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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간 접시 외 1편 (2008. 시와 시학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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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간 접시
한 사람이 사과를 깎는다
반으로 갈라 씨를 파낸다
반을 반으로 잘라 껍질을 벗긴다
얼마나 오래 사과를 깎았는지
사과를 깎으며 전화를 받고
아이를 낳고 모기도 때려잡는다
살만 발라 접시 위에 착착 올려놓는다
물 내려가는 소리 들린다
아랫집에서 개가 짖는다
개는 얼마나 오래 짖었는지
밥 타는 냄새를 물고 올라온다
오래 사과를 먹은 사람은
개 짖는 소리 듣지 못하고
밥 타는 냄새 맡지 못한다
러닝머신 타고 화면 속을 돌아다닌다
포크로 화면 밖 살만 찍어 먹는다
봄에서 가을로 채널이 바뀐다
창 밖 단풍나무에 불이 붙는다
한 사람은 사과를 깎고 한 사름은 먹는 동안
매캐한 뿌리가 집안으로 스며든다
얼마나 오래 돌아보지 않았는지
무성한 금이 천장을 지나
벽으로 퍼지는 것도 모른다
살은 다 파먹고 껍질만 수북한 집
접시 위까지 뿌리가 뻗어 있다
해피는 어디로 갔을까요
나는 당신이 해피를 찾아다니는 골목에 있어요 낙원 꽃상가 안에 있는
해피플라워에서 일해요 꽃바구니를 만들어 전국 어디든지 보내요 날마다
축 탄생 축 승진 리본이 달린 꽃들이 내 손을 떠나 누군가에게 가지요 프
러포즈용 장미 백 송이를 꽂고 돌아서서 장례식장으로 가는 국화 화환을
만들기도 해요 그럴 때는 축 사망이라고 쓰고 싶어져요
지금은 내 하루 중 가장 해피한 점심시간이에요 생선구이 백반을 먹으
러 가는 길이지요 당신이 해피를 찾는 전단이 아직도 붙어 있네요 나도 해
피를 찾아다닌 적이 있어요 발정이 나 울다가 달아나 버린 암고양이를 말
이에요 해피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길 잃은 해피를 만났지요 털이
빠지고 뼈만 앙상했어요 당신이 찾는 것과 같은 요크셔테리어였어요 내가
찾는 해피는 아니지만 해피라 불렀지요 나는 해피와 살고 싶었어요 해피를
씻기고 분홍리본을 달아 주었어요 해피는 내 손을 물어뜯었지요 가까이 가
면 으르렁거렸어요 오줌을 질금거리는 해피와 싸우기 시작했지요 해피는
밤마다 앓는 소리를 냈어요
당신이 해피를 찾아다니는 이 골목에 나는 해피를 몰래 내려놓았지요
해피는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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