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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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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다
문득 뒤돌아 보았습니다.
보이는 곳 저 켠 풀 잘 자란 들에서
가는 팔과 가는 다리, 풀을 씹는 이만 가진
나의 짐승과 어린 것들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여 주고
다시 뒤돌아서 타박타박 걸었습니다.
다리 끝에 이르니 사위 어두어져
저 켠은 잘 보이지 않았고
흰 소의 무덤, 흰 뼈만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주) 흰 소의 무덤으로 가는 다리는 미얀마에 있다.
그 다리의 이름은 U-Bein Bridge다.
미얀마에서 늙은 소는 그 곳으로 건너가 죽는다
댓글목록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깨달음의 방편인 소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소 꼬리를 잡고, 소를 잡아 올라타고, 그 소는 희어지고, 종국엔 그 소마저 버리고..... <十牛圖>와 연관 있는 것 같습니다. 흰 소, 다리 건너는 것, 이런 상징들을 구체화 시켜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좀 시가 막연하게 '이 사람이 이런 데를 갔다 왔나보다'라는 정도로 느껴집니다.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예, 고맙습니다. 十牛圖와는 관계가 없고, 이승에 살붙이를 남겨 두고 떠나는 내 모습을 그려본 거예요. 관심있게 읽어주시고 조언해 주셔서 고마워요.

유정임님의 댓글
유정임 작성일
김재성님, 반갑습니다. 지난번 강화에서는 헤어지는 인사도 못한것 같네요.<br />
저도 이곳엘 다녀와서 쓴 시 인줄 알았습니다. '주' 를 달아주셔서 더 그랬던것 같아요.<br />
처음 읽었을때 참 쓸쓸한 느낌을 받았는데 정말 근원이 그런 마음에서 시작됐네요.<br />
<저편 풀밭에서/ 나의 짐승과 어린것들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br />
좀더 구체화 시켰으면 좋겠다는 의견은 김승기 시인님과 같은 생각입니다.<br />
그런데 이런 생각은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지연님의 댓글
김지연 작성일여행 후에 남는건 사진이라지요 하지만 우린 시자락 하나 잡아 와야 합니다. 김재성님 앞으로 좋은시 많이 쓰시고 낯설음에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 잡아 끌어 내것으로 만드는 그런 시인 되시길, 홧팅``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그러겠습니다. <br />
내게 시인이라고 불러주셨지요 ? 나는 그 말이 부끄러웠습니다. <br />
그러나 이제 그 부끄러움을 접기 위해서라도 머릿속에 <br />
오래 쳐박혀 있던 것들을 꺼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br />
다리를 건너는 흰 소처럼, 부끄러운 살의 흔적과 <br />
가슴께 묻어두었던 애린을 내려놓으려면, 그렇게 살을 발라내고 <br />
잘 말려지려면 아무래도 시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br />
그렇게 한 무더기 쌓여진 내 뼈에서, 어쩌면 푸른 인광도 빛나 <br />
이승의 한 켠을 비출지 누가 아나요. 나의 뼈, 나의 시가 <br />
그렇게 기능하리라는 믿음은 당치 않지만.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한 번 가슴에 붙은 불 쉬 꺼지지 않습지요. 꺼졌다고 꺼트렸다고 하는 착각에서 자유를 느끼기도 하겠지만 착각은 착각일 뿐 착각 중에도 불은 계속 타오릅지요. 숨길 수 없습지요. 그 불 검은 새처럼 날아 살과 뼈 태웁지요. 마침내 껍질 다 벗은 잘 마른 흰 나무로 선 나무 한 그루 봅지요. 그 나무 다시 물기 빨아들일지 알 수가 없지요만, 이왕 타야할 나무라면 검은 새 날라주는 불씨라도 잘 머금어 뱉아내야겠습지요. 잘 말라 희어지기 전에 꽃도 되고 열매도 맺어야겠습지요.<br />
재성씨, 건강과 건필을.

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작성일
풀을 씹는 이만 가진 <br />
이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br />
<br />
'주'를 시안에 넣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구요<br />
<br />
이시를 읽고 21세기를 살아내는 우리들 생각이 났습니다<br />
우리는 뭐만 남아 있는걸까<br />
쇼핑하는 손일까<br />
죽이는 손일까<br />
죽는 손일까<br />
광고를 보는 눈일까<br />
<br />
뭐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시네요

이성률님의 댓글
이성률 작성일차분한 화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지는 시입니다. 뒷부분에서 반전이 이루어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