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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감상>겨울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弔鐘)......김효선의 '언제나 겨울,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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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성
댓글 2건 조회 2,208회 작성일 04-06-08 14:3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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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었고 문득 방 안으로 새가 날아 들었고, 창 밖엔 눈이 쌓이지 않는다고 휘파람만 불어대는 바람이 있었고, 거품만 쏟아내는 눈사람이 있었고, 퇴근길마다 좇아오는 목소리가 있었고, 싸락눈만 내리는 겨울이었고 겨울이었고, 지상에 발 붙이지 못한 아쉬움만 떠도는 하늘이 있었고, 구두 안에선 벨소리가 징징 바람을 꼬드겼고, 보도블럭은 부재중 메세지처럼 간간이 비어있었고, 가끔씩 엉덩방아를 찧었고, 돌아보면 거품으로 만든 눈사람이 있었고, 간간이 새가 눈사람 안에서 흔적도 없이 죽어갔고,  벨소리는 더욱 거칠게 울어댔고, 길들여진 슬픔이 녹아 흐르는 길, 언제나 그 길을 지나는 벨소리, 겨울을 만드는,

겨울은 늘 내 안의 초인종을 눌러댄다.

..................................................... 김효선의 <언제나 겨울, 벨소리> 全文



겨울이 사라진 지금, 시인이 보여주는 가짜 겨울
시뮬레이션 된 겨울의 이미지는 암울하다.
시인은 여기저기 더듬이를 훑고 다니며 겨울의 흔적을 들춘다.
하지만 겨울은 없다. 자본주의 물신에 의해,
지구온난화에 의해, 산성비에 의해, 열병합 발전소에 의해
사시사철 푸른 채소와 과일, 무한정 공급되는 도시가스에 의해
겨울은 무차별 학살되었다. 그리고 죽은 계절은
순환의 틀을 벗어나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누구도 겨울을 두려움으로서, 혹독한 추위와
허기의 계절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겨울을 즐긴다. 잘 조절된 방에서
팬티만 입은 채 과일을 먹으며, 단지 패션을 위해  
모피코트를 입는다.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온수
무한정 공급되는 난방, 우리의 창에는
이파리를 떨굴 줄 모르는 변종 아이비와
모가지가 잘려서도 잘 자라는 행운목이 사시사철 푸르며
난초는 철없이 꽃을 피워댄다.

그렇게 겨울이 사라진 곳에서 시인이 듣는 벨소리
저 경고 메시지는 무엇일까. 저 사은유의 늪에서 질척이며
꺼내 올리는 반복된 상징들은 무엇일까... 한 때 겨울이었던 거리에서
시인이 만나는 겨울은 온통 가짜일 뿐이다.  
가짜 눈, 가짜 바람, 가짜 눈사람 ... 그렇게
가짜 겨울로 채워진 거리에서 시인은 가짜로 엉덩방아를 찧고
새들은 가짜로 죽어간다. 그리고 이제 그 속에서
하나의 시뮬레이터가 되어버린 시인은
가짜 슬픔을 슬퍼한다. 짐짓 '겨울은 늘
내 안의 초인종을 눌러댄다'고 태연스럽게 말하며...  

그렇군. 겨울을 만드는 저 벨소리는
겨울의 죽음을 알리는 벨소리겠군.    
겨울이 죽었으니, 겨울에 의해 발아될 씨알이 죽고
봄·여름·가을 순환되어지던 모든 계절이 죽을 것이며
해서 겨울이 누르는 저 초인종 소리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일 것이로군.
죽은 겨울을 희롱하는 가짜 겨울의 세계에서
시인 스스로 가짜가 되지 않고는, 저 가짜 진술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는  
겨울의 죽음을 온전히 알릴 수 없었던 것일까.


추천1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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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님의 댓글

김효선 작성일

  그러니까...겨울이었나 봅니다...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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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그렇군요. 소생을 위한 계절로서의 겨울이 소멸됨으로서<br />
이제 늘 '겨울'일 수 밖에 없는......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불온하네요. <br />
겨울이 죽고, 죽은 겨울의 상가에 모인 우리의 꿈꾸기, 순환과 삶의 길항은 <br />
그 불온함으로 더 오래 아리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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