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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설천봉에서 찍은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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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큰 주목나무 두 그루가
투명한 푸른 하늘을 이고 하얀 눈밭에 중심을 잡고 서있다
그 아래 내려다보이는 희미한 첩첩 산
나무아래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사람들
한쪽 귀퉁이에
아래를 향한 비스듬한 곤돌라의 길이 흉물스럽다
죽어서도 제 몸 소멸 시키지 못해
아직 구천을 떠도는 주목나무 영혼이
손도 안대고 사람들의 옷을 벗긴다
삽시간에 알몸이 되었다가 뼈만 앙상하다
뒤로 앞으로 옆으로
스틱을 잡고 서있거나 구부리고 있거나 혹은 앉아있다
갖가지의 모습들이 모두 해골이다
앙상한 늑골, 구멍 숭숭 뚫린 반골, 쩍 갈라진 정강이뼈
비로소 주목은 거대하다
그의 갈라진 몸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처럼
잠시 비수 같은 웃음 하나 가슴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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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
아직 구천을 떠도는 주목나무 영혼이<br />
손도 안대고 사람들의 옷을 벗긴다<br />
대단하십니다. 그려.<br />
본과 1학년 해부학 실습 1년 하고 나니, 거리에 사람들(특히 멋진 여자 일수록)을 보면, 왜 그리 내장까지 보이던지...2년여 순대를 못 먹었더랬습니다. 꼭 포르말린에 절인 내장 같아서.<br />
자꾸 비워내시는 것 같습니다.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엊저녁에도 "그녀와 나 사이에는 유리벽이 있다"(도시적, 소통)에 눈길을 멈추고 오랫동안 명상에 잠겼었는데, 이 아침에 유시인은 이번에 "우리 사이에는 바람이 있다"라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들려주네요. 우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그 바람에 나와 우리가 황폐하게 삭아가는 죽음의 풍경 앞에서 숙연해집니다.

이성률님의 댓글
이성률 작성일1연에서 마지막 행을 제외한 나머지는 없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마음에는 3연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유정임님의 댓글
유정임 작성일
김승기님, 남태식님, 이성률님, 모두 설 잘 쉐셨죠?<br />
이제 구정도 넘어갔으니 본격적으로 2007년이 시작된건가요 나이 한살 더먹은 모습으로요.<br />
좋은 작품들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기를 기원하고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