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작품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 [산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구회남
댓글 0건 조회 4,186회 작성일 08-12-02 11:13

본문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    
  

    ‘예술은 그대의 종교이며 미술관은 그 사원이다.’   -앙드레 말로-




크리스마스에 남편과 미술관을 찾은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헌금은 일률적으로 13000원이다. 문자로 된 설교 집을 원한다면 7000원 전후로 플러스된다. 설교를 더 생생하게 독단적으로 듣기를 원한다면 녹음기기를 빌리는데 2000원이 소요된다. 오는 곳에 걷기가 불편하면 주차비와 오른 기름 값을 예상해야 한다. 관람 전 후 먹기 위해서는 전당 앞 보쌈집에서 둘이 30000원이면 족할 것 같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종교행위가 쉽지 않다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본국에서 공수해 오는 비용 등을 감안한다면 여행 중 가서 봐야 한다면 액수는 늘어날 것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인 줄 알고 감사하며 봐야한다.



[인상주의]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인상 한번 구겼다 펴며 가능한 밝은 낯으로 입장하려고 한다. 설교하는 이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예의일 것이다. 르누아르가 벌써 알고 말하고 있다. ‘그림이란 유쾌하고 즐거워야 한다.’ 고 그림뿐이겠는가? 누가 고통 받기 위해 사원에 들어가겠는가? 자신의 고통을 위안 받기위해서 입장할 것이다. 긴 줄도 마다하지 않고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도슨트일 수도 있고 빌린 녹음기가 불량일 수도 있다. 예술가의 고통의 산물을 우리는 고통을 달래기 위해 본다는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근처에라도 가기위해서 ‘당신이 준 절망이 나에게 글을 쓰게 했다.’고 남편께 핑계를 대며 입장한다. 저들은 어떤 절망에서 그림을 그렸을까? 대충은 책에 쓰여 있지만 어느 시인의 말대로라면 ‘보는 이,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기 위함’ 일 것이다. 어쨌든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종교행위를 하는데 잘만 하면 30배 100배 결실을 거둘 수도 있으니 나름대로 지불해야할 것을 지불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후기 인상주의]



세잔, 반 고흐, 고갱..., 조화에 대한 완성을 추구해 나갔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고흐의 ‘네가 사랑한 것을 사랑한다.’는 말에 공감을 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해주는 너는 누구니? 네가 사랑하는 것을 나도 사랑하는 것은 끔찍함일까? 그것이 한때 우리를 살게 하니까, 어쩔 수 없다. 시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화가 고흐, 고흐처럼 귀에 붕대를 감은 남자의 입장에 남편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도 귀를 잘랐을까?, 고흐에 너무 빠져들다 보니 상징으로 읽으라는 힌트를 주는 것일까?, 그림보다 관람객을 읽는데 내 남자의 시선은 더 많이 뺏긴다. 공주차림의 관람객도 들러보고 있다. 액자 속의 주인공과 비슷하게 보인다.



고갱이 고흐를 두고 ‘멀리서 왔고 멀리 갈사람’이라는 예견은 적중했다. ‘회화의 생명력은 색채에 있다.’는 고갱은 타이트 섬에 가서 강렬한 색에 빠져든다. 거기서 나는 생동감을 맛본다. 보면서 그림보다 더 낡은 액자에 눈길이 가는 것은 세월을 말하는 것 같다. 눈길에 닳아, 공기의 입맞춤에 나무이거나 청동, 구리로 된 액자가 금이 갔고 낡았지만 색다른 맛을 준다. 중후하게 나도 늙어 갈 수는 없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겉치장에 그렇게 공들이나 보다. 화장하는 일에 많은 투자를 하나보다.



로댕에게 와 닿았다. ‘나는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내부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조각품이 금방이라도 걸어 다니거나 튀어 나올듯하다. 살아있는 역동성이라니, 꽃 한 송이도 살아 있는 듯 한 그림을 나는 제일로 친다. 청동시대의 거시기는 금방이라도 혈관을 타고 붉은 피가 돌 것만 같고 인상을 구기고 선 한 사내의 고뇌는 장관 중에 장관이다.



피카소는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다 성경에는 음흉한 생각만 들어도 이미 간음했다 하고 단정 짓고 있다. 생각이라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별로 생각이 깊지 않은 채 행동부터 앞서는 나는 반성한다. 좋은 생각이 만드는 사람과 좋은 머리로 나쁜 생각을 따라가는 사람간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생각이란 정신이고 정신은 온몸을 지배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고 따라 가느냐에 따라서 창부도 되고 성인군자도 나올 것이다. 생각하나 잘못 먹으면 그 길로 파탄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순간을 선택을 함에 있어 번쩍이는 반듯한 생각들로만 이어간다면 생은 그럴듯할 것이다.



20세기 아방가르드를 지나가고 있다.



천재화가 모딜리아니는 ‘옷 입을 줄 아는 파리의 유일한 남자’라는데 도록전면에 드러난 우수에 젖은 여성이 모딜리아니작품이다.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의 ‘여인의 초상’ 앞에서 남편은 사진에 찍힌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목이긴 여인의 붉은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눈은 검푸르고 깊고 가늘다. 바닷속 같기도 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그 속에 빠진 남성은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데 네 남자도 그 그림이 제일 맘에 든단다. 가슴 중앙에 달린 호박진주랄까 둥글다는 것은 달을 상징하는 걸까? 남성들은 그 달을 따고 싶어 그림 앞에서조차 오금이 저릴 듯싶다. 인상적인 것은 그 여인의 머리가 짧은데 있다. 그 역설, 아이러니라니, 그런 여인이라면 당연히 긴머리의 팜므파탈로 치달아야 할 것 같은데 그 상상을 빗나가는 선입관을 깬 수작이다. 인내심부족으로 한 번도 길게 머리를 길러보지 못한 나로서는 위안을 받는다.



[북 유럽의 빛]



뭉크, 몬드리안, 무어...



20세기 전위예술의 중심부다.



내가 제일 먼저 가고 싶은 북유럽이기도 하다.



뭉크의 여인을 본다. 사색적인 사이코드라마 같은 분위기, ‘죄다.’ 1901년 작품이다. 여인의 허리까지 가 닿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내어놓은 가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풍만하다. 곧 폭발 할 것만 같은, 이미 너무 많이 터져서 정신착란에 이른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긴 머리의 중앙이 엉켜 있다. 생각은 여기서 엉킨다. 빠져 나올 수 없는 거미줄 같은 세상 담백하지 않으면 혼란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우리를 엉키게 만든다. 단순하다는 것이 얼마나 산뜻한 일인지 역설로 표현했다. 뭉크의 정부인지 모를 한 여인, 팜므파탈의 전형이다. 죄짓지 말고 살아야한다. 초라한 센 강변을 지난다. 모네의 정원사의 거리도 지나 봄꽃의 거리까지 왔다. 이제 열정이 식으면, 가을이 코앞이다.


              [ 저 바람 속의 노래 ] 중에서






추천6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