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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파자마가 있는 환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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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4호선과 7호선 사이 환승길
행거에 걸려 있는 파자마가 꽃을 피우고 있다
여보세요, 거기 출구로 올라가시는 분!
내 썬캡과 안경을 드릴게요
만 원짜리 금장시계도 가지세요
가방 속에 신용카드는 없지만
아직 허접한 것들을 넣을 만해요
나는 저 꽃무늬파자마를 갈아입고
이 땅의 국경을 넘어가볼까 하구요
은하철도 칠 칠 칠,
악어처럼 눈을 부릅뜬 열차를 탄다
수천 개 달이 배꽃같이 떠 있고
물고기가 나르고, 나비가 헤엄을 치네
시궁쥐가 간식으로 고양이를 뜯어먹고
연인들이 칸디루*처럼 입을 맞추네
배꽃이 뚝뚝 떨어진 강물이 붉네
백년이 지났을까
아니, 천년이 흘렀을 거야
꽃무늬잠옷 속에 미라가 있네
온몸에 칸디루 이빨이 박혀있네
오른쪽으로 조금만 비켜주실래요?
환승 에스컬레이터는 미동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숨이 가쁜 신발이 등 뒤에서 채근을 한다
썬캡과 안경과 손목시계와 짝퉁 루이비똥 가방이 부착된
내 몸의 중심이 잠깐 흔들렸다
-꽃무늬파자마가 5000원
환승장 노점상의 쉰 목소리가 이어링처럼 매달리는
여기는 환승역 梨水,
그 옛날 낭자했다는 梨花는
다 어디로 흘러갔을까
*칸디루: 아마존 강에 사는 식인물고기
댓글목록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파자마의 꽃무뉘에서 촉발된, 현실에서 미래로 현재로 회상으로 이어지는 환상에 함께 빠져 저 역시 환승역 환승길을 따라가봅니다. 연인의 입을 뜯어먹는 입맞춤이라면 아 얼마나 열정적일까 상상하다가, 앞뒤 시행의 공격적(?) 풍경 앞에서 엄마야! 잠깐 소스라칩니다. 의도적 환상의 끝은 현재도 아닌 과거(회상)로 흘러갔는데 시인의 온전한 마음은 어디에 더 머무르셨는지요?<br />
시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건필을.

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낮과 밤이 공존하는 지하 동굴 속, 지리멸렬한 한 여름 날의 몽환이라고나 할까요?<br />
<br />
남 시인, 오랬만입니다<br />
읽어주셔서 고맙구요. 건필하세요.

유정임님의 댓글
유정임 작성일
여름이 길긴 길었나봅니다. 이제야 환승을 하셨네요. 꽃무늬 파자마를 갈아 입고서 말입니다.<br />
옛날에 낭자 했던 이화는 허시인님 가슴속에 있는거 아닌가요.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뭉크의 그림을 보는듯 <br />
강렬한 색채감이 느껴지는 시... 잘 읽었습니다.

김효선님의 댓글
김효선 작성일누군가의 눈에는 보이지만 또 누군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상상력.....제목도 너무 재미있구요...요즘 시가 안써지니까 ....그냥 부럽다 부럽다만 연신 외쳐대고 있습니다..........가을이 왔는데도요...건강 하시죠?

허청미님의 댓글
허청미 작성일
반가워요, 김효선 시인.<br />
지난 여름은 무척 지루했어요.<br />
지난 번 태풍에 피해는 없었기를 빌었습니다.<br />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쓰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