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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감상> 정치하게 드러나는 삶의 기쁨......백인덕의 '기쁜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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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성
댓글 6건 조회 2,094회 작성일 04-06-25 16:56

본문

일찍이, "여기 묻힌 이 사람
그냥 태어나 살다 죽다"

고 쓴 '사람'도 죽었다.

고 쓴 '사람'도 죽었다.

고 쓴 '사람'도 죽었다.

고 쓴 '사람'도 죽었다.

··· ··· ··· ···

이 시를 쓰는 '사람'도
필경에는 죽을 것이다.

이 시를 읽는 '사람'도
필경에는 죽을 것이다.

모두, 기뻐하라!
이 놀라운 평등과 화해.

................................................... 백인덕의 <기쁜 묘비명> 全文


우리는 죽음을 감추고 살아갑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숙명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누가 모를까요.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 깊숙이 묻혀 현재를 주무하기에 바쁘고
유희와 일과 사랑과 서로와의 관계에 몰입하며
늘 죽음의 존재를 타자(他者)화 시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만나는 죽음은 '타자의 죽음'일 뿐이며
'나의 죽음'도 내가 죽은 뒤에나 의미가 있으니
결국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거지요... 하지만 죽음에 대한
이러한 타자화 논리는 죽음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다.

memento mori......
라틴어로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BC430년경에 쓰여진 헤르도토스의 '역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치열하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던 다페이오스가 눈물을 흘립니다.
정색을 하고 부장이 묻지요. 장군, 지금의 전황은 아주 유리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눈물을 흘리시는 겁니까.  
다페이오스가 말합니다. 저 들판의 수많은 군사들이며
나와 그대가 한 100년쯤 지나면 모두 죽고 없어진다는 것.
그 엄연함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그렇게 말한 다페이오스가 죽고,
그의 말을 필사한 이가 죽고, 한 2400년쯤 지나
저 말은 다시 이렇게 우리의 입에 아프게 회자되는군요.

백인덕 시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시적 드러남으로만 보자면 시인의 진술과 다페이오스의 진술은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둘 다 생명의 필멸성을
무섭도록 차갑게 각인시키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시에서  
나는 죽음의 메시지가 아니라 생명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상처나 고통, 죽음... 시인이 무엇을 말하든
그가 궁극적으로 노래하는 것은 삶일 것이며,
상처와 고통과 죽음이 환기시키는 삶의 진정성이겠지요.
그렇다면 이 시에서 드러내어진 죽음의 모습도, 결국은
죽음에 전제된 태어남을 보이기 위함일 것이며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소멸과 생성의 우로보로스,
하나의 고리를 형성하는 순환의 체계가 아니겠어요.
보세요, 삶에 대한 죽음의 기여를, '이 놀라운 평등과 화해'를
비로소 저 생명의 고리 위로
삶의 기쁨이 정치하게 드러나지 않나요.
글쎄 아무래도 나는 저 기쁨의 성격을 잘 말할 수 없어
김명인의 산문 '노을바다의 장엄'중의 한마디로 대신하고 싶군요.
"모든 생명있는 것들이 누리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아름다움을 인식한다.
아름다움이란 시간과의 싸움 속에서 획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죽음과 재생의 신화가 아니겠는가.
시가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은 바로 죽음과 재생의 신화를 노래하는
삶의 한 양식이기 때문일 것....."

추천1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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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김재성 시인이 잘 찾아 읽은 것 같네여. 일전에 맥주 한 잔 하면서 백인덕, 김정수 시인의 출판 기념회를 간단히 했는데. 그 때 김상미 시인이 가장 백인덕 다운 시라고 읽었던 시입니다. 저도 동의한 바가 있구요.<br />
-평을 열심히 쓰니까,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평을 쓸 때, 시가 있어 시평이 있으니까, 시의 전문을 위로 올리고, 시 외적인 것을 많이 말하기 보다 시 자체에 대해 좀 집중하는 분석이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읽는 맛도 더하고, 좀더 집중해서 읽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너무 폭 넓게 풀어써서 교양강좌 같거든요. 좀 참고 있으셨으면 합니다. 더 열심히 쓰시고여 ~ 가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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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늘 고맙습니다. <br />
윤선생님이 쓰시는 글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br />
직접 이렇게 가르켜 주실 때마다 얼마나 고마운지요. <br />
그런데 사실 저는 비평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답니다. <br />
국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따로 비평에 대하여 배운 바도 없거든요. <br />
그래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글에 대한 감상문을 적을 따름이에요. <br />
좋은 시를 찾아서 읽고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의 성격이 무엇인지 <br />
곰곰히 생각해 본다는 것... 딴에는 그것도 의미있는 <br />
문학의 한 주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거지요.<br />
(여기서 제가 말하는 감상이란, 분석적이거나 비판적 태도를 배제한 시읽기를 의미하지요)<br />
그리고... 시 외적인 것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는 것은, 내적인 것에 대하여 <br />
아는 바가 적어서일 거예요. 어줍잖게 분석적 태도로 시를 말하자니 <br />
그 선명성에 흠이나 내지 않을까 겁이 나는 거지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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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그래요, 그런 두려움이 있어야, 글도 되고, 또 성찰도 되지여. 저는 사실, 겁나기 때문에 내적인 것에 대해 천착하는 지도 모릅니다. 저도 저 나름에는 아는 만큼의 발언 영역을 그리 잡은 것이 되는 게지여. 편케 쓰세여. 이길 만큼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내는 것 이상의 글이 없으니까여.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하면, 제가 너무 불편해집니다. 건필하시고여, 줄입니다. 가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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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님의 댓글

장종권 작성일

  김재성님, 글 계속 올리세요. 충고는 충고대로 새겨 돌아보시면 됩니다.<br />
부족하거나 위험스러운 면이 있다면 넉넉한 자세로 바로잡아보세요.<br />
그러나 계속 써야 합니다.<br />
비평가다운 안목보다 오히려 독자와같은 평범한 눈으로 작품을 읽는 것도 괜찮습니다.<br />
잘 읽고 있습니다.<br />
윤관영 시인, 리플 중의 '참고 있으셨으면 합니다'는 '참고하시라'는 의미겠지요?<br />
혹시 '글 올리는 것을 자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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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김 시인, 잘 지내져? 제가 불편하게 했나여? 저는 댓글을 달면서 건방떨려고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가르치려는 의도는 더욱더 없구여. 사실 그만한 능력도 없구여~<br />
-저는 댓글을 달 때, (스스로 많이 어렵기도 한데) 솔직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솔직하지 않으면 으레적인 말이 되고 알맹이가 없으니까여.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제겐 댓글 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참고 있으셨으면 합니다'는 아는척하고 나면 쑥스러운 나머지 가져다 붙인 말인데, 그렇게 해석될 여지도 있다니(더우기 저는 '글 올리는 것을 자제하라'마라할 만한 처지에 있지도 않구여), 미안합니다.<br />
-잘 지내시고여, 다음 평도 기다릴 게여~ <br />
-가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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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어휴, 이를 어쩌나... 아무튼 주신 말씀 잘 알겠습니다.<br />
작가들이 쓰지 않을 수 없듯이, 독자 또한 읽기를 멈출 수는 없겠지요. <br />
잘 읽고 느끼면서 작은 목소리로 읽음을 말하겠습니다.<br />
늘 격려해주시는 윤 시인, 장 선생님을 비롯 리토피아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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