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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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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경희
댓글 11건 조회 2,227회 작성일 04-03-1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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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여고 2학년6반 교실의 3월 풍경

분홍 빛 뺨을 하고 있는 사랑스런 21세기의 아이들이 내게 40명이나 주어졌다
그것은 마치 행운 같다
아이들은 5000년의 지혜를 버거워 하기도 하고 자기 삶으로 가는 길을 찾느라 허둥대기도 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 불안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 아이들과
숲의 미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한 기분이 든다
숲에는 나무와 햇빛과 공기와 물 풀 새와 곤충 그리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숲의 청소부의 역할을 하는 미생물도 있다고 우리 모두가 빛나는 나무와 햇빛은 될 수 없지만
때로는 서로에게 벤치도 되어주고 배경도 되어 주면서 아름답게 일년을 지내자고

우리 안의 신의 조각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도 나누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이야기
습관이 운명이 된다는 이야기
C 학점인 사람들이 나중에 모교에 도서관을 기증하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한 기분이 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
세상이 알지도 못하는 평화가 3월의 교정에는 있다

어떤 사람에게 환경미화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면 그는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베토벤이 작곡을 했던 것처럼, 그리고 세익스피어가 시를 썼던 것처럼, 마땅히 거리를 쓸어야한다. 그는 거리를 잘 쓸어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천사들이 멈추어 서서 여기에 자신의 일을 정말 잘했던 위대한 환경미화원이 살았다 라고 말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마틴 루터 킹-
우리에게 주어진 일년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자는 말도 잊지 않는다

100년만에 폭설이 내린 날
운동장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눈이 녹는 것처럼
아이들이 교정을 아주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교정을 어두운 무채색으로만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이런 시를 쓴다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고
어깨를 한번 안아주고
일기를 쓰게 하고
눈빛을 한번 맞추고
환하게 웃어주고

아이들은 일기장을 펴고 이런 구절을 쓴다

세상이 하얀 백지처럼 고요한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고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물들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난 아이들의 일기장을 보면서 김하인의 소설 허브를 사랑하시나요에 나오는 인간의 영혼을 가진 식물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평원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서북쪽으로 연결된깊은 밀림에는 ‘우츄프라 카치아’라는 속명으로 불리는 식물이 있다. 사철나무 형태의 동그란 잎인데 두께가 얇은 청록색의 표면에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다. 주로 가시나무 울타리 안에 사는 것으로 공기중 소량의 물과 햇빛으로만 산다. 이를테면 동물에 대해 가시울타리를 철벽으로 갑옷처럼 둘러 자신을 구금한 대신 목숨을 보호받는것이다.

우츄프라 카치아는 원숭이를 비롯한 그 어떤 짐승들조차 자신을건드리면 하루가 다르게 시들해지다가 결국 죽고 만다. 버티는게 고작 두어달이다.

20세기초 유럽에서 온 식물학자가 우츄프라 카치아를 연구했다.
이 극도의 예민함과 극도의 결벽증을 가진 식물을 10년 넘게 연구하며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물론 무수한 우츄프라 카치아가 죽어나갔다. 식물학자는 자폐증에 가까운 이 식물을 죽이지 않고 햇빛 속으로, 집 속에서 끌어내는 법을 결국 발견했다.

한번 우츄프라 카치아를 만진 이상 그사람이 매일매일 곁으로 가서 만져주어야 한다는 것. 애정을 가진 마음으로. 연인처럼 사랑하는마음으로. 그식물학자가 발표한 <우츄프라 카치아에 대한 논문>은 학계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식물은 단지 음지식물과(科) 변종일 뿐이라는 끊임없는 비난 속에서도 말이다.

사람의 영혼이 있는 식물.
그후 식물학자는 세렝게티 끝 밀림속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신이 만졌던 <우츄프라 카치아>를 집안에서 기르며 평생 혼자 살다가 죽었다.



누군가 생명을 걸고 낳은 아이들
누군가에게는 보석보다 소중한 아이들
오랫동안 들여다 보면 한없이 맑고 평화로운 아이들
우리의 말 한마디 작은 표정 하나하나로 자기들 삶이라는 퀼트를 짓는 아이들
아직은 천상에 속해 있는 아이들
......
추천2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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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창가의 토토가 생각나는 참 좋은 글이군요. 최근에 아들의 필독서라 사주고 나서 보게된 '아이들의 풀잎의 노래'였던가 하는 시집의 양정자 시인(이름이 정확한지는 모름 /현기영 선생님 사모님이라고는 알고 있는데)의 마음이 잡히는 글입니다. <br />
-아마도 휴식년의 지내고 마음을 다잡는 유 시인의 결의 같은 것이 선하게 느껴져서 좋습니다. 좋은 시도 많이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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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 것일까?<br />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2학년 6반 교실.<br />
분명 아이들은 아이들보다 더 환상적이고 <br />
평화를 주는 시인 선생님을 오래오래 기억하겠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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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처음 만나는 날 우린 약속을 했지요<br />
나는 아이들의 장점만을 보고 동그라미를 아주 크게 그려 주겠다구요<br />
그리고 우리들의 교실에서는 절대로 인권 침해나 기본권 침해는 없을거라구요<br />
<br />
아이들은 품위가 있고<br />
아직 덜 자라서 귀엽고<br />
<br />
오랫만에 돌아온 학교는 동화속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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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

  유 시인님 참 보기 좋습니다. ....아~ 나도 안식년 하고 싶다.<br />
치료가 아닌 일이 되버린,제 진료실을 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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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아픈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디나 학교이지요<br />
<br />
아 참 피해망상이 있는 아이가 있는데 <br />
도움 많이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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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벌겋게 달아오른 무쇠 난로 위로 양은도시락 층층이 탑을 쌓던 시절<br />
나는 인천여고 2학년 4반이었드랬습니다<br />
세월의 아코디언 주름을 꾸-욱 압축시켜 지금 나는 유경희 선생님과 눈맞추며<br />
은행나무 가득 푸른 나비 팔랑대던 교정에 섰습니다<br />
그 때도 유시인처럼 따뜻하고 맑은 영혼을 심어주시던 선생님 한분 계셨죠<br />
생물선생님이셨는데, 많이 뵙고 싶네요<br />
유시인을 오래 기억할, 인생을 멋지게 살아갈 내 후배들을 생각하며<br />
나 유시인께 딱 한 번만 선생님이라고 부를께요<br />
- 유경희 선생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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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21세기의 교실에는 무쇠난로와 양은 도시락은 없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br />
아이들이 올림픽기록으로 식당으로 달려가곤 합니다 *****귀여운 풍경이죠<br />
<br />
대신 21세기의 교실에는 온풍기와 에어콘이 빵빵하게 나온답니다<br />
잘 지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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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님의 댓글

안명옥 작성일

  많이 아팠다 경희야 아프고 나니까 여유가 생긴다 내려놓고 나니까 잘 지내고 있지 오랜만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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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겸님의 댓글

점겸 작성일

  봄철에 때아닌 풋사과 향내가 교실에 가득차 있군요<br />
그  향내 이곳까지 번져옴을 느낌니다<br />
사람들이 모두 "동그라미" 로 보일때<br />
이 땅위엔 진정한 평화가 올것 입니다.<br />
"세상이 백지처럼 고요한 곳"<br />
저도 요즘은 그러한곳에서 살고 싶습니다<br />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을까요?<br />
봄 볕이 참 좋습니다 ^^<br />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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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늘 느끼는 거지만 제게는 어떠한 기억이든 뚜렷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자라고 살아왔던 사람처럼요. 허청미 시인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너무 부럽습니다. 추억이 아슴아슴 끝없이 다가오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걸까요. 슬픈 기억도 지나고 나면 모두 다 아름다운 추억인데. <br />
유경희 시인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건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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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아픈 건 영혼이 돌보아 달라고 하는 거라네요<br />
<br />
 정겸 시인에게는 백지처럼 고요한 곳의 이미지가 있습니다<br />
<br />
뚜렷한 기억이 없는 것은 중요한 것만 기억하시기 때문일거예요 <br />
<br />
봄이네요<br />
<br />
좋은 시들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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