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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길 위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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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競走路
수만 마리 토끼들이 앞만 보고 달린다
뒤를 돌아보면 저승사자에게 덜미를 잡힐 듯
모두 모두 쏜살같이 달린다
추적추적 가을비에 젖고 있는 고속도로
나는 갓길 위의 잠을 보았다
녹이 슨 고철 더미 등짐이 무거운
푸른 수의를 입은 트럭의 고단한 잠
빗나간 총알처럼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날렵한 기세에
밀려서 움츠러든 몸은
노역으로 구멍 난 천막 덮개만
들숨 날숨 숨을 쉰다
거북이가 도태 된지 이미 오래인
이 시대의 고속도로에서
내 망막으로부터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저 갓길 위의 잠
그것은 아득한 우화 속 토끼의 잠이 아니다
꿈길에서조차 거북이를 만날 수 없는
내 우화 속에는
이제 토끼의 낮잠은 없다
댓글목록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우화 속 토끼의 낮잠이 그리운 날들입니다.<br />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저승사자에게 쫓기듯 달려가는지...<br />
자본에 덜미를 잡힌 삶의 모습이 쾅쾅 가슴을 때리는군요.<br />
오랫만입니다. 시 좋습니다.<br />
건필을 빕니다.

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남 시인님, 건강하시죠?<br />
제 졸시에서 남 시인님과 함께 공감대에 선듯하여 매우 기쁘군요<br />
좀더 따듯한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를 하겠습니다

유정임님의 댓글
유정임 작성일무언가 본다는것, 그냥 보는것만이 아니라 쓰고 싶게 한다는것, 그건 곧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이지 싶습니다. 그 살벌한 고속도로에서 <갓길위에 잠을 보신 허 시인님과 기쁨을 함께합니다. 더 많은글 기대합니다.

장성혜님의 댓글
장성혜 작성일
거북이가 사라진 시대.<br />
토끼의 잠은 앞서가는 자의 여유가 아니라 고단하고 위태로운 잠일 뿐이겠지요.<br />
멈춰 선 무거운 짐을 진 푸른 수의의 트럭이 눈 앞을 스쳐갑니다.<br />
시 좋습니다. <br />
송년회 때 뵈요.<br />

윤관영님의 댓글
윤관영 작성일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것을 포착하는 허 시인의 좋은 시, 저도 따라 좋습니다. 거두절미, 평을 사절합니다. 너무 좋습니다. 송년회 때, 저하고 포옹 한 번 해요. <br />
-가뇽

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그 속도 속에서도 죽음은 어김 없이 사람들을 데려가는것이 참 이상하지요<br />
......<br />
공사장을 지날때마다 생각해요<br />
저기에 진짜 남자들이 있구나<br />
저기에 진짜 아버지들이 있구나 <br />
<br />
시인의 눈은 갓길 위의 잠에서도 시를 찾아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