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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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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나는 혼자 있었습니다.
연락되지 않는 전화번호로 끊임없이 다이얼을 돌렸습니다만
수화기 저켠에서는 부재중을 알리는 기계음이나,
우울한 신호음뿐이었습니다. 창밖으로는 뜻모를 전언을 입에 문 새들이
계속 눈발처럼 흩날려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 새들은 다 어디서 어디로 가는 것이었을까요.
나는 무료하게 앉아 그쯤 어디로
당신이 날려보낸 새가 보여오지나 않는지
오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새들의 입을 벗어난 전언들이
나의 창 언저리에 날려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리 쉬 녹아버리는 눈발처럼, 그것들은 제 손에 닿기 전
자모(子母)로 분리되어버릴 뿐이었습니다.
나는 전언들을 이리저리 모아붙이며 퍼즐게임이나 하다가,
가끔씩 어렴풋하게 형체를 드러내는 전언들과
끝말잇기 놀이나 하다가, 새우처럼
구부려 누웠습니다. 잠속으로 꿈이 들어
자음과 모음이 분리된 저 전언들처럼 내 몸도 가벼워진다면
중천 어디쯤을 ᄀ· ᄂ· ᄃ· ᄅ 로,
ㅏ· ㅑ· ㅓ· ㅕ 로 흩날릴 수 있었을까요.
새들의 전언이나 눈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흩날리던
겨울의 것들은 거리에 쌓여
바람이 부는데로 이켠 저켠으로 몰려 다니고,
어디선가로부터 타전되는 모로스 부호들이
해체된 새들의 가슴이나, 벽이나, 전신주나,
말없이 서있던 나무들의 옆구리에 툭툭 박히기도 하던
겨울은 그렇게 흐르고, 그쯤 어디에 나도 그렇게 서있었습니다만,
대체로 평온하게,
대체로 연인들은 연애를 하고,
바라보는 자는 바라보고,
술마시는 자들은 술을 마시면서,
꿈꾸는 자의 곁을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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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리토피아의 회원이 되어 몹시 기쁩니다. <br />
여러 선생님들께 인사드립니다. <br />
평소 깊이 빠져있던 시인들이 계시는 이 곳에 <br />
인사를 겸하여 시 한 편을 올립니다.

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와 시가 참 좋으시네요<br />
<br />
우중충했던 하루가 밝아지는 느낌입니다<br />
<br />
시의 묘미가 이런것이겠지요<br />
<br />
좋은 시 많이 들려주세요<br />
<br />
환영합니다

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글고 무쟈게 환영합니다.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반갑습니다. 리토피아 새 회원으로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무지무지.<br />
앞으로 자주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