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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영/그림자놀이/시에 2010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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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놀이
그가 나의 정원으로 오고 있다.
빛을 등지고 오는지 그림자가 먼저 들어온다.
살구나무가 덥석 안으려다 허공으로 놓치고 만다.
텃새 한 마리 살구나무에 앉다가 그 그림자에 묻힌다.
꽃밭까지는 눈먼 사람의 눈빛을 읽으며 간다.
춘분과 추분 사이 그림자가 그림자놀이를 한다.
두 팔을 벌려 훨훨, 드넓은 허공이 새의 깃털 속으로 파고든다.
두 손을 머리에 깡충깡충, 깊은 산속이 토끼굴에서 기어 나온다.
뱀의 혀로 날름날름, 양념하지 않은 비린 생이 진국이다.
해가 기우는지, 훌쩍 자란 그림자가 장미를 움켜쥔다.
움찔, 날카로운 가시가 그림자에 찔린다.
그림자 속에서 그림자가 되어 영롱한 눈빛을 잃는다.
피를 흘리지 않아, 아프지 않은 그림자를 품에 안을 수가 없어.
그림자는 언제나 바람처럼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림자를 밟으며 걷는 마음으로
해를 삼키는 달그림자처럼, 야금야금 어둠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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