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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숙제들...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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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효선
댓글 1건 조회 2,235회 작성일 07-05-0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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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날들이 한꺼번에 지나가고
많은 일들이 또 지나갔습니다.
아직도 해야할 일들이, 숙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는 마찬가집니다.
같이 하지 못해 정말 죄송해요...정말 가고 싶었는데...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요..
선생님 말씀 안듣는 학생처럼 언제나 밀린 숙제를 하는...
  부족한 시들...많이 꼬집어 주세요.

<위험한 연극 / 김효선>

제라늄이 피었다.
원소기호 같은 꽃, 이라고
그의 가슴을 열고 들어가면
세 개의 방이 나온다.

기억의 방,
영원이란 게 오늘 드디어 멈춰버린 느낌이에요*당신은 원래 은빛날개를 가진 새라서 태양 가까이 가지 않았어요. 눈부신 10시 당신은 외벽에 갇힌 채 부지런히 콩을 줍고 있었죠. 콩콩콩 스타카토로 추락하는 새들. 발자국을 찍기도 전에 태양 언저리에서 부서져버리는 하얀 알약 같은, 절대로 씹어 먹지 마세요. 천천히 녹여 드셔야 하는데. 벌써 창틀을 밀고 들어오는 성질 급한 당신. 외벽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진 마세요.

장난감이 있는 방,
이 도시에 사랑이 없을 때, 이 새로운 세기가 당신을 힘들게만 했기에* 당신에게 선물하려고 아주 쬐그만 장난감을 만들었을 뿐인데 그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어요. 눈물 콧물까지 흘리며 사랑한다는 단어를 지구 열 바퀴쯤 했을 때 확 돌아버릴 뻔 했잖아요. 사랑이 그렇게 가벼운 말투처럼 나풀대면서 날아가다 민들레 꽃씨처럼 아무 곳에나 풀썩 주저앉아 버리는데. 정말 한방에 날려버리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어요.  도대체 누가 내 안에 모래를 집어넣은 거죠?

거대한 방,
그래요, 당신 지금 맞는 옷을 찾고 있나요?*미안하고 미안해서 어쩌죠. 어쩌면 그렇게 헬륨가스를 잔뜩 집어넣은 애드벌룬처럼 공중을 날 수 있는 거죠? 거머리 같은 나는 매일 밤 면발을 퉁퉁 불려 집어 삼켜도 등가죽에 딱 달라붙어, 어떻게 좀 해봐요. 당신처럼 둥둥 떠오르고 싶은데, 난 자꾸만 땅 속으로 발이 푹푹 내려 꺼지는데, 잡을 거라곤 물풍선 같은 당신. 웃음이 나오다가 도로 들어가는데, 대체 누가 내 안에 무임승차 하는 거야.

사계절 내내 피는 제라늄
꽃이라서,
꽃이 아니라서,

*Robbie williams의 노래 suprme 에 나오는 가사


<뱀파이어와 봄을 / 김효선>


흐르는 것도 흐르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여자는 족보처럼 긴 시간을 수화기 너머로 보낸다. 어쩔 수 없이 걸어온 발자국을 지우고 지우며 지우다 다시 되돌린다. 스파르타식으로 건너오고 건너가는 계절, 되돌리고 되돌려고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꽃잎들. 가려고 하면 붙잡아 기어이 붉은 흔적을 남긴다. 지구 밖에는 아직 붉은 피가 돌고 있다. 벚꽃이 피었다 지는 동안에도 여자는 수화기를 든다.
수화기 너머로 사내가 달빛을 뜯으며 졸고 있다. 여자의 피는 언제부턴가 달빛처럼 파랗다. 사내가 졸고 있는 동안 여자의 월경이 개기일식처럼 지나는 날이 많아진다. 달빛은 새파란 피를 뿜어내고 있다. 사내는 수화기 너머로 파란 달빛을 뜯는다. 여자는 다시 수화기를 든다. 지구 밖으로 새파란 피가 돌고 있다.



<희망을 가져도 될까 / 김효선>


가난해서 그는
자주 담배를 피웠다.
도너츠처럼 뻥 뚫린 집으로
아이들은 함부로 드나들었다.

동화책을 읽어 줄까
얼룩말이 풀을 뜯고 있어요.
눈치 보며 사는 얼룩말은 싫어요.
그럼 사자를 데려와야겠구나.
사자가 어슬렁거리며 얼룩말 곁으로 다가간다.
사자가 하품하면 입 냄새가 나서 싫어요.
아, 코끼리를 불러야겠구나.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길대요.
코끼리 아저씨 코에서 씩씩 연기가 나잖아요.
도너츠는 구름이 되어 서서히 하늘을 덮는다.
아이가 도너츠를 잡으려는데 낼름
코끼리가 집어간다.

그는 다시 도너츠가 되고
아이들은 뻥 뚫린 집으로 모여든다.




<그림자에게 듣는다 / 김효선>



꽃잎 지는 소리를 듣는다.
빗방울들이 억지로 입을 맞추자
구석으로 내몰린 꽃잎들
파르르 떨고 있다.

엄마는 흐르는 게 아니었어.
죽음이 가문비나무에게로 옮겨가는 동안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거짓말, 거짓말
물은 모든 색깔을 먹고도 그저
먹먹하다,
똑같은 소리로 다만 같은 잠을 자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
엄마는 한동안 가문비 나무였다.
종일 강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물비늘
엄마는 꽃이 피는 내내 하얗게 쏟아지고 있었다.

꽃가루처럼 날리는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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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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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4월에는 허청미 시인님의 '벚꽃, 그 사월의 배반'에 빠져서 즐거웠더랬는데,<br />
5월에는 김효선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즐거움에 빠져 있습니다. 읽다가 출력까지 해서 들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br />
'희망을 가져도 될까'를 제외한 3편을 연작시처럼 읽었습니다.<br />
'위험한 연극'에서 '기억의 방'은 '짝사랑의 방'으로, '장난감이 있는 방'은 '환각의 방'으로, '거대한 방'은 '이별의 방'으로 바꾸어 놓고 읽고 있습니다. 시인의 의도를 살피기는 했지만 읽고 있는 동안 '위험한 연극'의 이야기는 제 이야기로 바꾸어졌습니다.<br />
'뱀파이어와 봄을'과 '그림자에게 듣는다'도 참 좋습니다.<br />
사랑은 애초부터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다가오는 그림자에 혼자 가슴 콩콩콩거리다가 또 혼자 지쳐서 애닯아 하던 기억들은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어쩌면 미래이기도 하겠지요. 역시 제 얘기입니다.<br />
세 편의 이야기 전개와 전개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어진 연상의 표현, 시적 상상력 모두 좋습니다. <br />
이에 비해 '희망을 가져도 될까'는 주제와 소재, 시적 상상력이 모두 제게는 많이 익숙한 것이어서 감동은 좀 떨어졌습니다.<br />
읽는 동안 시에 취해 참 많은 상상을 했었는데(원소기호 같은 꽃 제라늄에서 파란 달빛으로 넘어갔다가 달빛이 파랗다니 푸른 제라늄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인데 그러면 파란 달빛은 죽음의 색 어쩌고 저쩌고. 기억의 방의 그림자에 매달려 콩콩거리다가 꽃잎을 적셔 떨어뜨리는 봄비도 아 어쩌면 상황에 따라 되려 너무 큰 그림자이기도 하겠구나 늘 한결같을 수는 없지 이러쿵저러쿵 등등등) 그걸 다 옮기려니 정리가 잘 안되네요. 해서 이 정도로 감상평 적습니다.<br />
건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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