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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길항, 혹은 서성거리기/아니면 어느 영혼 치료사의 자기 진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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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관영
댓글 10건 조회 2,227회 작성일 03-12-28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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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와의 길항, 혹은 서성거리기
-아니면, 어느 영혼 치료사의 자기 진료기
*윤관영(시인)


1. 그의 구멍
그의 시를 읽으면서 들었던 궁금증 중의 하나, '어떤 우울감의 정체'의 정체는 대체 뭘까 하는 것이었다. 허나 지금 그 의문을 버린다. 그는 우울감의 정체를 파악하는 사람이고, 그 스스로 그것을 이기는 방식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그가 술집에 잘 가는 것도 그 때문일 터.
시집 도처에 그가 술과 꽤 가깝다는 전언이 널려 있다. 장마가 되더라도 그는 '계속 넘어지다가, 떠밀리다가/겨우 붙잡고 서 있는 두어 평 공간,/술집 상원'(「어떤 장마」부분)으로 가는, 끝내는 가고야 마는 사람이다. 가서 위안을 받는다. 그것은 그가 치료자로서 스스로를 치료하는 공간을 가져야 하는 때문이기도 하다. 왜 무협지에 보면 상처 난 짐승이, 본능적으로, 치유되는 온천에 가서 몸을 담그는 것과 같다. 그런데, 무협지에서도 그 곳에서 치유 받는 동안에는 서로 적대적인 짐승들 사이라도(천적) 그 곳에서만은 서로를 묵인하(고 싸우지 않)는 것이다.


2. 그의 자리

그의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

날선 눈빛,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시퍼런 칼날임을 알았다. 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순자 씨의 칼솜씨는 대단했고, 아슬아슬 내 옆구리를 몇 번이나 지나가기도 했다. 같이 온 남편은 죽는시늉을 하며 칼날을 피해 보지만 그 때마다 그는 점점 잘리어 몽당발이가 되어갔다. 어젯밤 기필코 점수를 따보겠다고 순자 씨 옆에 갔다가, 어느 년에게 힘 빼고 와서 육갑 떨어! 끝내 칼을 피하지 못했다. 이래도 베이고 저래도 베이고, 이젠 아주 칼날 위로 올라가 축 늘어져 있는 사내. 3일 뒤 가정법원 제출용 소견서 써달라며 조목조목 남기고 간 예리한 증거를 차트에 적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또박또박 적으려 해도 날카로운 칼 동작만 떠오를 뿐이다. 59세 피너스가 무슨 죄인지 몰라도, 질질 끌려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 들린다.
―전문「칼날」

그의 자리는 남의 상처를 자기 상처로 환치하는 자리다. 물론 그래서 그는 곪고 썩는다. 그래서 그가 자주 술집에 가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질질 끌려 계단을 내려가는 그 피너스의 말로가 왜 자신의 말로가 아니겠는가. 아직은 아니라고 단정하거나, 다를 거라는 것이 스스로의 위안일 수 있으나 그것은 치료사 본연의 자세가 아니다. 100% 동화를 목적으로 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하는 치료사의 자리는 일단 나를 배제해야 한다, 철저하게. 그러니 그 칼날이, 순자 씨의 칼날이 내 옆구리를 지나가기도 하는 거다. 그래서 시가 되고, 그래서 그에겐 마종기적인 어떤 요소도 보인다. 지금도 기억커니와 '개구리는 그냥 죽고 싶었겠지'하는 그 구절이 울린다.


3. 그의 성찰
그에겐 자신의 일을 통한 자아성찰이 있다. 물론 성찰이 있어야 일도 되고, 또 시도 되는 것이지만, 그 게 어디 그 뿐에서 그치랴.

'…… 멀리 달아났던 눈빛 몇 개가 문가로 달려와 재빨리 나를 읽어내려 가고, 철커덕. 나는 병동 밖에 갇힌다. 잘난 당신의 나라에도 겨울이 있냐고, 하얀 알약같이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부분「제3의 병동」)

그러니까, 그의 치유는, 아니 그의 삶은 일이 주는 극단적 허무까지 껴안는다. '철커덕. 나는 병동 밖에 갇힌다'지 않는가. 그리고 바깥에서 내가 보는 눈이 '알약같이 내린다'지 않는가. 안팍을 같은 무게로 느끼는 것이 바로 그다.
자아성찰의 진숴를 보여주는 시 중의 하나로 「환한 살생殺生」이 있다.
그가 일을 통해 타인의 삶을 본다는 것은, 그 일은 결국 자신 자체에 대한 엄정한 성찰을 불러왔다.

언제 들어섰는지 무허가 건물들, 철지난 유행가 소리.
벽마다 걸려 있는 생생한 내 흑백 사진들.
그 동안, 나 분명 여기 살긴 살았었나
내 그림자들 붕어빵 같은 음계를 들고
쥐새끼같이 숨는다.
한동안 그 집은 나를 여기저기 수리했다.
―전문「내 집에 돌아와 보니」

그것은 거꾸로, 상황이 나를, 나의 여기저기를 수리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그게 내 집인데도 말이다. 그것은 과거를 불러오고 있고, 그리고 과거마저 적나라하게 하는 스스로의 되돌아봄이 그의 방식이다.


4. 성찰 속에서 보이는 타인의 모습, 혹은 그에 대한 애정

그의 사람에 대한 애정은 별나다. 그도 그럴 것이, 별나야 그의 일을 할 수가 있다. 또 그것은 그만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 애정이 별나거나 지나칠 때는 화자와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여 실패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영은이, 양이, 인순이, 고 하사 등이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인데, 이 시들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시적 대상으로 하여 쓴 시를 넘어서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여기서도 예외가 존재하는데, 군계일학! 다음 작품을 보면 그 거리조절이 성공한 예와 더불어 시 한 편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두번째 시집을 읽을 때, 나는 이 시를 보고 좀 눈물이 났었다.

창백한 얼굴, 힘없는 말씨,
화도 낼 줄 모르고
푸줏간 냉장고 앞 항상 그 자리,
천상 여자다.
언제나 보아도 그림자가 없다
곁눈질로 그 그림자를 찾아보면
주방 옆에 처박혀 있기도 하고,
운동 갔다가 돌아와 낮잠에 빠진
남편의 운동화 속에 들어 있기도 하고,
몇 번이나 사업 실패하고도 돈 아까운 줄도 모르는
아들놈 호주머니에 들어 있기도 하고
산책이라도 하라면, 시무룩 그냥 웃는다
어느 날 난데없는 소문
-그 아줌마 신드렸다디뎌
수다스런 말씨로 누가 인사를 한다,
짙은 매니큐어 요란한 옷차림
그림자를 기다랗게 앞세우고
그녀가 반푼이처럼 웃는다.
마침내 k식육식당 간판이 내려진다.
전에 못 웃었던 것을 다 웃기라도 하듯
헤프게 히죽댄다.
―전문「k식육식당 아줌마」

이렇게 안타깝고 이렇게 슬픈 사연이, 차라리 화자가 덤덤하여 진정성 있게 울리고 있다. 나를 울리는 부분은 '전에 못 웃었던 것을 다 웃기라도 하듯/헤프게 히죽댄다'는 부분이다. 왜냐! 인간의 감정 총량은 동일하다. 못 웃고 슬펐던 세월을 자신도 모르게(모를지언정) 풀어야 하는 세월이 (그만치의 양으로) 있는 까닭이다. 그러니 슬프다 해서는 시가 안 된다. 여기에 이 시의 미덕이 있다. 아마 그녀의 요란한 옷차림도 그녀가 평소 입어보지 못한 반대급부에 대한, 자신도 모르는 진행일 터이다. 그러나 왜 아니 슬프랴. 참으로 절창이 아닐 수 없다.
평을 쓰는 나는 기분이 좋다. 누가 시켜서 쓰는 평도 아니지만 이런 시인을 친구로 두어서. 등치는 남산만한 사람이 착해빠져서, (항시 인간은 한 군데가 빈다. 특히 착한 인간은) 그는 말없이 술집으로 간다.


4. 성찰에 이르는 한 방식(1)

그가 자신, 본연적인 자아에게 가는 방식의 하나로, 아니 본능적인 방식의 하나로 가진 무기로 <소리>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 있다. 그것은 시집 도처에 널려 있다.

'한잠을 깨고 나니 바람소리 풍부하다'(「바람風 소리」)에서처럼 자고 깨고서도 풍부하게 소리를 듣는 사람이 바로 그다.

창문 앞에 미루나무 한 그루
참 희한한 놈이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와도
참 잘도 구부린다.
아주 바람이 강한 날이면, 아예
제 심지心志 빼어놓고 엎드린다.
그런데 바로 그놈이
창문 너머 어둠 속에서
혼자 흐느낀다.
그래, 오늘은 너도
기어이 술이 필요했구나.
꼿꼿이 서보기 위해
오늘은
―전문「미루나무」

보이는 것 속에서도 '창문 너머 어둠 속에서/혼자 흐느낀다'고 그 울음을 듣는 것이 그다. 아마 나라면 객관적인 묘사로 집요하게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 희안한 놈이'라는 감탄 속에는 자신이 닮고 심다는 염원도 있겠지마는 문제는 그러지 못하는 자신, '심지'까지 빼어놓고는 엎드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과 함께 자존도 묻어있다.

'…… 한번 깬 귀는 닫혔다 열렸다, 엘리베이터에 고단함을 주워들고, 다음은 교회의 차임벨 소리, 그 다음은 계단을 연신 오르내리는 발자국 소리, 수없이 깨어 있는 저 잠들, 게으른 사내가 기지개를 켜며 안방을 나온다. 문 앞으로 다가가 배달된 아침을 주워들고 화장실로 사라'지는(「아침이 오기까지는」부분)그가 사라지기 전에 생래적으로 체득된 것이 소리다. '진료실에는 의사는 없고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어떤 우울감의 정체」부분)는 것을 그는 듣고, 또 알고 있는 것이다.


5. 성찰에 이르는 또 한 방식(2)

성찰에 이르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그에겐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와 과거의 교직이 있다. (유식한 말로는 씨줄 날줄의 결합이라 하더만 평도 솔직한 느낌이 진짜라는 생각이 있다.)
「장명초등학교 운동장에서」에서는 자녀와의 대화가 과거와 현재를 불러오면서 진행되고 있고, 시「그림자」에서는 1979 그림자(자신이 분명한)와 950803(자식일지 모르는)과의 대화가 있다. 그러나 그의 분명한 과거와의 교통방식은 아래 시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나는 또 수명이 다 된 건전지
헝클어지고 팽팽한 신경줄을
시골집 아랫목에 눕힌다.
한 발이나 늘어졌다 다시 감기고
어느 가닥인지 잡고 서니
작은 아이 하나
뒷동산을 달리고 있다
소 우는 소리, 낯익은 목소리
정신 좀 드니
이젠 입력만이 남았다
등이 휜 아버지의 이야기
어머니의 젖은 꿈들
빨리 돈 벌어 가까이 오라는 할머니의 간곡한 당부
올해는 꼭 집 고쳐드릴게요
오랜만에 툇마루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
막막하고 캄캄하기만 하더니
다시 반짝이는 나의 별들
이제 몇 달은 거뜬할 것 같다
―전문「충전充電」

거두절미. 충전될 만한 곳에 가서, 과거를 끌고 와서(정확히는 과거에 가서) 현재적인 힘을 얻는다. 그것이 그가 현재와 결합을 하는 그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대가족, 아마 이 것은 그에게 질곡이 아니라 힘(인 것 같다)이다. 전대의 아픔과 희망이 결국은 자신의 아픔이자 희망으로 삼는 착한 그인 것이다. 거기다 그는 솔직하게 그것을 <충전>이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솔직'이라는 것이 그의 시를 구성하는 근간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쉽다는 것도 말해져야 한다. 치료자가 중언부언하는 것은 되지도 않을 터. 그것을 떠나서도 쉽다는 것과 솔직하다는 것은 시에서 커다란 미덕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 현대시뿐 아니라, 어떤 현대시인이 독자와의 교통을 꿈꾸던가. 배접했던 배경숙 시인의 시 '구름의 무덤'이 이해가 안 간다던 독자 앞에 나는 황당했다. 어찌 그를 그냥 시에 무지한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 최소한 나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을


6. 현재를 담담히 보는 성찰의 눈

상가 마당 끝에 세워놓은 트럭 위, 죽음을 치르기 위해 준비되어진 또 하나의 죽음. 그 아이러니를 벗어 버리려 돈공은 밤새 버둥거리지만, 한껏 가늘어진 외줄기 울음이 속수무책 여름 빗줄기에 젖는다.
그가 토해 내는 붉디 붉은 노을 곁으로, 하나 둘 모여드는 사람들. 사람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튀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 빙 둘러서고, 팽팽해진 허공을 가르며 금속성의 번쩍임, 오히려 확 살아나는 불길, 잘 포장된 살의가 또 한번 달려가지만 또 뒤채는 불꽃, 은근히 도망가고 싶은 기용이, 피 묻은 칼을 마지막처럼 든다.
길길이 날뛰던 몸부림에서, 이 고요까지 우리는 어디를 죽음이라 하는가?
죽음을 씹는 메스꺼움에 술잔이 오가고, 여든 여섯이면 호상이여. 두 죽음에 하나도 다치지 않은 산 자의 시간들. 조각조각 염이 되어 추녀 끝에 걸리는 돈공. 그의 무덤들이 낄낄대며 흰 이를 드러낸다.
―전문「조의돈공弔意豚公」

마지막 그 가파른 길, 새벽녘 찬비에 뚝 떨어졌다는 소식. 허둥지둥 천둥치던 그 자리, 꼭 쥐고 있던 파란 하늘도 힘없이 무너지고, 꾸역꾸역 구름떼만 몰려든다. 반딧불 같은 기억들이 하나둘, 상복 입고 엎드리고, 아직 남은 어리광은 내 눈에 물기를 실어 온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축축한 시선을 가르며 살구가 떨어진다. 내일은 이 놈 오려나…… 가쁜 숨을 고르며 주우시던 노란 살구. 이제 비 오듯 떨어진다. 당신의 얼굴이 자꾸 떨어진다.
―전문「당신이 지다」

위에 두 시는 그의 현재적인 어떤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죽음을 위해 또 가해지는 또 한 죽음에 대한 조용한 성찰이 있고, 또 돌아가신 조부모(여기서는 확실히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살구를 줍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로 여겨진다)의 죽음이 살구의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좀 드문 예로다. 왜냐하면 전언이나 진술이 아닌, 이미지로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드물게 이 시에, 그것도 수일하게 드러나 있다. 게다가 그의 착한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감정이입이 적절할 때 대부분에 있어서 그의 시는 수일하게 형상화가 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상가집 간 내내 그는 죽음을 대신한 죽음을 먹고 있었으리라. 조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의 머리 속에는 떨어지는 살구가 꽉 채웠으리라.


7. 그의 길과 극복해야 할 무엇

과거와 현재의 길항을 통한 자아 성찰이 그에게 있다면 미래에 대한 그의 성찰이 유토피아로써의 공간 「이어도」에 나타나 있다. 균제미로서는 좀 이 부분이 부족한 듯하다. 하지만 시가 뭐 다 써야 되는 것도 아니고 꼭 있어야 되는 부분도 아니다. 다만 시기적으로 구분해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니, 한 번 주의해 볼 필요는 있겠다.
그의 시가 실패하는 경우는 「M환자에게」나타나는 바와 같이 교훈적인 어조와 내용이 조금 문제시 된다. 또한 어떤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 관념적인 진술이 그가 가진 장점을 흐리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생각을 쓰면 실패한다고 보면 된다. 「인턴의 응급실 당직」「술을 마신다는 것은」「어떤 인사법」「부부」가 그랬다. 옥의 티 같았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시가 가진 장점을 크게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삼겹살이 맛있는 이유는 아마도 살 사이사이 박힌 기름띠 때문일 거라고. 이렇듯 시에도 산문적인 요소는 분명 있을 것이나, 과다한 기름띠는 제거되어야 한다고.
어쨌든 최근에 발간된 '리토피아 시인선'의 수준을 높이는 근자의 수작이 아닌가 싶다. 사심없는 나의 생각이다. 축하하는 바이다. 다음 평은 하두자 시인의 「물의 집에 들다」인데,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최대한 시간을 당겨 보겠다.

추천3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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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윤관영 시인, 또 큰 작업 하나 하셨군요. 잘 읽었습니다.<br />
김승기 시인, 가는 해의 마지막에 큰 선물 하나 받으시는군요.<br />
자신이 쓴 시의 평을 (좋든 싫든) 누군가로부터 듣는 즐거움도 내게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더군요.<br />
두 분 시인의 건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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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님의 댓글

김영섭 작성일

  윤시인님! 역시 대단 하십니다. <br />
늘 분위기를 살리는 그 쾌청함 뒤에 숨겨진 열정이 부럽습니다.<br />
남 시인님 한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그냥 그립습니다.<br />
김승기 시인님도 잘 계시지요? 올해 좋은 글 많이 쓰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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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김영섭 시인님, 저도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늘 뵙고 싶습니다.<br />
언제 한 번 뵙기를 기대합니다.<br />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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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영섭이 형님아께서 시인님이라니, 차라리 면구스럽군요. 뭐라까, 평이라고 써서 면구스런 짐승이여! 뭐, 그런. <br />
-형님의 건강과 더불어 그런 와중에도 감당하셔야 되는, 가족의 건강도 빌어봅니다. 새해 건필도 빌구요, 또한 문운 충만하시길 소원합니다.<br />
-가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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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

  제 시집에 대한 얘기라 면구 스럽고, 감사 할 따름입니다. 두 번 참석 했을 뿐인데, 모두 참 친절하시고 푸근하시고 정이 많으신 분들만 계신 곳이 리토피아 인 것 같습니다. 김영섭 시인님, 윤시인님, 남 시인님........  그립다는 말이 절로 떠 오릅니다. 지금 딱 12시(오늘도 자가 치료하고 오는 중입니다), 1/1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새해엔 모두 건강하시고, 두루 만복이 충만하시길...... <br />
(옮겨습니다 비번 1111)<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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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쓰다보면, 쓰는 탄력에 의해 쓰다가도, 일단 쓰고나면 지쳐서 - 왜 행군하고 끝나면 주저앉아 일어나기 싫듯이 - 교정을 안 보았는데, 오늘에서야 일단의 교정을 보았습니다. 좋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뭐랄까, 쓰는 힘듦의 십분의 일의 공력만 들이시면 됩니다. 승기 씨는 이 글로 바꾸어 긁어 가시기 바랍니다. <br />
-마음적으로 내 평에 리플 안 다는 사람들은 평 써주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앞섭니다만, 글쓰는 사람의 독특한 마인드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회원 여러분, 그대들을 사랑합니다. 누군가가 그러대요. 윤관영 씨 별 소득 없는 일에 열심이라고요. 사실 저는 소득없고 눈에 보이지 않기에 기꺼워서 하는 일입니다. 시키면, 살수는, 절대 안 합니다.<br />
-하두자 씨 시평은 완성되었습니다. (지금 교정 중). 쟝 주갼님의 말씀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목 받으려고 쓰는 글은 아니었는데 / 주목 받고 있다니(아마 그만 두어야 할 듯)---- 소설가 임영태 형은 제 글의 특징이 사화집 '밥통의 계보를 묻다'에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재미있게만 쓰라고요. <br />
<br />
-새해에는 우리 리토피아 문학회원 여러분들에게 문운이 빵빵한 한 해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살수가 빕니다.(아멘)(에이멘)<br />
-가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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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이렇게 정성껏 읽고 평을 써 주는 사림이 있어서!<br />
무심히 읽었던 시들을 다시 읽게 되고...<br />
보기 좋습니다!<br />
김승기 시인님, 윤관영 시인님. 그리고 리토피아문학회 회원님들께 문운이 가득하시길<br />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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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함부로 평을 올릴 수가 없어서 몇번을 읽어보다가 글을 올립니다<br />
<br />
스스로 치유되는 그 연못에 나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br />
<br />
난 항상 그에게 말하죠<br />
당신이 무엇을 하든<br />
당신이 무엇이 되든<br />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래<br />
<br />
그럼 세상이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겠지요<br />
<br />
우리가 만든 감옥들을  지우면<br />
<br />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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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유시인 글(스스로 칭한)이 글이 아니라 詩네, 뭐. 詩. 유 시인은(아니, 화자는) 착해서 이렇게 말하죠. '당신이 무엇을 하든/당신이 무엇이 되든/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래'라고. 지금 막, 송기원 소설 '아름다운 얼굴'을 읽었는데, 그 느낌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군요.<br />
-좋은 글이네요.<br />
<br />
-쟝기집권 춍무님, 노고와 수고에 감사드리고, 올게도 수고해주세요. 지가 할 일 있으면 도와드리져.<br />
-가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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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님의 댓글

안명옥 작성일

  윤시인의 평한 글 정말 잘 읽었어요 남의 시를 이렇게 꼼꼼하게 읽고 평해줄 수 있다니....... 부럽군요 그냥 시집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제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아니 다르게 읽은 부분까지 다시 읽게 해주는 그런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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