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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피아노 외 1편 / 황성일(시와사상 2009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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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태식
댓글 1건 조회 4,825회 작성일 09-06-08 11:48

본문

푸른 피아노


길바닥에 잠든 그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린다.
취객 몇 지나가는 동안, 진동음은
횡단보도 검은 건반 위만을 지나간다.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쯤,
파란불은 켜질 것이다. 빠르게 식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기를 기다려
온종일 무대 뒤의 배우처럼 옷을 갈아입었을
붉은 신호등 속 사내가 그에게로 간다.

이렇게 누워 있으면 어떻게 해.
누울 수 있다고 다 집은 아니잖아.

그의 몸에 혀처럼 달라붙은 나뭇잎들,
비질로 탈탈 털어내고,
올해 크리스마스는 함박눈이 올 거라는 기사가 실린
조간신문 한 장 사내의 얼굴에 덮어 주고,
아침 쪽으로 불어가는 바람.

근처 세탁소에서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온다.
햇살을 받자, 휴대전화 진동음이
흰 건반 위만을 지나간다. 어젯밤,
유일하게 꺼지지 않은 그의 휴대전화에
가장 깊숙이 묻힌 음성메시지 하나,

아빠, 언제와? 오늘 나 피아노대회에서 상 받았는데.




파도소리 듣는 폐선


모든 저녁은,
망자의 몸 위에 덮는 관뚜껑처럼 온다.
갯벌에 덩그러니 버려진 고깃배,
닻은 육지에 꽁꽁 묶인 채,
수평선 아래 사라지는 파도소리 듣고 있다.
갈비뼈 훤히 드러난 지붕엔
흰 갈매기 떼,
뼈에 남은 살점들을 쪼아 먹는다.
찢겨졌지만 아랑곳 않고 펄떡였을 갑판 위로
우는 갯바람.
선장실 중앙에 자리한 키만은
녹슬 겨를도 없이 매끈한 건
사포처럼 거친 선장의 손이 함께 했기 때문.
이제 그곳엔 선장의 그림자만이
매일 꾸는 꿈처럼 짙어간다.
평생을 함께해온 바다마저
멀리 떠나가고,
어느덧 기우뚱 기울어진 선체로
침몰하는 석양.
누군가 와서 아직 쓸만 하다고
닻을 풀고 망망대해의 파도소리 들려준다면
가슴속 일렁이는 마지막 꿈
뱃고동으로 힘차게 울릴 수 있을 텐데,
육지의 끝자락에 매달려
끝내 두 귀만은 포기하지 못하는
폐선.
추천78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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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관뚜껑이 덮는 건, 망자가 아니라 <br />
망자의 몸일 뿐이라는 것. 어쩌면 망자는 저 몸에서 벗어나<br />
파도소리며 갈매기떼, 저녁의 느낌, 평생을 함께해온 바다를<br />
그 혼합을, 엔트로피의 끝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br />
그것이 시인의 관점이라면, 어쩌면 말이지, 폐선의 귀<br />
저 세상에의 감각에 의존하는 미련스러움 말이지, 오래 그렇게 퍼질러져 <br />
이승의 육고를 벗어나지 못할 거란 예감.... 으쯔까잉. <br />
아직 쓸만한, 저 침몰하는 태양 말이지.<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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