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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겸시집 “비밀정원” 서평>// 이정화(시로 여는 세상 200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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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화
댓글 0건 조회 3,825회 작성일 08-07-07 22:30

본문

<김백겸시집 “비밀정원” 서평>// 이정화
- 시로 여는 세상 2008년 여름호

침묵의 바다를 순항하는 일등항해사


1.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한다

언어는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는 명제 앞에서 침묵은 소통하고자 하는 대상과의 거리두기이다. 거리두기는 결별 혹은 거부 등의 행위로 나타나기도 하며 침묵하는 주체는 침묵함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고 침묵너머 새로운 소통의 출구를 찾아 침묵으로 부터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침묵은 주체를 대신하는 또 하나의 언어이자 주체와 타자들을 연결하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우리의 능력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가치나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문제들에 대하여 침묵함으로서 더 이상의 사유와 논란을 멈추고 문제발생의 여지마저 종식시켜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반 철학의 논리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일상의 삶과 수시로 충돌하는 주체의 욕구가 어떻게 해서 침묵해야, 침묵했어야만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말할 수 있는 것과 말 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오랫동안 침묵을 경험해 본 사람은 침묵이 그 어떤 말보다도 소란스럽고 공격적인 말로 <지식과 경험의 울타리에서 문지기로 사는 늙은 역사>(비밀정원)나 <심장을 괴롭히던 괴물>(괴물들)같이 <검은흙에 떨어진 다른 세상의 시간에서/다시 꿈을 꾸>(감나무)고 있는 주체를 나와 나아닌 것으로 분리시키기도 하고, <내 꿈이 입김을 불어넣어서라도 살리고 싶은/영원한 시간의 욕망>(마야)속으로 되돌려 놓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백겸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비밀정원”에는 곳곳에 침묵이 도사리고 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자본의 바다를 출입 관리하는 계좌번호와 주민번호 연봉과 성과급>(황금도시)이 김백겸시인인지 <유니콘처럼 몸이 빛나는 말 한 마리>(천산산맥)가 김백겸시인인지 나는 때때로 헛갈렸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대로 삶을 선택하고 삶을 운용하며 우리가 바라는 것을 당당히 삶에게 요구하며 살고 있는가?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명령하는 대로 삶에게 끌려 다니며 오히려 사육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폭풍이 그친 하늘에 구름선단이 용의 비늘로 떠있는/오색무지개 바다>(새장)를 향해서 노련하게 키를 잡고 있는 일등항해사는 지금 침묵의 바다를 순항 중이다.    


밤이 나에게 눈을 빌려주었다
밤은 눈이었으므로
밤의 숲으로 난 길로 멧돼지들이 바람처럼 다니는 길을
밤의 몸으로 흐르는 핏줄기처럼 보았다
밤이 스며든 수리부엉이의 날개와 늑대들의 발톱이
엑스레이사진처럼 투명하게 보였다
밤이 나에게 붕새의 눈을 빌려 주었다
내가 용의 비늘 같은 날개를 펴고 한 밤의 숲을 날아가자
숲에서 기는 모든 벌레와 짐승들의 영혼이 흔들렸다
그들에게는 순간이 백년이었으리라
그들의 배고픔과 짝짓기를 위한 미로들이 거울처럼 드러나고
시간의 칼에서 베어지는 운명을 공포가 읽어냈으므로
숲에서 기는 모든 벌레와 짐승들의 심장이 귀가 되었다
붕새의 눈앞에서 그들의 눈은 장님 이었다
밤이 나에게 붕새의 날개를 빌려주었고
힘은 시간의 파도위에서 사이렌의 노래처럼 영원을 유혹했다
숲을 폐허로 만들 수 있는 권력이 나에게 있었고
밤은 벌레와 짐승들의 몸을 어둠으로 채워 박제하라고 속삭였다
별들이 모두 괴물처럼 눈을 부릅뜬 그 날
밤이 나에게 선물한 힘의 키스를 잊지 못하리라
밤의 몸은 나를 사랑한 여신의 치마 아래처럼 캄캄했으나
내 영혼은 페니스처럼 발기해서
붕새의 눈처럼 밝아졌으므로

밤이 나에게 침묵의 소리를 듣게 했다
그 소리들은 바위로 굳어 산 계곡에 있거나 별이 되어 날아갔다
그 소리들은 가문비나무숲이었으며 흐르는 강물이었다
밤이 나에게 침묵의 소리를 들려주면서
세상이 태초의 말씀으로부터 빅뱅처럼 깨어났음을 상기시켰다
소리로부터 나온 시간이 태양과 달을 움직였고
구름 같은 힘이 어두운 하늘에 가득했으나
빛의 사랑을 얻지 못한 힘들은 심해의 바다에서 잠을 잤다
밤이 내 귀를 길게 잡아당겨 침묵의 소리를 듣게 했다
깊은 꿈에 갇힌 소리들은 오래된 사원의 기둥으로 서 있거나
봉인한 용의 몸 같은 산맥으로 누워있었다
시간이 늙으면서 소리는 무덤 같은 휴식으로 돌아갔다
시체로 누운 침묵을 파리가 날아와 구더기왕국을 만들었고
세균들이 번식하면서 썩는 냄새가 밤의 배꼽에서 진동했다
심원한 생각에 잠겨 밤과의 산책을 벌판으로 나갔는데
침묵이 빛이 물든 소리로 깨어나는 새벽이 왔다
귀 안으로 무지개처럼 살아난 하늘과 땅의 소리들이 흘러들었고
밀회가 끝난 여신처럼 밤은 지혜로운 미소를 짓고 물러났다
내 배고픈 정신이 비로소 깨달았다
현실(現實)이란 고치를 뚫고 나온 커다란 나비침묵임을
내 몸은 대낮에 핀 백일홍이었으나 곧 밤과 재회할 운명임을
                                        -나비침묵 전문-
밤은 어둡다 밤은 잠, 꿈, 피로, 휴식, 고요, 단절, 정적 등의 기표(Signifiant)이며 어두움 속에 공포, 두려움, 억압, 분노, 일탈 등의 욕동(Trieb)에너지를 가두고 있다 낮이 밥 먹고 운동하고 놀러 다니고 푼돈을 얻기 위해 사람들과 아귀다툼을 하면서 노동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실재의 세계라면 밤은 오롯이 본인의 마음먹기에 따라 <죽지 않는 아이>도 될 수 있고 <귀신>도 될 수 있고 <괴물>도 될 수 있고 <메두사의 뱀 머리칼>로 <기문둔갑>(이상 시집속의 시어들)도 할 수 있는 환상의 세계이다. 낮이 이성적 자아가 장악하고 있는 수, 과학의 디지털세계라면 밤은 감성적 주체가 혼곤한 몽상을 거느리고 밤 마실 을 나다니는 몽유도원의 아날로그세계이다.

붕새는 장자(莊子)의 <소요유편>에 나오는 북쪽 바다에 사는 상상의 물고기 “곤”이 변해서 된 새인데 등의 길이가 몇 천리요, 한 번에 구만리를 날아오르고 날개는 구름처럼 하늘을 덮고 파도가 3천 리에 이를 정도로 큰 바람을 일으키며 “곤”은 세속의 삶을 상징하고 “붕”은 영적인 깨달음을 얻은 상태를 말한다. 장자의 붕새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위대한 존재를 의미 한다.

위의 시 1연에서 시인은 밤으로부터 붕새의 눈과 날개를 빌렸다고 얘기 한다. 몽상과 몽유가 얼마든지 가능한 밤의 세계에서 스스로 붕새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시인은 굳이 빌렸다는 표현을 한다. 빌린 붕새의 눈으로 <밤의 숲길을 //밤의 몸으로 흐르는 핏줄기처럼 보//>기도 하고 <수리부엉이와 늑대들의 발톱>과 <숲에서 기는 모든 벌레와 짐승들의 영혼이 흔들>리는 것과 <그들의 배고픔과 짝짓기를 위한 미로들>을 본다. 빌린 붕새의 날개로 <힘은 시간의 파도위에서 사이렌의 노래처럼 영원을 유혹했>으며 <숲을 폐허로 만들 수 있는 권력이 나에게>주어졌으며, <별들이 모두 괴물처럼 눈을 부릅뜬 그 날/밤이 나에게 선물한 힘의 키스를 잊지 못하>고 <내 영혼은//붕새의 눈처럼 밝아졌>다고 얘기 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역동적 무의식‘으로 설명하면서 역동적 무의식은 의식성이 결여된 채 침묵하는 무행위가 아니라 끊임없이 의식에 충격을 가해 의식을 전복하거나 의식과 ’타협‘을 시도하는 어떤 ’살아 움직이는 실체‘라고 했다. 주지하다 시피 전통적 개념의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낮=의식=현존하는 삶, 밤=무의식=이상향의 삶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고 보면 숲은 바람과 태양의 힘으로 생명력을 이어가는 낮의 세계이고 낮의 세계는 일상적 삶의 현장이자 의식의 세계이다. 숲에서 기는 모든 벌레와 짐승들은 시인과 몸 부딪히며 살고 있는 가족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고, 사회 조직의 구성원일수도 있으며, 현실을 조정하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계층일수도 있다. 불특정 다수가 주체가 되는 현실의 거대조직 논리는 건강한 이성적 자아마저 번번이 뒷걸음질 치게 만들고 나의 생각과 나의 의지와 나의 소망을 <시간의 칼에서 베어지는 운명>에게 반납하라고 강요한다. <배고픔과 짝짓기를>위하여 공포에 떨고 있는, <심장이 귀가>되고 <장님>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생존과 번식의 욕망을 위하여 삶의 주체로서의 권리마저 포기해가며 일상의 삶을 영위해가는 결핍된 존재들이자 시인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 시인이 있는 시공간의 배경은 밤이다. <용의 비늘 같은 날개를 펴고 한 밤의 숲을 날아가>거나 <숲을 폐허로 만들>고 <벌레와 짐승들의 몸을 어둠으로 채워 박제하>라는 밤의 속삭임은 현실세계에서 결핍 된 주체로부터의 탈출과 전복(顚覆)을 시도하려는 시인의 무의식의 발현이며 현실에서 유예되고 있는 욕망과 욕망에 대한 갈등이 역동적으로 작용하면서 시인은 <별들이 모두 괴물처럼 눈을 부릅뜬>날을 맞이하게 된다. 별의 일반적인 메타포는 꿈과 소망이 완결된 이상향의 삶 혹은 세계이다. <괴물처럼 눈을 부릅뜬 별>은 시인이 감지한 꿈과 소망의 이상 징후이다. 반란이다. <괴물처럼 눈을 부릅뜬 별>은 새로운 의식의 변화를 뜻하며 이상 징후를 느낀 바로 그 순간 시인은 <붕새의 눈처럼 밝아진> 영혼의 깨달음을 얻게 되고 밤으로부터 빌려 시인의 눈과 날개가 되어주었던 붕새는 비로소 시인 자신의 것이 된다.  

이어지는 2연에서 <밤이 나에게 침묵의 소리를 듣게 했다>, <밤이 나에게 침묵의 소리를 들려주면서>,<밤이 내 귀를 길게 잡아당겨 침묵의 소리를 듣게 했다>는 점진적 표현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침묵을 통한 사유의 깊이를 더해가며 변화해 가는 주체와, 침묵과 대비되는 ‘소리’의 존재를 통해 침묵은 시간성과 유한성을 지니고 있으며 다양한 침묵의 형태는 <사랑의 빛을 얻지 못한 힘들> <바다에서 잠을 자거나> 깊은 꿈에 갇>힌 <봉인한 용의 몸>같은 <시체로 누운 침묵>들로 이러한 침묵들은 주체 속에 잠재하고 있는 가능태의 침묵으로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듯 때가 되면 <침묵이 빛이 물든 소리로 깨어나>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침묵의 존재성과 순환, 침묵하는 주체는 바로 그 침묵의 소리를 듣는 주체임을 얘기하고 있다.    

침묵하는 사람들은 소리에 민감하다. 그것이 내면의 울림에서 나오는 소리이든 외부의 자극에 의한 것이든 침묵하는 주체에게 소리는 자극이며 자극에 반응함으로서 침묵은 새로운 침묵으로 진화하게 된다. <현실(現實)이란 고치를 뚫고 나온 커다란 나비침묵>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현실세계와 자신과의 소통의 방편으로 침묵의 길을 택한 김백겸시인은 시집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시들 속에서 때로는 관념으로 때로는 실체로 시인의 자아와 침묵과의 사이좋은 동행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시인의 삶에 대한 자세와 삶의 여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 지며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시들을 살펴보자.

길을 잃은 벌이여
사무실에 잘못 들어온 벌이여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날개소리가 시끄럽다
침묵을 베어 배 한 척을 만드는 조선소처럼
연장소리가 시끄럽다
너는 어떤 배를 만들려 하느냐
유리창 밖 백일홍 꽃밭이 도원경처럼 펼쳐졌는데
동료들을 부르는 날개소리를 온 힘을 다해 펼치는데
배는 만들어 지지 않고
용접소리만 침묵과 침묵을 이어 두꺼운 철판 한 장을 만들고 있다
시간이 유리창이라는 깨달음이 오지 않느냐
유리창에는 집으로 가는 숲길과 하늘이 비쳐있다
숲길은 정화가 보선(寶船)단을 이끌고 아라비아로 가는 길처럼 멀다
벌집궁전은 明나라 영락제가 출범시킨 영토야심처럼 화려하다
비범한 생애를 꿈꾸었으나
길을 잘못 든 벌이여
너에게 신호를 보내는 여왕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천지를 채웠던 벌꿀향기가 사라졌다
필사적인 날개소리가 침묵으로 만든 배 한 척을 진수시켰으나
너는 배가 뒤집힌 선장처럼 하늘을 향해 발버둥친다
유리창이 시간이라는 깨달음이 오지 않느냐
유리창밖에는 보선(寶船)단 같은 구름이 푸른 하늘에 가득하다
침묵 밖에는 벌집궁전에 사는 여왕벌의 눈이 태양처럼 빛난다
- 보선(寶船) 전문 -

“만일 사람이 자기의 삶의 “이유”를 알고 있다면 그는 거의 모든 “과정”을 곧잘 해낼 것이다“라는 니체의 잠언처럼 자신의 삶이나 삶의 공간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진작에 삶을 포기한 사람이거나 자기 삶의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삶에 대한 비루한 천착이나 왜곡됨이 없이 투명하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삶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소망이 있을 때에 가능한 것으로 실패와 좌절, 성취와 희망으로 반복되는 고단한 삶의 여정을 스스로 풀어가는 신비한 마법의 열쇠가 될 것이다.            

<길을 잃은 벌이/사무실에 잘못 들어온 벌>이 출구를 찾아 날개 짓하는 소리를 <침묵을 베어 배 한척을 만드는 조선소>의 <연장소리>에 비유한 시인의 상상력은 사무실이라는 현실의 공간을 침묵이라는 상상속의 무한 공간으로 확장 시킨다. 사무실은 닫힌 공간이다 닫힌 공간에는 길을 잃은 벌과 시인뿐이다. 벌과 시인 사이의 공통점은 닫힌 공간을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고, 다른 점은 벌의 날개 짓과 시인의 침묵이다. 요란스럽게 발버둥치는 벌의 날개 짓은 생명의 위기를 감지한 본능 앞에서 생존을 위한 무조건 반사적인 1차적 행동이고, 시인의 침묵은 <시간이 유리창이고//유리창이 시간이라는 깨달음>으로 유리창 너머의 세계까지 아우르며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서의 사유와 고뇌가 녹아있는 기다림의 여유를 지닌 고도의 정신활동이다.  

길을 잃은 벌은 시인의 침묵 이전의 모습이며, 벌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은 침묵속의 시인의 모습이고, 침묵을 통한 사유와 인식의 과정을 거쳐 ‘보선(寶船)’이라는 침묵의 결정체로 현실의 상징계로 재진입하려는 시인은 침묵 후의 시인의 모습으로 생각된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었다
검은 구름의 가장자리가 하늘을 가로질렀고
서편 하늘은 바다 속에 황혼이 드리워진 것처럼 맑았다
내 눈은 거대한 고래처럼 보이는 구름의 배에 박혀있었다
구름의 배꼽에서
피들이 흘러 황혼의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화산에서 분출하는 용암처럼 황혼은 붉은 빛을 토해내고 어둠으로 식었다
하늘과 땅을 황혼의 힘 안에 가두려는 기운이 구름의 배안에서
만삭의 산모처럼 불러 있었다
양수가 터져 하혈이 심한 구름의 검은 얼굴이 창백했다
위기를 알리는 깃발처럼 바람이 불고
버즘나무 잎새들이 한 방향으로 쏠리며 진통하는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제왕절개로 뱃속의 목숨을 구하려는 의사처럼
침묵을 삼각산처럼 깍아서 구름의 배를 찔렀다
검은 구름이 황혼을 마지막으로 흘리고 토해놓은 기운은 거대한 밤
하늘을 별들을 품은 공간의 괴물이었다
별들이 십억 개의 눈을 부릅뜨고 지상의 숲과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숲으로 난 길들이 불타는 휴지처럼 구부러지며 어둠으로 사라졌다
나는 밤의 뱃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요나처럼 심장의 눈을 뜨기 위해 피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요나처럼- 전문


요나는 구약성서 ‘요나’편에 나오는 인물이다. 하느님의 부름으로 요나는 번화한 도시인 니느웨에 가서 멸망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 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피해 배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가던 중 요나를 비롯한 승선자들은 거친 태풍을 만나게 되고 재앙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은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져 성난 바다를 잠재울 것을 선원들에게 요청한다. 물밑으로 내려간 요나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물고기’에 삼켜지게 되고 삼일 밤낮을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하느님에게 기도로 회개하고 구원을 요청하던 요나는 구원을 받은 후 재차 하나님의 사명을 받게 되고, 그 명령을 따라 니느웨로 가 말씀을 전하여 멸망의 위기를 피할 수 있게 한다. 요나이야기는 하나님 계시에 대한 불복종과 순종, 그 사이에 요나가 겪는 물고기 뱃속에서의 수난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서 큰 물고기의 뱃속은 무덤 혹은 죽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캄캄한 어둠은 모태 및 자궁을 의미 한다.

나의 운명이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지금 여기의 나는 허상이고 나의 자유의지는 아무 쓸모가 없어지며 나는 하찮아 져 어디론가 숨고 싶어진다.
나는 나의 주체로서 나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갖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고 사는 거침없고 자유로운 기쁜 삶을 원한다. 그러므로 삶이여! 내게 오라! 내가 너의 주인이므로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하고 위풍당당 소리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축복받은 사람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종중에서도 희귀종이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고픈 배처럼 누구든 삶 앞에서 허둥거리고, 얼굴을 붉히고, 급기야 종주먹을 들이 대야하는 우리의 현실은 도대체 누구의 뜻이며 어디에서 비롯된 일이란 말인가?        

<비가 그치고 바람이>부는 하늘에 드리우는 황혼을 <구름의 배꼽에서> 흘러나온 피로 보는 시인의 시적자아는 무언가 심상찮다. <양수가 터>지고 <위기를 알리는 깃발처럼 바람이 불고> <버즘나무 잎새들이 한 방향으로 쏠리며 진통하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상황에서 시인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위기의 상황을 두고만 볼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침묵을 삼각산처럼 깍 을 수 있을까? <침묵을 삼각산처럼 깍아서 구름의 배를 찔렀다>는 침묵으로 새로운 정신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시인의 결연한 의지와 굴하지 않는 모험정신을 나타내며 <거대한 밤>이 <공간의 괴물이><별들이 십 억 개의 눈을 부릅뜨고> <숲으로 난 길들이 불타는 휴지처럼 구부러지며 어둠으로 사라>짐은 그에 따라오는 고통이다. 성서에 나오는 요나이야기를 빌려 ‘칼 구스타프 융’이 얘기한 ‘요나 콤플렉스’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의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그리워하여 현실에 적응하지 못 하는 심리현상을 말하며, 어머니의 자궁 속은 행복한 무의식의 절대 상태를 나타낸다고 한다. 삼일 밤낮을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구원을 요청하던 요나가 확신했던 것은 물고기 뱃속에서 더 이상의 위험은 없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 있으므로 하느님이 반듯이 자신을 구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였다. 스스로 자청한 고통으로 < 밤의 뱃속 >에 들어간 시인은 <요나처럼 심장의 눈을 뜨기 위해 피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주체의 탄생이다.



2. 심해 어둠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이상한 물고기

꿈은 마음의 가장 깊고, 가장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작은 문(門)이며 그 문은 저 우주의 태고 적 밤을 향하여 연다. 그것은 아직 자아의식이 없던 시기의 마음이었고 자아의식이 일찍이 도달할 만한 곳을 훨씬 넘어서 있는 마음이 될 태초의 밤이다.
-칼 구스타프 융-


바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물고기를 부화시킨다
물고기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심해 숲에서 태어난다
물고기의 살은 투명해서 등뼈를 이룬 푸른 어둠이 보이고
물고기의 지느러미는 사자의 갈기처럼 빛이 나는 모습이다

어느 책에서도
어느 어부의 경험에서도
물고기의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물고기의 신비와 이상한 생각을 본 사람들은
그 날로부터 거역할 수 없는 매력에 끌려 바닷가를 산책한다
인생의 목표란 이상한 물고기를 보고
물고기의 생각을 수혈 받는 일이라고 믿는 호사가처럼

물고기는 먹이와 번식에 미친 물고기 떼 속에는 살지 않는다
물고기를 경매하는 사업가의 분주한 눈길에도 걸리지 않는다
빛의 연기로 혼미해진 정신에게만 가끔씩 환상을  보여준다
물고기들과 생각의 고향은 시간의 어두운 바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듯이

심해 어둠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이상한 물고기는
천 년 만에 한 번씩 부상하는 바다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다
바다에는 가끔 이상한 소문이 태풍처럼 불어나고
생각의 파도는 길길이 날뛰며
혼이 나간 사람들에게 깊고 푸른 절벽을 보여 준다
                               -빛 물고기 전문-

바다는 문학에서 인간의 무의식이나 전체세계의 상징으로 곧잘 차용된다. 생명이 바다에서 시작되었고 거울로서의 바다는 삼라만상의 그림자를 담고 있기도 하다. 화엄불교에서는 海印으로 묘사하는 장엄우주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인간의 무의식은 바다 앞에서 태초의 시원을 느끼고 시간이 정지한 듯한 침묵을 느끼기도 한다.바다/하늘/전체의식은 자신의 부분이자 자식으로서의 물고기를 품고 있는데, 이 시에서는 인간사회에 대한 의인화로 나타났다. 빛 물고기/성스러운 존재는 바다가 특별한
사명과 목적아래 부화시킨 존재이며 물고기가 초기기독교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빛 물고기/예수라는 사실까지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다. ‘혼이 나간 사람들에게 깊고 푸른 절벽을 보여 준다’는 표현은 결국 진리는 언어 밖의 침묵을 통해 드러난다는 시인의 생각이 내포되어 있다.  


정원의 입구가 드러났다
입구 안에는 황금사과가 새벽의 어둠속에서 빛났다
곧 사라질 신비를 향해 심장이 두근거렸고
발걸음을 멈춘 내 자아를
늙은 역사가 호기심으로 쳐다보았다
늙은 역사가 내 뒤를 따르면 비밀은 새 이름을 지울 것이 분명했다
정원의 입구를 그냥 지나쳤다

정원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이정표를 들여다보았던가
정원에 대한 소문과 단서를 찾아 도서관과 밀렵꾼들의 시장을
돌아다닌 구두의 낡음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왕궁과 부자들의 울타리에서부터 은자들의 고졸(古拙)한 뜰에 이르기까지
정원의 설계도를 들여다 본 눈의 피로는
또 얼마인가

그 정원의 입구가 내 앞에 순간적으로 드러났다
나는 그 앞을 그냥 지나쳤다
황금사과에의 유혹이 여신을 향한 욕망처럼 갈증을 불러 일으켰다
입구는 안개처럼 왔다가 안개처럼 사라지는 새 이름이었는데
늙은 역사가 담배를 피우며 죽음의 냄새를 피웠으므로
나는 눈을 내리 깔은 채 정원의 입구를 지나쳤다

그 정원의 아름다움
비늘구름이 노을을 받아 거대한 붕새의 날개로 불타오르는 변신이나
들판의 잡초였던 풀이 구절초의 꽃을 피워 올리는 둔갑의 순간에서
잠깐 동안 모습을 드러내었던 비밀정원을 놓쳐버렸다
지식과 경험의 울타리에서 문지기로 사는 늙은 역사의 간섭 때문에
내 심장이 황금사과처럼 빛이 나는 피안을 질투한 죽음의 훼방 때문에  
                                                      - 비밀정원-


김백겸시인의 비밀정원에는 <별들이 빅뱅의 순간으로 돌아>가는 날이 수시로 일어나며 <죽지 않는 아이>와 <요나>가 <가면 놀이>하는 것을 지켜보는 <세 번째 눈>이 있고 <총살형>을 당하는 <괴물들>과 <나비 길>을 따라 <미루나무 꿈속으로> 날아가는 <하늘고래>가 있고 <컴퓨터>속에서는 <가야신화>가 <신들의 프로젝트>에 의해 <황금도시>로 변하는 중이고 <아라비안 나이트>를 들려주는 <하늘나라 방울 토마토>와 <공중마차>를 탄 <승객들>이 <꿈 마당극>을 관람할 때 <시디 플레이어>의 <앰프>에서는 쥬빈 메타의 지휘로 비엔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 일레나 코트루바스(Ileana Cotrubas)가 연주하는 말러의 ‘부활 4악장 근원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속에 들은 말들은 시집 ‘비밀정원’에 들어있는 시 제목들이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시 ‘비밀정원’은 <빛 물고기>를 찾아 침묵의 바다를 순항하는 김백겸시인의 중간 결과보고이기도 한 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늙은 역사에 ‘현실’이나 ‘육체’를 대입시키고(시인의 말)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은 죽음뿐이다’라고 한 프로이트의 말을 상기하면 시 ‘비밀정원’의 비밀 삼분의 이쯤은 엿보는 셈이지 싶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구스타프 말러는 환상적이고 신비적인 낭만주의와 냉철하고 비평적인 니힐리즘의 근원적인 대립과 모순으로 형이상학적인 음악을 추구하여 현대음악의 기초를 이루어 내었으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에 비해 처음 감상하기에 집중력과 인내가필요하지만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워 특별히 말러를 즐기는 매니아들이 많은 편이다. 필자는 실제로 이 시집을 읽는 내내 말러의 ‘부활’과 ‘대지의 여신’을 들었다.

김백겸시인의 시에는 신비감이 묻어나는 신화적이고 낯선 시어와 시귀들,  메카니즘의 산물인 과학과 기계적 용어들이 공존하며(그의 직장은 최첨단 과학을 다루는 곳이다),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새로운 시정신의 세계를 열어 가고 있다. 이는 현실 인으로서의 일상과 초월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자아의 운용을, 매끄럽고 조화롭게 하여 ‘이상과 꿈’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것을 실천하고 이를 시정신에 반영하고 있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발을 빼고 싶다. 그래야 한다. 김백겸시인의 항로를 따라 가다 곳곳에 암초를 만났다. 침묵하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 나가는 비명소리는 끝이 없었다. ’<자본의 바다를 출입 관리하는 계좌번호와 주민번호 연봉과 성과급>(황금도시)이 김백겸시인인지 <유니콘처럼 몸이 빛나는 말 한 마리>(천산산맥)가 김백겸시인인지 나는 때때로 헛갈렸다’라는 답은 찾은 것 같다.

2005년에 나온 시집 ‘비밀의 방’에서 ‘비밀의 정원’으로 항로를 개척한 일등항해사 김백겸시인의 항로가 더 넓고 더 멀리 나아가기를 믿고 기대하며 김백겸시인에게 자신의 시의식을 직접 들어보면서 끝을 맺는다

“저는 의식과 현실세계보다 무의식과 초월세계에 인간의 삶이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이지요. 우리를 포함한 존재의 지도는 매우 다차원에 걸쳐있어요. 다만 우리의 현실의식이 이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지요. 불교를 빌리지 않고 현재의 진화심리학이나 뇌과학으로 설명해도 자아(현실의식)란 개체의 유지를 위한 유전자의 프로그램(유전자의 입장에서 아웃소싱한거지요)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이라는 바다의 포말이거나 진화생명나무의 이파리입니다. 포말이나 이파리는 스스로의 역할을 위해 자아가 주어졌지만 전체로서는 바다이자 생명나무이지요. 구원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ego의 포기) 전체로서의 자기를(self)를 아는데 있습니다. 제 시는 전부 이 전체(self,우주정신)를 어떻게 인식하고 도달하는가의 문제, 제 삶을 떠받들고 있는 전체를 어떻게 현실의식의 틈을 비집고 드러내는가에 초점이 있습니다. 의식이 아니기에 기호로서는 지시 할 수가 없고 침묵이 마땅한데 시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 기호가 드러내지 못하는 전체를 드러내는 일이 가능하기에 제가 택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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