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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
식구들이 없는 한 낮
오늘은 먹구름에 가려 햇빛도 실직이다
창문너머 늪으로 떠있는 담배연기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자라는
불안의 잡초를 뽑아내며
그가 화초를 들이고 살았던
지난 일년,
다용도실 버려진 공구들을 지나
유리창 밖 아침 출근을 기다리는 정류장 풍경에
시선이 오래 머물 때
홀로 켜둔 TV가
저 혼자 울다가 웃다가 한다
하루하루 화초를 가꾸며
잠시 내려 논 마음의 화분 안
그가 가보고 싶었던 몇 발자국 자유가
잎사귀 속에 길을 내고 있었다
(시들어 가는 푸른 잎사귀를 마주할 때
날이 시퍼런 몸의 세포들)
누구의 잘못이 아닌데.......
자고 나면 사라지는 회사들
자꾸 커 가는 아이들의 눈빛이
블라인드에 걸려 흔들거리고
시계소리도 무겁게 들리는 웅크린 등
힘겹게 돌아가는 임대형 아파트 공장의 기계소리
뿌연 먼지 뒤집어쓴 담벼락아래
누렇게 도르르 말린 잎새 끝
새순이 다시 돋아나는 것을 살펴가며
그는 잘 가꾼 화초를 뽑아내고 있었다
2003년 문학마을 겨울호 발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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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실직한 가장의 아픔과 쓸쓸함과 불안감을 드러낸 작품이군요.<br />
'오늘은 먹구름에 가려 햇빛마저 실직'인 날의 불안한 무료감과, 마침내 '잘 가꾼 화초마저 뽑아내'는 희망을 포기하는 듯한 실직가장의 삶의 모습이 자연스런 일상사가 되어가는 현실이 가슴이 아픕니다.<br />
새해에는 햇살 환히 비추는 날들이 돌아왔으면.....<br />
시 잘 읽었습니다.

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실질적인 가장이라, 눈코 뜰 사이없이 바쁜 사람이, (그러니까, 여기서 화자는 대리인이면서 아닌 것이고) 이런 좋은 시를. 그러니까 여기서 '창'은 소통불능이네? 내겐 그의 시선의 끝이 끝내 가는 '잎사귀 속에 길을 내고 있었다'가 좋고, 또 생의 불안은 양육의 불안이니까, '아이들의 눈빛이/블라인드에 걸려 흔들리고'가 좋게 와닿네요. 또 '잘 가꾼 화초를 뽑아내고 있었다'는 결국 자신에 대한 얘기 같고요. 좋은 시 잘 봤어요, 안 시인. (시를 한 곳으로 모아야 리플 달기도 편하고 좋답니다. 펼쳐 놓으면 읽는 회원들이 어떤 시에 참여해야할지, 좀 어렵거든요.) 건필과 더불어 미모의 유지 발전 빕니다.<br />
-가뇽

안명옥님의 댓글
안명옥 작성일시화집에 환월이 만월로 들어가 속이 상하네요 하지만 뭐 한자는 그대로 맞으니 제게 미모라니요 어울리지 않지만 듣기좋네요 일에 중독되어 삽니다 고양시 편집위원하나 맡게되어 더 바쁘지만 즐겁네요 일이 .........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시도 열심히 써야죠

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혼자 울다가 웃다가 하는 TV 라는 표현이 좋네<br />
<br />
25살부터 지금까지 많이 아프면서도 일을 계속했어<br />
그래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 같아<br />
<br />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에게 일해야 한다고 말하다가 휴식하는 존재인 인간을 모독했다는 이유로<br />
처형을 당했다지 전부 오답만 쓰고 있는 우리 시대에 몇사람만이라도 정답을 쓰면 좋겠어<br />
<br />
그래서 우리가 시의 길을 가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