아보는 것도 한<br />
방법일 수도 있을 겁니다.<br />
건필을 빌며, 노래시발표회 때 만나서 더 많은 이야기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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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시인의 바라봄이 없다면 세상이 관념일 뿐이라는 것, <br />
그리고 시화(詩化)는 관념이 실재의 사물로 대치되어 가는 과정일 것.<br />
빛이 있으라 하고 말하는 대신 대상을 바라봄으로서 존재케 하는 시인의 창조는, <br />
그러므로 저급한 신인 조물주의 창조보다 우월한 작업일 것.<br />
나는 세상에 나쁜 것이 몇 가지 있다고 생각하는데, <br />
그것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세상을 더럽히고 <br />
인간의 영혼을 음지에 머물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 세계에 대해 <br />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비관적인 생각의 원인을 <br />
시인들이 정화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나의 시읽기는 <br />
그 정화를 지켜보는 즐거움일 것. <br />
세계에 대한 비관적 인식이 나의 생득적인 것이라 하더라도<br />
그 위로 길어 올려지는 순수한 물 한 바가지는 아주 차고 달아서<br />
시 읽기의 즐거움은 내게 늘 현재합니다. 내가 바라본 사물들이 <br />
말 다루기의 어눌함으로 인해 선명히 드러나지 못하는 아픔은 논외로 하고.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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