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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바다 또는 물에 대한 기억 몇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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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성
댓글 6건 조회 2,465회 작성일 04-07-22 09:02

본문

.



환 청

   A는 모른다. 내가 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무심히 그러라던 A는, 밤이
면 내가 듣는 소리를 환청이라고 생각한다. A는 창문을 닫는다. 그렇지만 정
말 갔다 올 수는 있는 거예요. 물론 없다. 네 살 때 제 형은 시장을 다 나다녔
는데 저놈은 왜 일곱 살이 넘도록 대문을 못 나설까......하지만 어머니, 바다
에 가고 싶어요. 밀려나온 해초를 밟고 푸석푸석 걸어 보고 싶어요.A는 문을
잠근다. 하나 둘 셋, 차례로 둔탁한 쇳소리를 내는 3중의 문고리, A는 비로소
안심한다. 그런데 말들이 해초를 먹나요.  어제 그 찻집 말이에요. 벽에 걸려
있던 네 마리의 말들, 하얗게 물을 차며 달리는 대로 부서져 날리는 파도, 파
도소리......  이상하죠, 말들이 왜 소리를 지르며 달릴까요. A는 옷을 벗는다.
하나 둘 셋 차례로 열어 보이는 바다, 바닷새 나르는 모양. 나는 다시 소리를
듣는다. 말 울음소리 아아 망측해라 바다에선 당신도 교성을 지를까요. 그렇
게 웅크리지만 말고 시간을 내봐요. 아니, 시간은 항상 있어. 비가 온다.  3중
의 문고리, 견고한 2중의 창문으로 흐르는 비,  빗소리, 빗소리 같은......무슨
소리 들려, 소리 안 들려. A는 내가 듣는 소리를 환청이라고 생각한다.



바다로 가는 길 2

미시령에 다 오르니
바다가 보였습니다. 아주 가까워 보여
나는 차를 먼저 보내고
걸어서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딴에는
길을 잃으리라 호기를 부렸지요.
산을 내려가는 길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소나무 숲이 지나면 참나무 숲,
조금 더 가다보면
다래 칡넝쿨과 키 작은 잡목들
나는 나무들께 인사를 건네거나
다람쥐께 수작을 걸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걸었습니다.
천정바위라도 있으면
틈으로 들어 기웃거리기도 하였지요.
그러나 그렇게 가까이 보이던 바다는
쉬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직 숲에 있습니다.
키 큰 나무들에 빛 가려 하늘 어둡고
바다는 그저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녁 무렵

새남터에서 노량진 앞강으로
노을지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가끔
한강철교 위를 나르는 갈매기를
보게 됩니다. 서울 한복판에 갈매기라니
신기하지 않은가요.
이렇게 살면서 보자면 오이도나 소래 포구가
꽤 멀리 있긴 합니다만
새들 나르는 정도로는 그게 뭐 별로
먼 거리가 아닌 듯 합니다.
날이 풀리니까 바람에 실린 채
방심해 버린 건지, 수산시장 뒷터에서
먹을거나 찾아볼 요량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사람 사는 모양
구경이나 한 번 해보자는 것일까요.
아무튼 이렇게 푸대자루처럼
도시형 시내버스에 실려가면서, 흐린 창문으로
바닷새 나르는 모양을 본다는 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습니다. 남해군도(南海群島) 어디쯤 물세 험하
여 아직 사람 발들인 적 없고 어째 곁에선 고기도 잡히지 않아 뱃사람조차
곁꺼리는, 섬 하나 물알겡이 말간 모습으로 떠다닌다는 것을. 그러한 섬 있
어 어슴푸레 날 터올 녘이면 해무에 씻긴 흰 머릴 들고 우어 우어어 소리를
내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게 숨이 있나 보지요. 모질은 숨 있어 억 겁 실한
울음 풀리는 바다 저 모양으로 진저리인가 보지요. 하지만 사나흘 자리잡고
앉아 눈 부벼 봐도 날 사나워 배 한 척 없는 바다엔 드센 물결소리뿐입니다.
햇살 맑은 날이면 그 녘에 다시 삐쭉하니 고개 쳐들고 간간이 흰 알몸 내보
이기도 한다는 그 섬.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안개 자욱
한 남해군도 어디쯤 몸 사려 떠다니는지.

   오늘은 피곤했어요, 흰 등어리 보이며 당신이 돌아누운 밤 몸 뒤척이며 나
는 다시 바다를 꿈꿉니다. 끈적이는 욕정으로 달려가 안아 보는 바다, 하지
만 출렁이는 물결 속 몸 던져 봐도 나는 반쯤으로밖에 잠기지 못합니다. 바
다는 어떤 부력으로 나를 밀어내는지요. 감추어야할 치부는 왜 감추어지지
않고 떠오르기만 하는지요. 밀어드는 파도 맨몸으로 맞으며 나는 수음을 합
니다. 반쯤으로 잠긴 아랫도리 끌어넣고, 치떨며 흰 섬 하나 떠올리는 바다.
그러고 보면, 당신의 흰 등어린 해무에 둘려 보이지 않던 섬 아니었을까요.
온몸 풀어서도 잠길 수 없어 숨가쁘던 바다, 온전히 떠 있던 이끼 푸른 그 섬
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몸 비어 서서 나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찾을 수 없
어 빈 가슴으로 돌아서던 뒤 켠, 나직한 숨소리로 떠 있던 당신을.





  나는 꿈을 꾼다. 그리고
  꿈을 위하여 되도록 많은 잠을 잔다.
  흑백필름으로 찍혀진 하늘이 있고,
  닿지 않을 높이쯤 뭉크의 신혼부부와
  사건1224의 판결문
  의미가 떨어져 나간 기호들이 떠있다.
  소리들, 분간되지 않는 중얼거림이
  그 곁에 떠서 흐물거린다.
  나는 눈을 뜬다. 멈추어 있던 원형시계가
  드디어 촛농처럼 흘러내린다.
  하얗게 굳는다.
  늦은 아침, 창 밖으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  



파도

그렇게 아픈 뒷모습으로 돌아서는
당신의 차운 발길 아래
나는 흰 거품으로 남습니다.
저 바다 어디쯤에서 소리로 날리는 이여
바닷새 작은 가슴마다 새겨진 흔적을 보시나요
그대 다가설 때마다 소스라치며 몸 비비던
바위들, 저 패인 아픔을 보시나요.

나는 이 켠 바닷가에서
다시 당신을 기다립니다.
팔 가슴 뚝뚝 흐르는 물, 등지느러미모양 늘어진
머리카락 휘휘 저으며 다가와
물풀내음 촉촉히 젖은 손을 내미는 당신.
그러나 물풀들 밀려와 그어진 선 이 켠에서
당신의 손은 너무 멀어 닿지 않습니다.
나는 다시 온몸 풀어
흰 거품으로 스러집니다.



바다는 어디 있는가

나는 바다에 다녀오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눈부신 모래알과 흰 파도를 보았고,
바람에 모자가 날릴까봐 잔뜩 움츠린 계집아이
새, 새 울음소리, 밀려나온 해초
그리고 바위틈에 숨어 있던
작은 물고기를 보았다. 아 낮에
나는 바다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미시령을 넘으면서
더 길게 굽은 산길을 돌아 내려오면서
내가 바다를 보았다고
저 풍경과 소리 틈에 서 있었다고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었습니다.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눈앞이 흐릿해서
운전을 잘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바다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압니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 있는 바다를 찾는지
정 알 수가 없습니다.



거울

거울은 나를 두 개로 만들고
두 개의 거울은 나를 무한대로 만든다.
거울 사이에서 모든 내가 나의 뒤통수를 바라본다.
나는 생각을 멈춘다. 모든 내가
동시에 생각을 멈춘다.
이건 정말 끔찍해, 그러자 모든 내가
동시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저 모든 내가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네가 모든 나라니.

나는 거울 사이에서 벗어나
생각이 다른 나에게로 간다.
거기 스무살쯤의 언덕
벗은 몸으로 서 있는 나는 아직 가볍고
비어 있고 무균스럽다.
아직 아무 흔적도 없는 내 거울 속에는
푸른 성애만 푸르게 빛나고
날선 풀잎들 스윽스윽 살갗을 베며
내 빈 속을 다시 헐어낸다.
거울 밖으로 나오니 참으로 시리다.
나는 다시 모든 나에게로 간다.    



7 층에서 산다

1.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서서히 닫히는 외부. 7층을 누르고 둘러
본다. 이스터의 석상처럼 모두들 정면 15도 위쪽을 바라본다. 한
여자가 힐끔 돌아보며 속삭인다, 시선은 성폭력일 수 있어요. 얼
른 정면 15도 위쪽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빨간 비상버튼이 눈에
들어온다. 아래 사용자 안전수칙.  아래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
거나 지킨 사람이 갇혔을 때를 위한 인터폰.  혹, 혹시 거기 사람
있나요.  엘리베이터가 멈,  멈췄.「 ...... 추지 않았을 때 인터폰
사용을 금함」아니 갖혔다니까, 문이 안열려, 거 거기 사, 사, 사
람 없.

6 개의 면, 12 개의 직선, 24 개의 직각
으로 닫혀진 사용인원 8인의 정육면체와
선사시대 가족공동 목곽분(木廓墳)의 상사성.
오, 그러나 삐 ─ 신호음과 함께
스스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기적처럼)
나자로, 이제 걸어 나오너라 소리가 들리면
나는 당당하게(나자로처럼)
외투를 벗어 왼쪽 팔에 걸치며(수의를 벗듯)
사무실로 들어선다(웃는 얼굴로)
어이 모두들 안녕하신가.

2.
또는 B.C 1840년경 스토운헨지의 거석群과  
A.D 2003년 한강변에 배열된 아파트먼트群
또는 무교동 스카이 라인을 구성하는
인텔리젼트 빌딩群의 상사성.
또는 혈거(穴居)중인 피테칸트로푸스와
엘리베이터로 7층에 오르는 나.

3.
7층에서 손을 내밀면
7층 높이의 하늘이 만져진다.  
창문을 열지 않아도 여기선 바람이나 구름이
아무렇지 않게 내 몸을 관통하며 지난다.
3층쯤에서 나부끼는 깃발
5층쯤의 점멸식 광고판
7층은 새들 나르는 높이의 하늘을 기대고 있다.
미스 리, 바다는 몇 층에서 보여.
바다라구요?
창 밖으론 바람과 하늘 구름 소리가 섞여 흐르고
가끔씩 끼루욱 끼루욱 바닷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4.
그러고 보니 당신 양서류였군.
구부정한 등어리로 흘러내린 지느러미
발가락 사이 저 물갈퀴 좀 보라구
끈적거리는 습성피부...... 흉측스러워라.
저 비릿한 걸 왜 아직 달고 다니는 걸까.
움직일 때마다 당신에게서 묻어나는 점액질
이젠 진저리가 난다구. 여기서 바다를 꿈꾸다니,
이건 도덕적이지 못해.

5.
미스 리는 다이어트를 한다.
아침은 미네랄-워터 한 잔과 토우스트 반 쪽
점심은 야채 쥬스
저녁엔  저칼로리 비스케트와 소프트 커피
7층에서 살려면 가벼워야 해요.
지난 달엔 5킬로그램이나 뺏다구요.
그녀는 관성(關性)을 잃는다.
더 가벼웁기 위해 살을 조금씩 헐어
고탄성 신소재로 바꾸는 그녀.

6.
날마다 그녀의 몸은 가벼워진다.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는 피부
허리로 흘러내린 균형잡힌 곡선
팡팡한 힙, 팽팽한 다리.
나는 그녀와의 정사를 생각한다.

(옷을 벗긴다. 몇 개의 스위치 버튼이 장치되어 있는 가슴. 누른다.
첫 번째 버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분출되는 사향.
두 번째 버튼, 가슴이 융기되고 아랫도리가 촉촉히 젖는다.
세 번째 버튼, 적당히 교성을 지르기 시작하는 그녀.
준비되었음, 시작해도 좋습니다.)

7.
창문으로 빗겨드는 오후가 타닥타닥 타이핑되고 있다.
링겔 수액처럼 흘러내리는 햇빛
끈적거리는 점착력이 펼친 아스팔트 위로 벌레 한 마리 지나고
그리로 시간이 조금씩 묻어 나왔다가 사라진다.
흐트러진 사물들로 꼴라쥬된 풍경을
회칠한 마르디-가르소의 얼굴로 失笑하는 오후
미스 리, 타이핑페이퍼를 색종이로 바꾸면 어때, 바꾸나마나
종이쪽, 질펀히 널려진 事物들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려는 시도는 하지만 없다.
나는 성욕을 잃는다.

추천2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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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이렇게 많은 시를 한꺼번에...<br />
시의 바다를 보는 것 같아요.<br />
내게도 바다는 늘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br />
막상 찾아가면 무덤덤하고 돌아서면 그리운 존재인<br />
 바다...<br />
저녁 무렵이란 시가 좋아요<br />
시의 장면이 잘 그려지네요<br />
노을 지는 한강 철교 위를 나르는 갈매기<br />
사실 가까운 곳에 바다를 두고 보지 못하고 사는 지도 모르지요<br />
매미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여름 한낮입니다<br />
정말 바다가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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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겸님의 댓글

정 겸 작성일

  김재성님이 올려놓은 시를 읽어 내려갑니다.<br />
비릿한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느낌니다<br />
물론 갈매기의 환청도 들리고요<br />
꼭 고향에 온 느낌은 주는 시입니다<br />
왕성한 시작 활동 부럽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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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님의 댓글

김효선 작성일

  은빛으로 출렁이는 바다 곁에서 늘 푸른 꿈을 꾸는...시들지 않는 목마름처럼...그러나 바다는 언제나 유혹을 꿈꾸지요...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을 만큼 짙푸른 유혹을 언제나 멈추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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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부럽네여~ 이렇게 많은 시를 가지고 있다니--- 시를 한 편씩 나누어서 올려도(편편마다) 읽고 댓글을 달기가 나쁘지만 너무 시가 많아도 댓글 달기 만만치 않은 걸요. 파악이 잘 안 돼요.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그런가 봐요. 김 시인, 프로는 이미지 관리도 해야해여~ (호옷_약간의 유우머) <br />
-이렇게 만나네여~ 장총무님, 겸이 헹님아, 효선 시인~ 무척 반갑습니다. 무더위에 건강과 건필을 빕니다. 가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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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나이 마흔을 넘겨서도 늘 바다를 꿈꿉니다. 어리석은 일이지요.<br />
나는 아마 볕에 버쩍버쩍 말라들어가는 습성피부를 가진 양서류의 한 종일 것이어서 <br />
늘 물가의 풍경을 그리나 봅니다. 어줍잖은 시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br />
휴가갔다 이제 왔습니다. 하선암, 학가산, 안동을 들러... 윤시인님 제 어린 것들에게<br />
죽도록 잊지 못할 풍경을 안겨 주셨습니다. 오래 더 생각하면서 고마워하지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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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환청이었던가요?<br />
환각이었던가요?<br />
바닷내음, 파도소리, 빗소리.<br />
마음 가는 곳에 몸 가고 , 몸 가는 곳에 마음 간다고,<br />
마음 이미 바다로 떠났으니<br />
몸은 벌써 바다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네요.<br />
행복한 행복한 너무나 행복한<br />
바다로의 여행, <br />
기인 밤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로의 여행.<br />
<br />
- '환청'의 이미지를 따라가다.<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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