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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여자 외 4편/ 이 정화(2007 여름 애지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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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여자
큰물이 막 지나간 방죽위에
한 여자가 울고 있다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
질질 끌려가고 있다
잡았던 손을 놓고 강물은
태연히 제 길로 가는데
어디까지 가려는가
붉은 진흙자국이 온 몸에
물음표로 남아있다
물루와 베르
섬*에 가면 고양이가있다
물루가 있다
베르도 있다
물루와 베르는 모녀사이
같은 집에 살고
같은 접시 물 먹고
같은 밥 먹는다
물루와 베르는 모르는 사이
등 돌리고 자는 사이
다른 꿈꾸는 사이
잠자는 베르를 건들자
베르가 엄마 엄마
엄마는 눈에 불을 켜고
가르릉 가르릉
물루와 베르는 모녀사이
섬에 가면 고양이가 있다
물루가 있다
베르도 있다
*섬: 장 그르니에 산문집, 카페이름
산벚나무에 기대다
겨우내 앓던 가려움증
긁었던 자리마다 벌겋게 달아
화끈 독을 품더니
기어이 불 댕겼다
번번이 놓치고 마는 마지막 맹세처럼
맹렬히 타오르는 불, 꽃
단방에 끝내는 생도 있을까
켜켜이 날리는 시간의 기억들을 긁으며
무수히 데인 꽃잎들
흰 소복 차려입고 문상 드는 저녁
기대어 선 산벚나무의 등짝이 가늘게 떨고 있다
살아야 겠다
짝사랑
내 마음이 세차다한들
동강을 돌아나가는 여울목만 하겠어요
내 마음이 질기다한들
지리산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산죽만 하겠어요
물 첩첩 산 첩첩
아뜩한 그대
마음이 마음을 따라 나서다
마음이 마음에 받혀 소란합니다
마당가에 튤립 더 붉어지고 있습니다
여태 그 자리입니다
*빨간 튤립의 꽃말은 사랑의 고백
같이 가실래요?
오리 따라 갔어요
깊고 넓은 물을 만나 혼자 돌아 왔어요
고양이 따라 갔어요
길고 높은 담을 만나 혼자 돌아 왔어요
염소 따라 갔어요
가도 가도 너른 풀밭 혼자 돌아 왔어요
이제는 어느 것도 따라가지 않아요
혼자 돌아와야 하는 길은 가지 않아요
깊고 넓은 물
길고 높은 담
가도 가도 너른 풀밭은
그들의 오래된 꿈이었어요
혼자 돌아오지않는 길을 내가 알고 있다면
나를 따라 오시겠어요?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어요
헛된 꿈이라 하더라도
오래 꾸고 오래 걷다보면
실눈을 뜨고도 깊은 꿈을 꿀 수 있겠지요
물집 잡힌 발을 어루만지며
멀리 있는 것들을 가까이 볼 수 있겠지요
그 곳에서 다시는
혼자 돌아오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있다면
같이 가실래요? 네?
어느 것이라도 따라 가실래요?
< 애지 2007 여름 >
추천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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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축하드립니다.

이정화님의 댓글
이정화 작성일앗!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잘 지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