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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골짜기를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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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동-
금성에서 만들어 보낸
문짝 떨어진 냉장고처럼 방치된
집들이 드러누운 달의 골짜기, 월곡동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며 생살을 비비는
지붕들은 장마에 머리털이 숭숭 빠져 버렸다
태양의 세례를 받아 본 적 없는
가난이 버짐 피는 골목길
한 때, 지구로 통하는 계단에 고개 내민
키 작은 질경이를 밟으며
공부방을 빠져 나오는 아이들은
아폴로 11호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다
전기 끊어진 집에 갇힌 사람들 알전구처럼
마당을 밝히는 능소화에 가슴이 환해지지만
달동네 특집을 다루는 신문 기자의
낯선 방문에 외계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끔씩 지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문짝 삐걱이면
마음마저 삐걱이는 폐품처럼 버려진 사람들
떠나온 지구를 그리워하지만
우주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댓글목록

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우주선이 돌아오지 않는 달의 계곡에 능소화 만발하고...<br />
지상(도심)의 어떤 가난을 나타낸 시인의 은유가 가슴 시린 동화 같아 더 절절하네요<br />
달의 골짜기를 걷는 시인은 지금쯤 그 아이들에게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릴 꿈을꾸고 있을 듯,<br />
제목과 부제의 아우름이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br />

서동인님의 댓글
서동인 작성일
허청미 선생님, 잘 지내시죠?<br />
시 읽어주시고, 평까지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br />
작년 여름에 구상한 것을 이제야 썼습니다. <br />
아직 정리가 덜 된 것도 같습니다. <br />
목련을 닮으신 허 선생님께서도 건승건필 하세요.

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아폴로 11호라면 오래된 야그네그랴. 우주선은 안 와도 좋으니, 올게는 장가 좀 갔으면 싶다.<br />
-그래야 늙수그래한 총각티 벗을라나.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 말이야.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20대 초반에 가보았던 월곡동의 풍경과 조세희의 '난쏘공'이 문득 떠오르네요.<br />
월곡동을 처음 보던 날, 그 가파른 언덕들에 서 있던 집과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걸어가는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고 멀쩡하게 서 있던 것이, 걸어가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었지요.<br />
그 가파른 언덕 넘어엔 환한 대낮에도 이름처럼 달이 떠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했던 산동네.<br />
월곡동의 추억속으로 오랫만에 잠겨봅니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추억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