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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잣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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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식
댓글 7건 조회 3,334회 작성일 03-11-17 10:38

본문

 

<판잣집>


pung29.jpg
박수근

 

‘차라리 죽으러 망우리가요~’


이 말 알아? 동대문에 서 있는 버스의 안내양이 손님을 부르는 소리야. 청량리->중랑교->망우리에 간다는 말이야. 예전엔 한글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써 놓아도 매번 묻거든 노인네들은. 그 시절, 지치고 괴로운 사람들은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들려오는 안내양의 외침이 그런 말로 들렸을 거야. 시절의 어려운 삶을 상징하던 말이었지. 안내양이 없어지면서 이 말은 더 이상 귀에 들리지 않았어. 안내양들이 다 결혼해서 잘사는지, 망우리가서 누워있는지 모르지만.   


아저씨

차라리 죽으러 망우리가요

일하면 뭐해요. 월급도 밀린 공장

그나마 빌린 돈 쌀 사고, 어머니 약값 내면

얘들 육성회비는 어떻해요, 월세는 어떻하구요

기다리는 마누라 바가지가 무섭지 않아요?

집에는 뭐 하러 가요, 아저씨

차라리 죽으러 망우리가요


청량리에서 망우동 쪽으로 가다 보면 중랑천 위의 중랑교가 나오지. 그 중랑교에서 쭉 북쪽으로 뚝방(둑防)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판잣집들이 있었어. 집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고 한 가운데로 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이 어린 내게는 끝이 없어보였어. 아마 중랑천의 둑이 끊어진 데까지 이어졌겠지, 가 보지는 못했지만. 성 밖(4대문 밖)에는 이런 동네가 많았지. 동대문까지 버스로 20여 분밖에 안 걸리는 곳이라, 시내로 다니기엔 좋은 위치였어. 그 옛날의 서울은 마치 먹이에 달려든 사람 떼가 이곳저곳에 바글바글하던 곳과 같았어. 지금은 배가 부른지 다들 조용히 살지. 다 집에 처 박혀 사는 것 같아. 동네를 걸어 다니면 이젠 심심할 정도야. 서울이 좋다고 시골에서 올라 온 사람들이, 서울의 여기저기 달동네에 집들을 지었는데, 아마 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중랑천의 뚝방에 집을 지었던 것 같아. 나중에 들었는데,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그곳 사람들이 많이 옮겨왔다고도 하더군. 강가 사람들은 다시 강가로 이사 가나 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라는 시와 노래가 나올 정도니.


그런데 중랑천은 강이라고 할 수도 없어. 거대한 하수로 같았지. 물 색깔은 시커멓고, 흰 거품이 군데군데 부글부글 하고, 게다가 뚝방 사람들 변소에서 직방으로 흘러나온 똥이 둥둥 떠다녔지. 냄새가 기억에 남지 않아 다행이야. 제기동 미주 아파트 옆을 흐르는 하천이 고대에 가까워 고대생들이 아마 그 하천을 세느강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중랑천은 그런 이름이 붙기엔 전혀 귀엽지 않게 크고 시커먼 몸을 가졌어. 중랑천은 70년대 시청 하수과장의 큰 숙제였을 거야. TV에도 종종 나왔지. 수질오염의 대명사로. 나 어릴 적 보다 더 옛날에는 물이 맑아 미역도 감고 고기도 잡았다고 어른들이 말하던데,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 우린 버스 타고 망우리 고개를 넘어가 경기도의 왕숙천까지 가서 놀았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강에는 반짝이는 슻검댕빛

뒷문 밖에는 부부싸움소리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어느 해 홍수가 나자 중랑천에 온갖 동물과 물건이 떠내려 온다는 소문이 금세 우리 동네까지 퍼져와, 우리 동네 얘들은 신나게-불 구경, 물 구경은 신나는 일이지 정말-달려가 중랑천 뚝방에 이르렀지. 돼지가, 소가, 책상이, 별 게 다 떠내려 오더라. 간혹 사람도 떠내려 온다고 누가 그러더라. 뚝방 동네 어느 아저씨가 헤엄쳐 들어가 떠내려 오는 돼지를 잡고 유유히 헤엄쳐 돌아오는 거야. 해병대 출신이라던가. UDT출신이라던가. 그런데 어떤 청년이 자기도 해보겠다고 들어가더니 글쎄 돼지를 간신히 붙잡긴 했는데, 이쪽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자꾸 흘러내려 가는 거야. 그 사람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몰라. 따라갈 수는 없었거든. 한강까지 떠내려갔는지도 몰라. 정말 중랑천의 홍수 구경은 장관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그날 밤 비가 한 번 더 억수로 내리자 이번엔 그곳 뚝방 동네 사람들이 수재민이 되었어. 그곳 얘들은 학교에 안 오기도 하고, 지각하기도 하고. 그날 오후엔 학교에서 수재의연금도 거두었지. 그렇게 몇 번이나 홍수를 당해 집이 몇 번이나 허물어져도 그래도 그곳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 떠나지 않고 살고 있더라. 판자로 지으니 쉬이 허물어져도 금방 새로 짓나 봐. 그리고 혹 땅 속에 돈 항아리를 숨겨 놓았는지도 몰라. 아, 말하다 보니 지금 생각나는데, 방 장판 밑에 돈을 깔아 둔 어떤 사람은 그 돈을 볕에 말린다고 마당에 내놔서 알부자란 게 들통이 났데. 그리고 우리 동네 아줌마들이 수다 떠는 걸 엿들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 중에 의외로 알부자가 많다고 하더라. 어느 날 학교에서 친구가 선생님에게 맞았는데, 다음날 그 애 엄마가 달려와 선생님에게, '너 우리가 뚝방에 살고 있다고 깔보지 마, 판잣집에 살아도 너보다 돈 많아!'라고 바락바락 소리치기에, 음 정말 그 말이 맞구나 생각했어. 


돼지 잡으러 들어가면

떠내려 갈 걸 알면서도

말리는 걸 듣지 않아

홍수나면 집 떠내려가는 걸

몇 번 겪어도 이사 갈 생각도 안 해

여기까지 왔는데, 더 이상 어디 가

그래도 돈 벌라면 서울 살아야지

한 맺힌 돈 바닥에 깔고 뭉개

돈 위에 사람 있다


중랑교 외로 근처에 다리가 없던 때는, 건너 이문동 쪽 뚝방으로 가려면 돈 10원을 내고 뗏목 같은 배를 타고 갔었지. 그건 다리와 다리 사이가 멀기 때문에 생긴, 요즘 말로 ‘틈새사업’이라는 것의 원조가 아니겠어.


요즘 중랑천에는 자전거 도로도 생기고, 공원도 생기고, 낚시하는 사람들도 보이는데, 그 옛날 뚝방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서 살고 있을까. 철거반원과 싸우던 그곳 사람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해. 그들은 이제 그저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속에 남아있지. 소설의 제목도 작자도 잊었지만, ‘개서방’ 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나온 작품이 생각나. 왜 개서방인 줄 알아? 홀아비인데 술만 먹으면 암캐랑……흐흐흐. 고등학교 때는 조해일의 '왕십리'를 읽었는데 그 때 이미 사라진 뚝방 동네가 생각나니 더 재미있더라.  


이제 나도 술 맛을 아는 어른이 되니, 중랑교에서 뚝방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에 좍 늘어서 있던 포장마차가 그리워져. 어릴 때 전혀 인상 깊지 않았던, 들어가 보고 싶지도 않았던 포장마차가, 어째 지금 내 안에서 생명을 새로 얻고 있는지 몰라. 아무리 냄새나고 시끄러운 중랑천 뚝방이지만, 거기서 술 한 잔 먹는 게 내 분위기야. 홀로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며 내 고민하다가 어느새 나는 음흉하게도  주위 사람들 허튼 소리, 한탄소리를 엿듣기 시작하고, 싸움이 나면 구경하다가 슬쩍 끼어들어 말리기도 하면서, 나도 뚝방 동네의 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지........ 마지막으로 노래 한 곡 부르지. 듣고 싶으면 여기 클릭 해.


왕십리 밤거리에

구슬프게 비가 내리면

눈물을 삼키려 술을 마신다

옛사랑을 마신다

정 주던 사람은 모두 떠나고

서울하늘 아래 나 홀로

아- 깊어가는 가을밤만이

왕십리를 달래주네


(59년 왕십리

김흥국 노래/이혜민 작사,곡)  


20031115

 

196458_2.jpg
Kuwabara S, 1965 청계천 판잣집

 

추천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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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정말 눈물나게 좋은 산문이구먼. 당시 판잣집은 '하꼬방'이라고도 했는데, 나도 그 일원이었수. 구공탄 불을 밀어넣던 두꺼비집이란 물건도 삼삼하고, 또 화덕이 젖지않게 철판으로 된 화덕 보호용구도 생각나네. 아, 그리고 루칭이란 물건, 불에 잘 타던--- <br />
-연탄가스 한 번 마셔보지 않고는 언급할 수 없는, 소리지르고 움직여도 몸이 말을 안 듣는 어떤 절망을 체험해야 이 글의 진정성을 알지도 모르겠네요. <br />
-뜻도 모르고 나도 그러긴 했수. 차라리 죽으러가! <br />
-좋네. 좋아. <br />
-가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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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님의 댓글

장종권 작성일

  ........................................................... <br />
<br />
할 말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2003/11/16    <br />
<br />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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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맞아요.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서울 사람들도 추억이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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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산님의 댓글

김영산 작성일

  조해일의 '성벽'이란 소설이었죠. '개서방...' 나오던거. '왕십리'란 소설도 생각나네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 주먹 얘기? 요즘도 그런 순애보가 있을런지? 노래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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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글 잘 읽었습니다. 구구한 말 필요없이 그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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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서울에도 이런 추억이 있군요<br />
그곳을 지날때마다 이 이야기가 떠 오를 것 같은데요<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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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님의 댓글

김영식 작성일

  그러고 보니 두 소설 다 한 작품집에 실린 것 같군요. 삼중당 문고에. 그 시절엔 무공이 뛰어난 사람도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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