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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겨울바람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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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식
댓글 7건 조회 2,243회 작성일 04-01-06 16:47

본문

木枯しの果てはありけり海の音

(こがらしのはてはありけりうみのおと)

(Kogarashino Hatewa arikeri Umino oto)

言水(ごんすいGonsui 1650~1722)

고가라시(木枯し):  나무를 마르게 한다는 바람의 의미로 늦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부는 강한 바람을 말한다..

[번역] 겨울바람의 끝은 있네 바다의 소리

[감상]

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마치고 배치받은 부대로 이동하였습니다. 트럭을 타고 한참을 가고 가니 점점 인적은 드물어지고, 논과 밭도 안 보이고  주위가 온통 산과 들만이 보이는 곳까지 왔습니다. 트럭을 내렸습니다. 어느 산 위에 막사가 있습니다. 조립식으로 만들어진 철제의 건물입니다. 대대본부라고 합니다. 최전방이라 이런 식의 가건물에서 지내나 봅니다. 그곳의 한 고참병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우리들이 차에서 내려 일렬로 정렬하자, 그가 양손을 허리에 대고 거들먹거리며 말합니다.
"오느랴 고생 많았다. 자, 저쪽을 쳐다봐라."  
고개를 돌리니 이곳의 철책을 너머 저 북쪽으로 작은 산과 들이 보입니다.  
"바로 저 쪽이 북한이다. 그리고 북한과 우리와의 한 가운데가 군사분계선인데, 그 군사 분계선 밑의 작은 고지 위에 철책으로 둘러싼 곳이 보이지? 태극기와 유엔기가 펄럭이는 곳 보이나?"  
"예-, 보입니다.-"  
"음, 그곳이 쥐피(GP, Geographic Post)라는 곳이다. 니들은 저 안에 들어가서 근무하기 위해 특별히 선발된 요원들이다. 아주 살벌한 곳이다……."  
고참병은 우리 신병들의 겁먹은 표정을 살피며 웃고 있습니다.  
  GP를 쳐다보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들판의 한 가운데 작게 솟아 오른 고지 위에 철책으로 동그랗게 둘러싼 곳이  보입니다.  그 안에 높이 세워진 탑에 태극기와 유엔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아무도, 아무도 없는 들판에 오로지 바람만이 세차게 불어대고 있습니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내게로 닿는 듯합니다. 바람을 맞는 가슴에 으스스한 두려움이 일어 납니다.  
  그 때의 그 겨울바람만큼 내 기억에 남는 바람은 없습니다. 기억의 각인이 단순히 신병이 가진 두려움에서라면 그건 불과 한 달만에 지워졌을 것입니다. 그것은, 거칠고 서늘한 것이 주는 아름다움(荒凉美) 때문입니다.

겨울에 부는 바람은 나무와 풀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것들을 바짝 마르게 합니다. 그 바람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바람을 따라가 봅니다. 그 바람은 휘잉 소리를 내며 저 멀리로 갑니다. 바람은 강과 산을 지나 바다에 이릅니다. 바람은 바다에 이르러 사라지는 듯합니다. 그런데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오는 것이 보입니다. 바람이 바다에 스며들어 파도소리로 다시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파도의 움직임과 더불어 바다가 휘잉 소리를 냅니다. 겨울바람은 인간과 동물, 나무와 풀을 바짝 말려 버리고 바다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차갑고 처절한 절규를 합니다. 가학의 끝에 터지는 소리인가요. 울음인가요. 겨울바람은 바다에 이르러 클라이맥스의 순간을 맞게 됩니다. 바람의 끝은 바다의 소리입니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모래사장, 오로지 바람만이 바다를 가로질러 불어 댑니다. 겨울바람을 바라보면 그 바람의 끝인 바다의 풍경과 소리가 떠오릅니다. ‘끝’은  바람을 보고 떠올리는 상념의 저편, 종착점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이 도시에 불어대는 겨울 바람의 끝은, 바다보다는 군대 시절의 비무장지대의 그 들판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보는 겨울바람의 끝은 황량한 들판의 소리입니다.

木枯しの果てはありけり野原の音
겨울바람의 끝은 있네 들의 소리

당신에게, 겨울바람의 끝은 어디인가요?
추천1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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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나를 보(기만하)면 끝내 참지 못하는 그녀의 웃음소리(쫌 시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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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논과 밭이 안 보이고 산과 들만 보이는 곳에(강원도)와 있습니다<br />
그런데 난 왜인지 이곳에서 해독이 되는 느낌이 듭니다<br />
맑은 시를 하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br />
<br />
겨울 바람의 끝은 있겠지요<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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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님의 댓글

안명옥 작성일

  겨울바람의 끝이라 참 좋은 글을 읽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겨울바람의 끝은 시였나요 시가 막 오고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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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거칠고 서늘한 것이 주는 아름다움(荒凉美)"이라는 말에 눈이 딱 멎네요. 그래요, 어떤 사물이든 상황이든 보는 사람에 따라서 그건 아름다움일 수도 있지요. 예쁘고 사랑스럽고 즐겁고 밝은 것만 어린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시절이 있었지요. 해서 동화작가인 권정생 선생님이 글을 쓰시지 못할 때가 있었지요. 이름있는 잡지에 글을 발표할 수 없던 시절에 선생님의 글쓰기를 계속하기 위해서 교회회보에 싣는다고 글을 써달래서 실은 적이 있었지요. 아주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시절이었지요.<br />
황량한 곳에서도 시적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영식씨의 눈길이 아름답습니다.<br />
내 겨울바람의 끝은 어디일까?  내게 있어 바다는 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니 내 겨울바람의 끝도 바다이지 싶네요.<br />
이 싯귀 이 겨울이 다가도록 빠작빠작 씹어서 새로운 겨울바람의 끝을 보게 되면 다시 얘기할께요.<br />
건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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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겨울바람의 끝은? 봄! <br />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은데 그런데 봄이 오는 것이 무섭네요. 세월이 너무 빨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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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겨울바람의 끝을 물으셨나요?<br />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생각나네요.<br />
'와더링 하이츠'의 황량한 바람 속을 히스크리프와 캐시가 걸어 가고<br />
눈 위에 찍히는 발자국은 한 사람의 자국만 찍히고...<br />
오, 황량한 겨울 바람 속에 사랑의 화신이여.<br />
<br />
내 겨울 바람의 끝은 바다에 닿을가, 들에 닿을가.<br />
너무 춥고 혼미해서 그 '끝'이 짚어지지 않네요.<br />
너무 추워서 감기 들었거든요, 고열이 나면 가끔 헛소리가 나와서 실은<br />
겨울바람이 싫은데, 겨울바람 잡고 살랍니다. 장시인과 동감이예요.<br />
<br />
'당신에게 겨울바람의 끝은 어딘가' 가볍지 않은 이 '화두'<br />
신년에 깊이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br />
김영식님, 좋은 글 고밥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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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님의 댓글

김영식 작성일

  아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바람 하나 생각나게 해주셨습니다. 가슴 떨리며 읽던 [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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