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작품
몽당싸리비
페이지 정보

본문
바람 맑아 칼칼한 날, 팥죽솥을 걸었네.
그늘엔 두툼한 눈덩이 쌓였는데
통장작에 앉아 불을 지폈네.
아랫도리부터 된통 한 번은 비틀어 올라가야,
끝장을 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모지랑싸리비
막대기가 된 싸리비,
묶은 칡은 풀리지 않았네.
발매치와 대솔장작을 몸 위에 얹고서,
신문지 한 장으로 제 몸을 불사르는 비움
또깡또깡 끊어지면서, 쉬 재가 되었네.
젖은 부지깽이도 그을리며 불타올랐네.
맑은 재 된 다비식이
팥죽 속에 새알을 남긴 듯해
보리밟는 걸음으로 주걱질을 했네.
뭉근한 불땀 속에 나무주걱질은 귓바퀴를 닮아
귀신의 길을 알 듯도 했네.
댓글목록

신광철님의 댓글
신광철 작성일
아랫도리부터 된통 한 번은 비틀어 올라가야,/ 끝장을 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몽당싸리비/생은 제 키를 줄여 가는 거라는 듯<br />
<br />
다비식은 죽은 사람을 태우는 것이 아닌 산 사람들을 태우더군요. <br />
장작이 남긴 재와 사람이 남긴 재가 <br />
남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어깨를 <br />
그리고 어깨를 흘러내려 <br />
발등까지 뽀얗게 태우더군요. <br />
그 자리는 죽은 사람은 떠나고 <br />
산사람은 그대로 남아서 오랫동안 타더군요.

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저도 오래동안 타고 있었던가 보군요. 재마저 남기지 않는 완벽의 극을 본 것 같았는데요, 제겐. 영혼마저 말라버린 어떤 상태 같더라구요.<br />
-관심, 고맙습니다. 가뇽

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이렇게 좋은 시를...<br />
합평회 시를 미리 올려놓으니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네요.<br />
깰 사람은 마음 놓고 깨보란 뜻인가 본데..<br />
자신만만!<br />
좀 반칙 같다...

안명옥님의 댓글
안명옥 작성일시 잘 읽었습니다 갑자기 그 팥죽 한 사발 먹고 싶어졌어요

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안 시인 이라면 한 사발 아니라 여러 사발이라도 준비해 내야지요. 잘 지내고 있는 거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